원하는 프로그램 실시간 방송으로 아무때나 시청인터넷 초고속 통신망 통해 전송, 쌍방향 방송 구현

2006년 8월. 직장인 이상익(37ㆍ삼성전자) 씨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자마자 TV 리모콘부터 찾는다. 보통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9시가 넘기 일쑤. 그리고 그가 TV에서 즐겨 보는 것은 뉴스와 영화 프로그램 순이다. 날마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다른 데도 시청하는 프로그램 순서는 똑같다. 종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고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계속 클릭을 한다는 것.

혹 맘이 바뀌면 프로그램이나 순서를 원하는 대로 바꿔서 보는 데도 불편하지도 않다. 예전 같으면 9시 뉴스를 보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하거나 영화를 보기 위해 집 근처 비디오가게에 들러야 했지만 이제는 그럴 일도 없다. 모두 새로 가입한 하나TV 덕분이다.

내년 상용화가 예정된 IP TV시대가 다가오면서 TV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IP TV의 출현으로 TV를 시청하는 문화와 환경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7월 24일 서비스를 개시한 하나로텔레콤의 ‘하나TV’는 그러한 변화상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IP(Internet Protocol) TV란 단어 그대로 인터넷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전송되는 TV를 가리킨다. 종전 지상파 방송이 남산이나 관악산 등에 세워진 여러 송신탑에서 전파를 쏘아 각 가정에 전달토록 하는 방식이라면 IP TV는 인터넷 전송망을 통해 제공되는 TV방송이다.

IP TV의 가장 큰 특징은 실시간 방송이면서도 원하는 프로그램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주문형 시청이 가능하다는 것. 거기에 시청자가 방송국으로 의견이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쌍방향 방송이 구현된다.

최근 첫선을 보인 하나TV는 IP TV의 직전 단계.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TV로 볼 수 있는 VOD(Video on Demand)만 구현된, 즉 주문형비디오 방식의 서비스다. 때문에 IP TV처럼 아직 쌍방향이거나 실시간 방송까지에는 못 미친다.

그리고 하나TV가 제공하는 디지털 방식의 VOD TV 시청은 KT의 ‘홈엔’ 서비스에서도 가능하다. 또 각 지역의 케이블 방송국에서도 디지털 방식의 VOD 서비스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TV가 일반인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VOD TV 서비스인 것처럼 비쳐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대대적인 홍보 공세 때문. 이는 초고속통신망 사업자로서 VOD 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더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하나로텔레콤이 집중적인 광고를 펼치며 하나TV 알리기에 나서면서 KT 또한 자체 브랜드인 ‘홈엔’의 홍보전에 가세하고 있다. 이미 2년 전에 상용화된 서비스이긴 하지만 큰 이목을 끌지 못해 오다 최근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광고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홈엔은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일찍 시장에 나온 서비스라는 평가도 한때 받았지만 지금은 하나TV의 선전에 힘입어 덩달아 편승 효과를 얻고 있다.

비록 IP TV 수준이 아니더라도 하나TV 등 VOD 방식의 TV 서비스는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변화와 편리를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특히 주부들의 하루 일과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을 출근시키고 설거지와 밀린 빨래를 다 마친 주부들 또한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맘대로 선택해 시청할 수 있게 돼서다.

예전 같으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서둘러 TV 앞으로 달려 오거나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야만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는 전날 밤 보지 못한 드라마를 클릭해 볼 수도 있다. 케이블TV에서 언제 재방송될지 몰라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보던 수고도 덕분에 줄었다.

또 VOD 프로그램 중 요가나 성형, 에어로빅 방송은 주부들의 다이어트를 위해 애용된다. 굳이 헬스클럽에 가지 않고서도 TV를 보며 따라 할 수 있다. 아이들 또한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에 시청하며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광고 총력전에 힘입어 하나TV도 시장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다. 하루 1,500명 이상, 많을 때는 3,000명까지도 신규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벌써 가입자가 3만5,000명을 넘어섰다고 하나로텔레콤은 밝히고 있다.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 2년째 접어 든 KT의 홈엔 가입자가 8,000여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비하면 매우 고무적인 수치로 받아들여진다. 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케이블TV의 VOD 서비스 가입자는 벌써 18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김재용 홍보팀장은 “종전의 TV가 주는 대로만 받아먹어야 했던 바보 상자라면 VOD TV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똑똑한 TV”라며 이는 “TV 시청도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하나로텔레콤은 하나TV 서비스를 통해 올 연말까지 25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매출 예상액은 50억원 정도. 내년에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게 되면 매출은 700억~800억원으로 뛰어오르게 되며 IP TV 보급이 본격 이뤄지는 2008년 이후에는 가입자 150만, 매출 2,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VOD 서비스 TV에서 시작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내년 2007년으로 예정된 IP TV의 상용화는 바로 ‘꿈의 환경’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쌍방향 TV인 IP TV 시청자들은 TV를 볼 때 좋아하는 배우가 입고 나온 T셔츠가 맘에 들면 리모콘의 버튼을 눌러 바로 주문을 할 수 있게 된다. T커머스가 구현된다. 또 생방송 중계 중인 시사토론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의견을 바로 문자로 실어 날려 보낼 수도 있다.

나아가 게임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바로 TV가 게임기로 변하기도 한다. 굳이 가정용 게임기를 살 필요조차 없어지는 것. 마이크를 가져다 꽂기만 하면 TV가 곧바로 노래방기기로 변신하는 것도 IP TV가 내세울 수 있는 다양하고 독보적인 기능들 중 하나다. 또 고화질의 영화나 동영상을 얼마든지 시청하고 실어나를 수 있다. 기존 PC를 통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던 생활정보나 증권 정보 등도 모두 IP TV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KT 홍보팀 이장세 부장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정해진 시간에만 보는 것과 아무때나 원하는 시간에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편한지는 물어보나마나 명확하다”며 “개개인마다 가용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 VOD나 IP TV가 가져다 주는 편리성은 소비자 선택 단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IP TV 산업이 순풍에 돛을 단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통신과 방송의 컨버전스 사업으로 꼽히는 IP TV는 기존의 방송 진영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경쟁 상대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수년 전부터 통신업계에서 IP TV를 위한 준비는 이뤄져 오고 있지만 본격적인 IP TV 방송 상용화는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

정부가 나서 방송통신융합위원회를 구성, 법규 정비 등을 서두르고 있지만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이견 조정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는 최근 방송과 통신을 결합한 IP TV를 일단 내년부터 상용화하기로 합의하는 데까지는 이르렀다.

IP TV는 해외에서도 이미 여러 사업자들이 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상태다. 미국의 경우 가입자가 2004년 기준 7만 명에 이르고 일본이 1만6,000명, 대만도 15만 명에 달한다. 특히 홍콩은 IP TV 보급에 적극 나서 지난해까지 3개 사업자가 7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을 정도로 앞서 나가고 있다.

하나 TV '속도전', KT '반격 채비', 데이콤 '가세 준비'

"KT가 한편으로 VOD 서비스TV인 '홈엔'을 활성화시키지 못한 것이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인 셈이죠." 하나TV의 홍보와 가입자 유치에 총력을 벌이고 있는 하나로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 TV 서비스 개시 한 달여 만에 3만5,000명 돌파, 반면 KT의 홈엔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째이지만 가입자가 1만 명 미만. 비슷한 VOD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두 회사 간에 드러나는 외견상의 실적 성적표다.

하지만 이런 수치만으로 두 회사의 영업 마케팅 능력이나 실적 전망을 단정지을 수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이 통신업계의 시각이다. IP TV에 대한 서로의 입장과 전략이 다르기 때문.

공세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는 하나로텔레콤은 상대적으로 KT의 부진(?)과 소극적(?)인 자세에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다.

홈엔이 너무 일찍 시장에 선보였고 자리를 못 잡는 사이 콘텐츠와 통신망 등에서 준비에 만전을 기한 하나TV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때문에 하나로측은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별 무리없이 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KT는 "그렇다고 지금 시장을 방관하거나 주춤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며 "홈엔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새롭게 개편하는 등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대응하고 있다. 최근에 서비스를 개선하고 콘텐츠 확보에서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한 사례.

하지만 KT는 좀 더 시장이 무르익은 상태에서 보다 적극적인 공세를 펴나간다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우선 IP TV 관련 법규가 정부와 국회에서 확정이 된 후 완결형 서비스로 나서도 늦지는 않다"는 것이 통신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일례로 초고속통신망 사업에 있어서도 처음 두루넷이나 드림라인이 먼저 시장을 선점하며 보급에 나섰지만 결국 최종 승자는 KT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을 이들은 근거로 제시한다.

역으로 하나로측은 다른 한편으로 KT의 시장 본격 진입이 너무 미뤄지게 되는 것도 은근히 염려하고 있다. 동종업자이자 경쟁자도 사업에 뛰어들어야 전체 시장 파이가 커지고 덩달아 상승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

하나로측은 "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서비스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서게 되면 광고 유치나 콘텐츠 확보에서도 종전보다 훨씬 유리해져 사업 환경이 더 좋아지고 기업가치도 올라가게 된다"고 말해 앞으로 가입자 확보에 열을 올릴 것임을 분명히 했다.

IP TV의 본질적 속성상 초고속통신망을 보유한 업체가 사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데이콤도 하나TV의 급부상에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파워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고 광동축 혼합케이블망과 광랜 등 IP TV 환경에 유리한 통신망을 대거 보유하고 있지만 자칫 하나TV의 시장 선점에 밀릴까봐서다.

데이콤측은 "정부에서 관련 법규가 마련되고 틀을 갖추는 대로 곧바로 시범서비스와 가입자 유치에 적극 돌입할 계획"이라며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가동하고 있는 등 이미 준비 작업을 완료한 상태"라고 밝히고 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