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출판사 중 약 15%가 1인 출판사, 튼튼한 네트워크·철저한 기획 아이디어로 승부수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백만불짜리 습관’(용오름),‘테이레시아스의 역사’(산처럼),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서적),‘헌법의 풍경’(교양인).

2000년 이후 ‘대박’을 터트리거나 1만 권 넘게 팔린 화제의 책들로 ‘1인 출판사’가 터뜨린 작품들이다. 1인 출판은 말 그대로 혼자서 편집ㆍ기획ㆍ제작ㆍ홍보(마케팅) 등 일체의 과정을 도맡아 하는 출판 시스템이다..

최근에는 출판의 양극화 등 출판 환경이 변하면서 ‘1인 출판’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기존 출판사에서 독립하는 수많은 출판인과 새롭게 출판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인 출판사도 증가하고 있다. .

2002년 1,896개사이던 출판사는 2003년 1,647개 사, 2004년 1,716개사, 2005년에는 9월 말까지 2,091개사로 3년9개월 동안 무려 7,350개사가 신규 등록을 해 총 출판사 수는 2만4,589개사나 된다. 4년 동안 하루 평균 5.4개가 늘어난 셈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2000년 조사에서 1인 출판사는 전체의 약 7%였는데 현재는 15%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백 부장에 따르면 국내 2만5,000개 가량의 출판사 중 3,700여 개 정도가 1인 출판사인 셈이다.

국내 출판사는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그해 10월 출판등록이 자유화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 출판사들은 90년대 전반기 호황기를 거쳐 97년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갈림길에 서게 됐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는 “80년대 억압에서 벗어나 90년대 출판이 대중화되면서 출판을 경험한 기획ㆍ편집자가 90년대 말 2,000~3,000 명 가량 등장했지만 출판사 구조는 여전히 전 근대적이어서 기존 조직에 머물 수 없는 출판인들이 독립해서 1인 출판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디지털화로 책제작 쉬워지며 급증세

이후 2000년대의 출판 제작환경 변화는 1인 출판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디지털화로 책 만드는 게 쉬워져 제작비가 예전보다 3분의 1 수준이 됐다”며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으로 유통이 집중되고 제작ㆍ마케팅 등 외부시스템이 발달한 것도 1인 출판을 양산한 배경이다”고 말했다.

1인 출판은 종래 출판업에 종사해온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개인이 연구 성과를 책으로 내기 위해, 또는 출판 분야의 기자 출신이나 출판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1인 출판을 하는 출판인은 크게 편집자 출신과 영업 출신으로 나뉜다. 90년대 중반까지 출판사 창업을 하는 이는 주로 영업부장들이었다. 전국 서점의 복잡한 유통망과 인맥을 쌓은 영업자가 뛰어난 출판인이었다.

‘사랑의 학교’의 이상복(50) 씨는 범우사에서 9년간 영업을 하다 95년 영업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출판사를 차렸다. 지명도가 있는 이원복 교수의 ‘세계기행 1ㆍ2권’을 비롯해 ‘펜 끝으로 여는 세상’ 등 11종의 책을 냈다.

영업통답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방 서점들을 돌며 출판흐름을 파악하고, 영업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획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아동과 청소년 부문에 주력해 ‘지식보다 감동을 전달하는’ 책들을 펴내는 게 그의 목표다.

이 씨는 “출판을 늦게 시작한 데다 인적 네트워크가 엷어 한계를 느끼곤 한다”면서 “1인 출판을 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하고 튼튼한 네트워크를 형성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대표(41)는 2개 출판사에서 5년여 동안 편집과 영업을 한 뒤 2000년 출판사를 세워 처녀작으로 펴낸 ‘창가의 토토’가 35만 부나 팔려나가 1인 출판계의 신화로 남아 있다.

이후 편집과 마케팅 분야에 2명을 충원한 신 대표는 “글과 삶이 일치하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히로사 다카하시(‘체르노빌의 아이들’저자)를 존경한다”면서 “앞으로 그를 포함한 2명의 전작 작가 시리즈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1인 출판을 하다보면 큰 운이 따를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며 “소규모 출판에 맞는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인 출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양미(산처럼)ㆍ김혜숙(참솔)ㆍ강규순(숲)ㆍ조영희(에코의 서재)ㆍ한예원(교양인)ㆍ권선희(사이)ㆍ황영심(지오북) 대표 등은 편집인 출신이다.

윤양미 대표는 한길사ㆍ역사비평에서 8년여 동안 편집ㆍ기획 파트에서 일하다 2002년 ‘산처럼’을 세웠다.

김혜숙 대표는 문예출판사에서 12년간 편집일을 하다 95년 결혼과 함께 떠나 있다가 98년 출판계로 돌아왔다. 기획안을 들고 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을 찾았으나 “혼자 해보라”는 말과 함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1인 출판사 ‘참솔’을 세웠다. 첫 작품 ‘퇴직시대, 120% 권리찾기’는 출간 한 달 만에 초판을 다 소화했고, 번역서인 ‘초라한 밥상’은 5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조만간 현대인에 와닿을 수 있는 ‘아부의 예술’을 출간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1인 출판을 하려면 최소한 기획 아이디어를 10개 이상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밋빛 환상만 갖고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충고했다.

강규순 대표 역시 한길사ㆍ문예출판사에서 10년 넘게 편집자로 일하다 2002년 ‘숲’을 설립했다. 첫 작품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를 낸 데 이어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그리스ㆍ로마 원전 번역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아이네이스’,‘명상록’은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 대표는 “그리스ㆍ로마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왔지만 국내 전문가가 부족해 ‘원전’은 드물다”며 “고정 독자가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희 대표는 대형출판사인 푸른숲ㆍ위즈덤하우스에서 10여 년간 편집일을 하면서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한비야), 지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등을 기획, 탄탄대로를 걷다가 2005년 독립해 ‘에코의 서재’출판사를 차렸다.

6개월을 걸려 완성한 첫 작품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9만 부 이상 팔렸고 이어 나온 성인 심리동화 ‘루비레드’, 경제경영 인문서인 ‘성공한 사람들의 정치력101’이 각각 1만 부 팔리면서 1인 출판의 뿌리를 내렸다.

황영심 대표는 문예출판사ㆍ현암사 등에서 16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다 2003년 ‘지오북’을 창업한 후 첫 책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내놓아 주목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2004년)으로 집무정지됐을 때 보았다고 해 화제가 됐던 ‘헌법의 풍경’은 1인 출판 ‘교양인’에서 펴냈다. 한예원 대표는 9년간 푸른숲 편집장을 하다 독립 ‘교양인’을 차리고 ‘헌법의 풍경’과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로 호평받았다.

전문성으로 틈새 공략

편집의 베테랑으로 잘 나가던 이들이 1인 출판으로 독립한 데는 ‘나이’ 및 오너와의 마찰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대개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일을 하려는 의지가 결정으로 작용했다.

국내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위즈덤하우스 편집장 자리를 던지고 나온 ‘에코의 서재’ 조영희 대표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과 회사가 요구하는 책이 다를 때는 갈등이 심했다”면서 “편집자로서 경력을 쌓다 보면 좀 더 인문적이고 깊이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데 대형 출판사에서는 그런 욕구를 실현시킬 수가 없어서 내고 싶은 책을 즐기면서 만들기 위해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지오북’ 황영심 대표는 “자연과학서는 사진이나 편집 등 신경 쓸 일이 많기에 회사에서는 쫓기듯 책을 낼 수밖에 없었다”면서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학서를 내고 싶어 독립했다”고 설명했다.

언어(특히 한자) 전문가인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출판사 대표와 IT 분야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은 ‘디지털미디어리서치’의 조광현 대표는 각각 독자 출판사를 세우고 관련 분야의 책을 잇따라 출간하고 있다.

박대종 대표는 “출간 당시 한자를 인쇄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내 정성과 혼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광현 대표는 “콘텐츠 기획을 잘 하면 출판 과정 일부를 아웃소싱할 수 있어 직접 출판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박정화 씨는 책을 내고 싶어 별도로 1인 출판사(삼애사)를 차리고 20년 간 연구한 고대사 자료를 모아 ‘일본의 원뿌리를 찾아서’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만불짜리 습관’ 등 경제경영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용오름 출판사 서사봉 대표는 10여 년간 일간지 경제ㆍ문화부 기자로 있다 2004년 창업했다. 6년간 출판사 편집자와 주간신문, 잡지 기자로 편력한 황기직 씨는 92년 ‘새벽소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한 후 ‘윤복이의 일기’,‘장다리 1학년 땅꼬마 2학년’, ‘머리 둘 달린 봉황새’ 등 아동서 4권을 포함해 9권을 냈다.

출판 경험이 전혀 없거나 출판과 무관한 사람들이 1인 출판에 도전하는 경우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서울 마포구 서교동)가 출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운영하는 ‘sbi(서울북인스티튜트) 창업자 과정을 올 초 수료한 김동석(36) 씨는 ‘기억상자’라는 1인 출판사를 차리고 11월 경 인문ㆍ역사서 출간을 준비 중이다.

sbi ‘편집자 입문 과정’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 이승은(36) 씨는 ‘개암나무’를 창업하고 내년 초 번역 동화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계에 ‘1인 출판’이 확산되고 있지만 그 현상이나 장래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 긍정론자들은 출판의 다양성 차원에서 바람직하고 전문성을 갖추고 틈새를 공략할 경우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1인 출판은 재미있고 혁명적인 것”이라며 “산업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자”고 말한다. 정 대표는 중간 크기의 회사는 사라지고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출판사로 출판계가 양분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반면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1인 출판이 영세하고 존립이 불안정함에 따라 소자본으로 번역 위주의 출판을 할 경우 외국 출판물의 ‘보따리 장사’가 성행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백 부장은 “출판의 핵심은 콘텐츠”라며 “1인 출판의 자산과 경쟁력도 콘텐츠인데 과연 국내 1인 출판사 중 어느 정도가 독자의 취향을 읽어내고 전문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1인 출판의 경우 출판 고유의 ‘저수지 역할’이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장래 엇갈린 전망… 영세성 극복이 관건

1인 출판의 장래에 대해서도 평가가 나뉜다. 비관론자들은 1인 출판의 영세성으로 인해 장기적인 존립이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 단 한 권이라도 신간을 펴낸 출판사가 전체의 7.6%인 1,715개사에 불과하다. 1년에 등록하는 출판사 숫자보다도 적다.

실제 출판저널 기자를 지낸 이현주 씨가 2003년 창업한 1인 출판사‘뜰’은 여성ㆍ가족ㆍ가정 분야를 특화해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가족이 있는 풍경’등을 출간해 한동안 주목을 받았지만 자금난으로 결국 지난 7월에 폐업했다.

다른 측면에서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는 “출판은 근본적으로 ‘1인 출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출판의 전 과정에 전문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용오름의 서사봉 대표는 “출간할 때마다 ‘창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정성이 상존한다”며 “1인 출판의 고유 생존방식을 어떻게 유지하는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1인 출판의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대표는 “혼자 만든 ‘창가의 토토’ 이후 직원을 2명만 더 채용했다”며 “결국 (소규모) ‘대장간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규모를 키우지 않고 1인 출판의 장점을 살려가면 존립은 물론 나름대로 사회문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미국 출판인 제이슨 엡스타인이 ‘북 비즈니스’란 책에서 디지털 기술 발달 덕에 장인 정신의 출판 황금시대가 온다고 내다본 것을 주목, 한국 사회에도 1인 출판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출판인 양성소 sbi(서울북 인스티튜트)
전문성 길러 대박의 꿈 키운다

"출판 창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버려라."

출판을 아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그만큼 출판으로 성공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고 노하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푸른숲 대표)가 출판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운영하는 'sbi(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 박은주ㆍ김영사 대표)'는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sbi는 한국출판인회의가 1999년 출판인 양성을 위해 개설했던 한국출판아카데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대시킨 출판 전문교육기관이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sbi는 편집자 입문, 교열 교정, 출판 제작, 편집장, 창업자, 출판 디자인, 출판 마케팅, 편집 디자인 실무를 위한 DPT 과정 등 8개 정규 과정에 실용서 편집자, 아동서 편집자, 출판경리회계, 북아트 과정 등 4개 강좌를 추가로 신설했다.

강사진은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등 현역 출판인과 편집자들이 나선다. 9∼10주 과정으로 짜여있으며 정원은 20∼50명 내외다.

sbi는 8월까지 모두 6기에 걸쳐 8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특히 올 초 노동부가 추진하는 '중소기업직업훈련컨소시엄' 제도의 일환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29명이 6개월 가량 출판교육을 받고 출판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sbi 8개 정규과정 중 대학생과 출판계에 입문하려는 일반인들이 주로 신청하는 '편집자 입문 과정'이 가장 인기가 높다. 이 과정의 5기 수료생인 윤경미 씨는 "하나의 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실전에 있는 강사 분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은 게 출판인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출판 창업자 과정(1기)을 수료한 이은성 씨는 올 1월 'e-비즈북스'라는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6월까지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서 3권의 책을 냈다.

이 씨는 "창업 과정에서 배운 그대로 실행한 결과 3권이 동시에 인터넷 서점의 해당 분야 베스트 10에 들면서 초기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편집과 마케팅쪽에 인원을 1명씩 늘린 이 씨는 "올해 말까지 20권의 책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혜경 회장은 "sbi에서는 대학이 할 수 없는 현장에 필요한 실무형 교육이 이뤄진다"며 "좋은 인력이 있어야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sbi가 곧 한국 출판계의 앞날을 좌우하는 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