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4시간 숫자와의 전쟁… 수익률 떨어지면 속 바싹 타회의… 시장 흐름 주시… 기업 탐방… 공시 체크… "긴장의 연속"

대한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2팀 성창훈(40) 부부장은 매일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회사 사무실에 도착한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의 회계를 살펴본 뒤 포트폴리오에 편입한 종목별로 매매 현황과 환매 상황 등을 점검한다. 이어 자신이 관심을 둔 업종의 동향과 기업의 실적 변화 등도 꼼꼼히 챙겨 본다.

오전 7시30분이 되면 숨돌릴 틈도 없이 아침회의에 참석한다.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운용팀과 전략팀이 공동으로 투자전략 회의를 가지고, 나머지 요일에는 외부의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를 초청해 세미나를 여는 형식을 취한다.

오전 9시. 주식시장이 개장되면 본격적으로 바빠진다. 주가 흐름과 경제 동향에 따라 특정 종목을 사느냐, 파느냐, 보유하느냐 하는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장이 선 동안 숫자, 그래프와의 피 말리는 신경전은 불가피하다.

장이 마감되는 오후 3시. 잠시 여유를 부릴 법도 하지만 성 부부장은 곧장 채비를 갖추고 기업 탐방에 나선다. 새로운 투자 종목 발굴을 위해 2004년부터 해온 일이다. 물론 증권사에서 산업이나 기업 관련 보고서를 쏟아내지만 “애널리스트가 만든 ‘숫자’가 과연 맞는지는 기업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기업 탐방은 일주일에 2~4회 정도는 나간다.

그는 기업 탐방을 마치면 오후 7시쯤 회사로 돌아온다. 이때부터는 하루에 50~100통 정도 받는 이메일을 찬찬히 살펴보거나 기업들이 장 마감 이후 내놓은 ‘올빼미 공시’ 등을 점검하며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퇴근 시간은 대략 오후 9시쯤. 숨가쁜 여의도 펀드가(街)의 하루는 이맘때가 돼야 저문다.

성 부부장은 총 9,000억원 규모의 23개 펀드를 운용하는 중견 펀드매니저다. 수많은 고객들이 맡긴 엄청난 액수의 돈을 굴려 수익을 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만큼 스트레스도 상당히 크다. 예전에 없던 흰 머리가 부쩍 는 것도 펀드 운용을 하면서부터다.

“염색을 안 하면 기업 탐방 때 다섯 살은 많게 보더라고요. 그래서 늙수그레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한 달에 한 번은 염색을 합니다. 펀드매니저는 알고 보면 ‘3D 업종’이에요. 여기서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정보와 자료를 더 많이 봐야 하죠, 탐방도 더 자주 다녀야 하죠, 산업 변화 등에 대한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하죠. 정말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힘은 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즐긴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스트레스가 없을까. 아무리 느긋한 펀드매니저라도 ‘수익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한투자신탁운용의 경우 자사가 운용 중인 펀드에 대한 공식 평가를 1년에 두 번 한다. 이때 펀드 시장의 유사 펀드들과 수익률을 비교해 그보다 크게 낮으면 펀드매니저의 운용권한을 정지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엔 펀드평가회사 인터넷 사이트에 수익률이 실시간으로 뜨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는 항상 수익률의 사슬에 묶여 있는 현실이다.

스트레스의 주범인 수익률은 때로는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해결사가 된다. 물론 시장 평균을 웃도는 높은 수익률을 거뒀을 때 이야기다. 적지 않은 금전적 보상도 주어져 기쁨은 더욱 크다.

“평소 스트레스 풀려고 이것저것 많이 하죠. 땀을 흠뻑 쏟을 만큼 운동도 하고, 팀원들과 함께 영화 관람이나 회식도 하고···.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수익률이 좋으면 모든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가버려요. 내 판단이 옳았다는 희열과 보람, 사실 그 매력에 펀드매니저를 하는 거죠.”

성 부부장은 지난 2년간 펀드를 운용하며 썩 괜찮은 수익률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에는 ‘성장 배당형 펀드’ 분야에서 20여 개 중 최상위권에 올랐다. 전반적인 활황 장세가 이어진 덕도 있지만 유사 펀드들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만의 노력 덕택일 것이다.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그가 선호하는 종목은 이른바 배당주. 배당주는 대부분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현금 흐름이 좋은 데다 주가가 떨어질 때도 하방 경직성의 장점을 지녀 포트폴리오에 많이 편입한다고.

시장에서도 배당형 펀드의 덩치가 계속 커지고 있다. 2005년 초만 해도 1조원이 채 안됐지만 지금은 5조원대에 이른다. 참고로 전체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올 10월 현재 40조원을 훌쩍 넘어선 상황.

성 부부장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는 배당주 외에도 자산주, 가치주가 골고루 포함돼 있다. 이 같은 포트폴리오 편성은 펀드 운용에 관한 그의 스타일과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다.

“시장을 읽되 단기적 상황보다는 장기적 전망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포텐셜(내재가치)이 큰 기업에 투자하거나 또는 포텐셜 증대 가능성을 가진 기업을 발굴해 ‘레벨업’ 될 때까지 장기 투자하는 거죠.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런 종목들이 시장에 대부분 알려졌기 때문에 ‘될성부른’ 종목을 새로 발굴하는 게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펀드매니저가 펀드 운용의 권한을 100%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펀드매니저들은 통상 회사 시스템과 내부 규제의 틀 안에서 펀드를 운용한다. 종목 선택의 재량권 역시 전적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

대한투자신탁운용의 경우 매월 전체 합의를 통해 ‘월간 모델 포트폴리오’를 짜는데 펀드매니저들은 전체 투자의 80% 정도는 이를 따르고 20% 정도만 자율적으로 투자한다. 또한 자율적인 투자도 미리 정해둔 200개 정도의 종목 풀(pool)을 가리키는 이른바 ‘유니버스’ 안에서 이뤄지도록 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펀드매니저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종종 그 20%가 펀드 수익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감독이 승부를 좌우하는 경기는 1년에 몇 번 안 되지만 바로 그 경기가 한해 성적을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펀드매니저도 그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어요.”

야구의 승장(勝將)처럼 펀드매니저도 시장과의 두뇌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구슬 서말을 꿰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업 공시사항, 분기실적, 애널리스트 보고서, 경제 지표 등 공개된 정보의 분석 능력은 물론 기업 탐방을 통해 해당 종목을 훤히 꿰뚫어야만 정확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고객 재산의 선의의 관리자’입니다. 수천억원짜리 펀드라면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돈을 맡겼겠습니까. 그러기에 늘 고민하고 발품을 팔며 연구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펀드매니저로서 좌우명을 물으니 성 부부장은 머뭇거림 없이 ‘유수불쟁선(流水不爭先,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말을 꺼냈다. 자본시장의 관점에서 풀어보자면 무리수를 두지 말고 유연하고 순리에 맞게 펀드를 운용하자는 다짐이다.

“고수들은 흔히 수익률에 연연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단기 승부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죠. 사실 눈앞의 이익을 노리다 나중에 돌아올 훨씬 큰 수익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수익률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지요.”

펀드매니저는 어쩌면 외줄에 올라 위태위태한 발걸음을 옮기는 자본의 곡예사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오직 정확한 판단과 냉철한 균형 감각뿐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