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건설사에 엄청난 특혜준 셈… 서민들 내 집 꿈 까마득"지금 거품 안 잡히면 후유증 혹독할 것, 후분양제가 해법"

“소비자는 지금 아파트 분양 시장에서 속칭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수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서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 후분양제 전격 실시, 노무현 대통령의 분양가 원가 공개 발표까지···. 과연 거품 논쟁이 일고 있는 집값은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여전히 ‘글쎄’다. 아쉽게도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아니다’에 더 가깝다. 오히려 추석 이후 아파트 값이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일부의 전망과 달리 서울·경기 등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는 뉴스가 덩그러니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작금의 아파트 등 전국적인 부동산 거품의 진앙지를 ‘분양가 자율화와 선분양 제도’에서 찾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건설업체의 분양가를 자율화해줬으면 당연히 후분양제를 해야 되는데 여전히 선분양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의 김헌동 단장은 “현재 건설업체들은 분양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면서도 선분양을 할 수 있는 2가지 특권을 동시에 누리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분양가 자율화는 사실 후분양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당초 정부가 건설업계에 분양가 자율화를 해주면서 후분양제 도입을 함께 추진한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분양가를 자율화시켜 주면서 선분양제까지 유지한다면 자칫 건설업체들에게 지나친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수 차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쉽게 접근하면 정부의 분양가 규제는 선분양과 패키지다. 즉 정부가 건설업체들의 분양가 인상을 적극 막아내는 대신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미리 분양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이다. 김영삼 정부까지 과거 정권에서 줄곧 선분양제가 유지돼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분양가 규제 덕분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분양가 규제는 DJ정부 들어 폐기되고 만다. IMF 이후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자 정부가 분양가를 자율화해주고 만 것. 지방은 1998년부터, 서울 수도권은 2000년부터 분양가 제한이 풀려버렸다.

그런데 이때 함께 거론되던 후분양제 도입은 슬며시 미뤄지고 만다. 당연히 건설업체에 주어지던 최고 특혜로 꼽히는 선분양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이후 부동산 광풍의 단초가 돼버렸다.

김헌동 단장은 “아마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소비자 중심의 주택 정책으로 전환하라’는 당초 지시대로 취임 직후 후분양제를 도입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 단장은 이듬 해 “잘못된 정책이 결국 잘못된 미래를 만들어 내고 만다”는 우려 속에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고 창립 취지를 설명했다.

김 단장은 부동산 가격 거품의 저변에는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분양가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단 주변 시세 보다 높게 책정된 분양가는 주변 아파트나 토지 시세를 끌어 올리고 이는 잇달아 또 다른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를 상승시키는 연쇄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당초 정부의 정책에서도 실패 요인이 지적된다. 예전 타워팰리스 분양에서처럼 지금도 지방에서는 융자금 무이자 할부와 분양권 전매가 허용되는 곳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경기를 활성화 시킨다는 명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라고 김 단장은 강변한다.

“돈 한 푼 없이도 분양 시장에 뛰어 들어 분양 받은 뒤 전매 차익을 거두고 나가면 그만인 것이 상례가 되는 것이죠.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김 단장은 “정부가 소비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기 때문에 운동본부가 탄생한 것”이라며 “이제는 진정으로 소비자들을 위한 주택 정책이 태어나야만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분양가 원가 공개 부분에 있어서도 김 단장은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맘만 먹으면 건설에 소요되는 원가 공개를 하고도 남는다”는 것이 운동본부의 주장이다. 이미 지방자치단체는 건설업체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공받고 있고 공기업들도 관련 서류를 오픈만 하면 일이 간단하다고 김 단장은 지적한다.

“건설업체의 평균 이익은 5~7%라는 것이 세계적인 기준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모두 이 정도 이윤만으로 집이나 건물들을 짓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터무니 없습니다. 그러니까 원가를 공개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운동본부는 부동산 자산 거품으로 인한 자산의 양극화 현상도 우려한다. 국민 대다수가 소외를 느끼는 사이 일부 토지나 건물, 아파트 소유자들은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와 관련, 건설업체와 공기업이 최근 2~3년간 챙긴 수익만 7조원이나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 바 있다.

김 단장은 이 정부 들어 부동산 값만 1,100조원 어치나 올랐다는 통계 조사도 있다”며 “이는 우리 국민들이 5년간 내는 세금에 맞먹는 금액”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여간 크지 않습니다. 뒤늦게라도 아파트를 산 사람은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고 이 얘기를 듣는 나머지 대부분은 화가 나서 못사는 것이지요.” 김 단장은 이런 이유에서 “융자를 받는 등 무리해서라도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 열풍에 뛰어드는 부작용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걱정을 표시한다.

“이제 국민들이 부동산 불패 신화에서 빠져 나오도록 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나서서 얘기해도 집 값이 오르기만 하니 너도나도 집 사는데 나서고 이는 다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김 단장은 “후분양을 하면 투기 수요가 사라지고 분양권 딱지라든가 프리미엄이라는 용어도 사라지게 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김 단장은 부동산 거품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한다. 만약 거품이 자꾸 커지고 언젠가 꺼지게 되면 부작용도 그만큼 증폭될 수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일본의 10년 불황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한 혹심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어서다.

“한국 사람들에게 평생 집 한 칸 마련하는 것은 일생의 소원, 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턱도 없이 오르기만 하는 부동산 거품은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고통과 절망, 상실감입니다. 내집 마련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면 삶의 희망까지도 사라지는 것이죠.”

김 단장은 “부동산 거품으로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한국 경제와 사회에 끼칠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거품 제거에 하루 빨리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