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원가 공개'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에 건교부도 소극 일관전문가들 "차라리 후분양제 실시하면 전매 등 투기 차단 가능"

“요즘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얘기들을 많이 하죠.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분양 원가가 문제가 아니고 후분양제를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가 절대로 중요합니다.”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의 김헌동 본부장이 부동산 폭등 처방을 위해 내린 결론이다. 김 본부장은 더욱이 “지금 아파트 후분양제에서 갑자기 분양 원가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져 있는 것은 현재의 선분양 제도를 유지하고 싶은 세력의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전에도 후분양제가 거론될 때마다 갑자기 분양 원가 공개를 들먹이며 정치쟁점화돼 온 것도 모두 후분양제 반대 세력들의 의도가 작용한 때문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서울시가 은평 뉴타운에 대해 내놓은 후분양제와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두 가지 정책 중에 과연 어느 것이 더 효력이 있을까? 이에 대해 시민단체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후분양제의 손을 더 높이 들어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는 후분양 제도로 가기 전까지 과도기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찌감치 부동산 시장에서 후분양제도를 대책으로 내세워 온 경실련은 후분양제가 실시되면 부동산 폭등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윤 국장은 “지금은 아파트 후분양 제도로 진입하기 직전 선분양과 후분양제가 뒤섞인 과도기적 상황”이라며 “특히 공공 부문이 추진하고 있는 아파트의 원가 공개부터 실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평 뉴타운을 맡고 있는 서울시가 세운 공기업인 SH공사를 비롯,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이 모두 원가 공개 대상에 해당한다.

분양 원가 공개 추진 과정에서 공공 부문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SH공사나 주택공사 같은 공기업이 아파트를 짓거나 토지공사 등 공공에서 제공한 택지를 사용해 건설하는 주택은 당연히 원가 공개에 앞장서야 한다. 공공 부문은 민간 건설업체들의 과도한 이익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 건설하는 아파트나 주택에 대해서는 숨통이 열어 놓고 있다. 순수 민간 사업자들은 필요시에만 원가를 공개할 의무가 있다고 윤 국장은 단서를 달자는 것. 한마디로 소비자가 동의할 만한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굳이 원가를 따질 필요까지 있겠냐는 얘기다. “지금 건설사들이 원가 공개 압력을 받는 것은 당연히 ‘적당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범위를 넘어서 과도한 이익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특히 분양 원가 공개가 확실한 부동산 거품 잠재우기의 처방이 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벌써부터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가장 큰 이유는 분양 원가 공개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불확신이 뿌리깊게 깔려 있어서다. 당연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가 공개 추진 과정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한몫한다.

구체적으로 부동산 정책의 주무부서인 건설교통부에 대해 여론의 의혹의 눈초리는 매섭다. 노무현 대통령의 원가 공개 발표 직후 건교부가 관련 위원회 구성을 추진하는 것 조차 6~8개월 동안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시간 벌기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그것.

실제 위원회 구성이 완료될 즈음인 내년 4월에는 각 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는 시기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위원회 구성에 나서고 또 관련 용역을 준다고 시간을 보내다가 내년 위원회 구성이 완료되면 바로 선거철로 돌입하게 된다. 대선으로 정신이 없게 될 각 정당이나 국회가 언제 관련 법안을 입안 하고 처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윤 국장은 이에 대해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년에는 원가 공개가 된다고 기대할 수 있겠느냐”며 “참여정부에서의 원가 공개가 실현될지 확신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의 원가 공개에 대한 입장이나 발표는 예전과 달리 변했을지 몰라도 건설교통부는 전혀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고 주무 부서를 강하게 질타했다.

경실련은 지난해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 논쟁의 초라한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원가 공개 여론이 비등해지자 주택법을 개정해 현재 7개 항목이 공개되고 있는데 지금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건설비58개 항목 중 겨우 몇 개나 더 추가되는 정도로 마무리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 경실련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건설업체들의 투명성과 진정성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할 말이 많다. 현재 건설사들이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여러 차례 건설 예정가를 관계 당국에 적어내고 있는데 이마저도 금액이 들쭉날쭉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당국의 허가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시점에는 가격을 적게 써내 ‘사업 추진이 어렵지 않다”며 사업 착수를 쉽게 하지만 감리사를 지정할 때는 사업비를 과도하게 줄여 제출한다. 물론 감리비로 지출할 금액을 줄이기 위해서다. 또 나중에 분양 시점이 되면 종전과 달리 건설비를 부풀려 신고한다. 건축비나 땅값이 많이 들었다고 해야만 비싼 분양가를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분양제가 제대로 시행되면 부동산 시장에서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공급자, 즉 건설사 중심의 시장이 소비자의 권리와 선택권이 우대되는 시장으로 변화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또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불투명성이 해소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승인이나 인허가 과정에서 횡행했던 뇌물 구조가 많이 차단되고 행정의 투명성이 담보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기업의 회계 처리가 투명해져 부풀리고 줄이는 속임수 없이 건설사는 적정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무엇보다 경실련은 여러 가지 허점이 많은 원가 공개에 비해 후분양제의 장점을 특히 강조한다. 선분양제가 전매와 투기 바람을 일으키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면 후분양제를 실시하게 되면 전매나 투기를 원천부터 차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윤순철 국장은 “후분양제를 실시하면 건설된 아파트를 보고 소비자들이 보고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이는 곧 올바른 시장 경제 체제가 자리잡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