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매매·대리출산 확산불임 부부의 행복추구권·전통적 윤리 훼손 '딜레마'… 사회적 합의 도출 절실

최근들어 아이를 갖지 못해 산부인과를 찾는 불임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상당수가 난자 매매 등 음성적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임재범 기자
‘체외수정은 2,500만원, 자연임신은 4,000만원’.

언뜻 병원에서 불임 치료를 받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오답. 정답은 요즘 시중에서 거래되는 대리출산의 거래 가격이다. 이러한 은밀한 거래가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돈만 주면 질 좋은 난자나 정자도 구할 수 있고, 아이까지 낳아주는 대리모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갈등의 갈등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들 제 심정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대리모 하실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출산 후 한국에 안 계실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계시더라도 불상사가 안 생길 수 있으면 좋겠구요. 일단 만나 뵙고 조건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신랑도 같이 만나길 원하네요. 좀 급해서 당장 하실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그럼···.”(nsjhappy88)

“서로의 고충으로 사례금을 받고 생명을 거래한다는 생각에 몹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만, 외부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아이를 얻지 못하는 분들의 대리모가 되어 건강한 출산을 해드리는 일이 너무 예쁜 우리 딸 아이의 정서와 보살핌에도 도움이 될 듯 싶어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을 함께 느끼실 분이 계시다면 좋은 인연을 맺고 싶습니다.”(nimug@)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이 최근 공개한 ‘대리모 및 난자매매 현황’에 따르면 최근 인터넷 카페ㆍ블로그를 매개로 상업적인 대리출산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대리출산을 알선하는 카페가 전년에 비해 3배나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모 포털사이트에서는 대리출산 알선 카페가 4개였으나 올 9월 말에는 12개 카페에 달했고, 대리출산 광고도 34개에서 65건으로 크게 늘었다. 12개 카페 관련 블로그에선 대리출산 모집이 목적인 곳이 8개, 나머지는 4곳은 불임정보를 교환하면서 난자 매매와 대리출산 의뢰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서울과 도쿄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도너 뱅크’(DNA-BANK)사의 일본인 불임부부 대상 난자 매매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난자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며 “관련 국내 법규의 부재로 일본인 불임부부를 위한 대리출산까지 고액에 거래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쉬, 쉬’하며 음지에 묻어둔 난자 공여와 대리모 출산 문제를 양지로 끌어 올려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이다.

▲ 불임 여성의 애환 간과할 수 없어

50을 바라보는 주부 오모 씨. 나이가 많아 자연임신이 힘들었지만 그럴수록 아이에 대한 욕망은 더 커졌다. 더 늦으면 아이를 갖는 시도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250만원을 주고 난자를 구해 임신을 시도했다.

30대의 주부 김모 씨는 난소 이상으로 고민하다 동생에게서 난자를 제공받았다. 난자 체취로 고생한 동생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50만원을 줬다.

지난해 ‘도너 뱅크’ 사건 당시 난자를 돈을 주고 샀다가 경찰에 붙잡혔던 이들 여성들은 대부분 구입한 난자로 임신을 한 상태였고, 그간 불임으로 겪은 고통 등의 이유로 모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불임 여성들의 애환을 달래줄 수 있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처벌만 할 순 없지 않느냐”며 처벌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한 난자 매매 사건 수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로 불임부부의 ‘알선 브로커에 대한 선처’를 꼽았다. “브로커에 대해 불임 부부들이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대신 호소하는 모습에 놀랐어요. 이 사람이 없으면 불임 부부들이 어떻게 애를 갖냐고요. 생명의 은인이라고까지 말해요.” 브로커가 불임 부부들에게 소개 대가로 건당 1,000만원 이상의 부당 이익을 챙겼음에도 오히려 고마워하는 모습이 놀라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자신의 피가 흐르는 아이를 원하는 불임 부부의 행복추구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 이러한 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해 한림대학교가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0% 이상이 대리모 출산에 부정적이었다.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설문 조사에서 금전적 대리모에 대해 83.4%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고, 비금전적인 대리모의 경우도 83.3%가 부정적이었다. 반대 의견은 대도시일수록,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많았다.

대체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난자 매매와 대리모 출산을 막자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대책 마련에 관해서는 각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우리나라는 상업적인 난자 제공에 대해선 생명윤리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대리모에 대해선 법적 규제가 아직 없다. ‘금전적인 이유로 한 대리모 시술을 금한다’는 의사협회 지침이 있을 뿐이다.

지난해 한림대학교가 산부인과 의사 1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살펴봐도 ‘대리모 시술을 권유하겠느냐’는 질문에 65.1%가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나 비금전적 대리모에는 다소 허용적이어서 53.1%만이 반대했다. 의사 2명 중 1명은 비상업적 대리모의 경우에는 대리모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견인 것이다.

함춘여성클리닉 김기철 원장은 “난자 공여도 하나의 불임 치료법이므로, 다른 대안이 없는 불임 부부에게 시술을 도와주는 길이 있었으면 한다”며 그러나 “난자 공여 및 대리모의 양성화와 관련해서는 윤리적ㆍ법적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난자 매매 및 대리모 문제를 ‘혈통 중심 사회에서 불임 여성의 현실’과 관련해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손봉희 활동가는 “난자 매매 및 대리모 문제는 부계 혈통 중심 사회에서 출산을 강요당하는 불임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것과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아이의 어머니는 누가 되나

대리모 허용의 논쟁거리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리모를 통해 아기가 태어나면, 과연 ‘아기의 어머니를 누구로 봐야 할지’도 문제다. 전통적인 모성과 가족의 기본 개념을 뒤흔들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한 외국의 판결도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1986년 발생한 미국의 ‘베이비 M’ 사건은 대리출산으로 태어난 아기의 친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주기로 한 대리모가 출산 후 마음을 바꿔 아기를 직접 키우겠다고 했지만, 법원은 대리출산을 의뢰한 부모에게 친권을 주는 판결을 내렸다. 대신 계약 자체의 정당성을 문제로 대리모에게는 아기를 만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대리출산을 의뢰해 쌍둥이를 얻은 50대 부부가 법원에 모자관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리출산으로 아이를 얻었다면 엄마가 아니다”고 판결한 것이다.

갈수록 불임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대리출산 문화가 확산되면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논쟁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차이에 따라 이에 대한 답도 상이할 수 있다. 여하튼 난자 매매 및 대리 출산 논란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불임 부부의 고통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시점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서울시내 한 산부인과 연구소에서 연구진들이 수술실에서 채취한 난자를 현미경으로 확대, 살펴보고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