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폭등따라 담보대출 등 폭증세… 상반기 15조 늘어 337조민간경제硏·금융연구원·IMF 등 "과다 대출 막아라" 촉구

“개인 빚이 계속 늘어나도록 방치하다가는 또 다시 경제 위기가 재발될 수 있습니다. 제2의 환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몇 년 전 카드 사태보다 더한 충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급증하는 가계 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 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마디로 개인들이 지고 있는 부채, 즉 ‘빚’의 규모가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개인 부채의 절대 금액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최근 집값 급등에 힘입어 증가세가 크게 확대되는 데다 일부 금융 기관의 경우 과당 경쟁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것은 더욱 위기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때문에 급작스럽게 대출 금리가 오른다거나 외부 충격으로 주택 가격이 떨어지며 부동산 거품이 붕괴될 때 카드 사태에 버금가는 ‘가계 빚 대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개인들이 부채를 갚아 나가기 어렵게 되면 금융사들을 부실화시켜 제2의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이 급증, 이미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통계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한 달간 무려 2조7,414억원이 늘어 지난 5월 이후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런 상승세는 10월 한 달만이 아니다. 집값이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지난 9월에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그달에만 2조5,969억원이 늘어 8월의 1조3,255억원보다 2배 정도를 기록했다. 6~8월에는 금융 감독기관의 지도로 주택담보대출이 주춤하긴 했지만 역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던 올 상반기 4, 5월에도 각각 3조원대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처럼 주택담보 대출이 늘어나면서 개인들의 빚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가계의 금융 부채는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전년 말보다 8.6%(연율 기준) 증가했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개인 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 거품과 연관이 매우 깊다. 부동산 가격이 최근 수년간 진정되지 않고 상승 곡선 일변도를 보이면서 일반인들이 너도나도 돈을 빌려 집을 사는데 뛰어들기 때문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급등 여파로 온 나라가 투기장화하자 너도나도 무리하게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게 개인 부채 급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수년간 지속돼 온 저금리 기조는 소득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묻지마식’ 대출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한국은행의 집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가계 대출 잔액 330조9,000억원 중 63% 가량인 206조9,000억원에 달한다. 보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포함하면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57조를 상회한다.

하지만 4년 전인 2001년(6월 기준)에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83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무려 4년여 동안 2.5배나 급증한 것이다. 이는 2002년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한 지난 4년 간의 흐름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 개인들의 빚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계 대출은 337조6,000억원으로 15조6,000억원이나 급증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늘어만 가는 빚의 크기에 비해 개인들의 부채 상환 가능성, 다시 말해 빚을 갚을 능력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가계의 금융 부채는 8.6% 늘어났지만 가계의 금융자산은 3.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마디로 재산은 줄어드는데 빚은 불어난다는 얘기다.

상반기 기준으로 금융자산 대비 부채 비율도 44.3%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32%, 일본의 2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재 가계 부채 규모는 2006년 6월말 기준으로 628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연일 사상 최고 금액을 경신하는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특히 경기 둔화에 따라 가계의 소득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추세여서 그만큼 국민들의 부채 상환 능력도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실련 박완기 정책실장은 “특히 일반인들이 무리를 해서 과도하게 돈을 빌려 산 집이 일순간 폭락해버린다거나 이자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날 경우는 경제 시스템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도 전혀 무시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때문에 국내 가계 대출의 규모가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경제 연구소, 학자, 시민 단체들로부터의 경고음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이제는 국가 경제 차원에서 가계 대출 위험 관리 체제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들의 경고는 지금과 같이 일반인들이 ‘너도나도 무리해서라도 돈을 빌려 쓰는’ 가계 대출 추세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금융 시스템 위기와 실물 경제 침체 등 엄청난 부작용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한다.

경실련은 올 하반기부터 가계 부채를 심각한 현안으로 보고 지난 7월에는 정부 금융감독기관에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 따른 모든 책임은 한국은행과 재경부, 금감원, 정부 챙책을 총괄하는 청와대에 있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

경실련 서희경 부장은 “향후 시장 혼란이나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모든 책임 소재를 미리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사전에 미리 경고된 부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막상 사태가 터지면 공적자금으로 충당하는 잘못된 정책 관행을 바로 잡아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경실련은 이와 관련, 주책담보대출의 위험성에 대한 성명을 올 상반기부터 수 차례 내고 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가계부채 급증, 현황과 정책과제’라는 경제정의 포럼을 열기도 했다.

한국금융연구원도 최근 가계대출 위험관리 대책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김동환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최근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거시경제에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실물경제 침체를 확대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 “향후 금리 상승 또는 경기 둔화 등으로 가계 및 중소기업의 원리금 상환능력이 저하되면 대출부실화 및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원리금 상환압력 증가는 소비 및 투자지출의 감소로 이어져 실물경제의 침체를 더욱 가속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보다 앞선 지난 9월 이미 한국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IMF는 2002년 한국의 카드 사태를 예로 들며 가계 부채 급증의 폐단을 지적하고 적절한 금융 통화정책을 통해 과도한 가계대출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성태 한은 총재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큰 폭으로 늘어난 주택담보 대출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며 경계해야 할 현안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때문에 금융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또 한번 나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안전성 제고를 위한 규제 및 감독 개선방안을 마련, 궁극적으로 거시경제의 안정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 못하고 거시경제 전체에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순차적으로 실물경제 침체를 확대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청와대는 지금 그 경고음을 듣고 있을까.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