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과서 기반 심화지식 평가연세대, 수리적 상상력에 높은 점수

장운 TOPIA논술아카데미 원장
서울대가 발표한 2차 예시문항의 특징은 교과 과정과의 연계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논술고사는 출제교수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 교과과정과 거리가 먼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2차 예시문항에는 서울대가 교과 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한 흔적이 보인다. 특히 인문계는 교과서 지문을 다수 활용했고, 자연계 예시문항도 역시 여러 교과의 공통원리를 활용, 교과를 연계시켜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예시되었다.

서울대 '통합교과 논술'

인문계 예시문항의 <문항 1>은 고1 사회 과목의 ‘사회적 쟁점과 합리적 의사결정’ 및 ‘사회적 쟁점의 정치적 해결 과정’이라는 단원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이다. 논제1)은 이윤극대화가 궁극적 목표인 기업과 국가의 정책판단 기준이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논제2)는 현실의 사회적 쟁점 해결 과정은 합리적 결론만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집단 간의 역학과 갈등 속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과정임을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문항2>는 그림의 비교 감상을 소재로 다루었다. 논제의 구성을 보면 먼저 제시문들의 차이를 얼마나 정확히 분석하고(논제1), 쟁점을 확장하여 주어진 그림을 분석하도록 요구(논제 2)했다. 그림의 세부를 분석하여 하나의 관점과 연결짓는 일이 분석적 감상의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 문제는 그림을 단순히 감상 차원을 뛰어 넘는 예술철학적인 깊은 사고를 요구한다. <문항 4>는 문학 교과서의 지문을 활용했다. 황현의 ‘절명시’와 김승옥의 ‘무진기행’,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 논제1)은 글 속에 드러난 저자의 고민을 비교 설명하라는 것인데, 제시문만으로는 논제에 답을 할 수 없고 사전 교과지식이 필요했다. 논제2)는 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저자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지를 고민하도록 요구했다.

자연계 문항에서도 인문계 문항과 유사한 취지를 읽어낼 수 있다. 자연계 문항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인문계에 비해 다소 난이도가 높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풀이형 문제에 익숙했던 그간의 수능이나 논술의 관점에서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5개의 자연계 문항은 전체적으로 각 문항마다 하나는 개념과 정의에 관한, 다른 하나는 그것의 응용에 관한 논제들이 각각 출제되었다.

<문항 1>은 원뿔곡선의 성질(논제 1)과 그 이용(논제 2)에 관해 묻고 있다. 원뿔 곡선은 수학의 소위 기하학 영역에 해당하지만, 파라볼라안테나나 자동차의 전조등 등 실생활에 널리 이용되고 있어서, 물리 교과의 반사나 지구과학의 망원경에서도 역시 그 원리를 다루고 있다.

<문항 1>의 이러한 특징은 이번 예시문항의 전반적인 성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문항인데, 말하자면 여러 교과에 걸쳐 활용되고 있는 공통교과적 자연과학 원리를 확장하여 입체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 출제되었다는 것이다. <문항 2>는 미적분의 물리학적 의미(논제1)를 물었는데, 사실 ‘미적분이 없으면 고전역학도 없다’고 할 만큼 미적분은 물리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수학이 근대과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인가를 묻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문항 2>는 바로 그런 미분 개념을 활용하여 구심력의 방향을 증명하라는 문제였다. <문항 3>은 로그함수를 지구과학에 응용하도록 함으로써, 자연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능력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해결을 위해 모델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문제였다. <문항 4>는 운동과 에너지에 관한 문제이며, <문항 5>는 물리학적인 지식과 생물학적인 지식을 연계하여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수학, 물리적인 개념이나 정의에 익숙하지 않거나 혹은 과목 간의 연계 훈련을 받지 않은 탓에 체감 난이도가 높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자연계 문제는 대체로 교과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연세대 '다면사고형 논술'

연세대의 통합교과논술의 기본 방향은 다면사고형 논술이다. 발표된 예시문항을 두고 학부모와 입시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본고사 부활’이라며 비판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연세대학교측의 출제 의도를 곡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연세대학교 통합교과논술을 이해하려면 ‘다면사고형 논술’의 개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학교측은 문제 해설을 통해 ‘단순하게 수학 문제를 풀게 하기보다는 수리 현상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능력, 주어진 자료를 분석하고, 적절한 가정을 통하여 미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여, 수리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 능력, 사고력과 적응력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말하자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 사고가 가능한 학생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문계 문제 제1번 문항의 경우, 무게중심은 중학교 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연세대는 무게중심의 정의를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같은 정의를 창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측의 선발 취지를 고려하자면, 이 문제는 기존의 암기형 지식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선 학교측은 먼저 제시문을 통해 선분상에 존재하는 임의의 점 O의 고유좌표를 정의했다.

그리고 선분상의 점에 대한 좌표값을 정의하는 방법을 토대로 사고를 확장하여, 평면상에 있는 점의 좌표값을 정의하는 방법을 유추해 달라는 것이다. 이 문항은 암기된 수리적 지식을 묻는 문제가 아니라, 수리적 상상력을, 주어진 조건에 대한 분석을 논리적으로 확장하여 새로운 문제(자연현상 및 사회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계 문제도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접하는 문제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모두 주어진다. 암기된 정의나 공식을 제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연을 대상으로 하든 사회를 대상으로 하든 현실의 과학 연구에서는 그처럼 법칙을 정립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설사 주어진다 해도 수학이나 과학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리된 데이터가 아니어서, 일차적으로 주어진 자료에 대한 정리와 해석이 불가피하다. 말하자면 자연 및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는 가설을 정립하고, 그 가설을 실증적 검증하여, 귀납적 추론을 통해 법칙을 정립하는 일반적인 과정을 따르게 된다.

연세대 자연계 문제에는 이러한 과학연구 방법론에 대한 고려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1번 문항의 경우 수능이나 내신에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문제는 계급값과 도수가 모두 결정된 상태로 제시되지만, 이번 문항은 65세 이상에 대해서는 최고 수명이 제시되지 않은 열린 형태로 데이터가 제시되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첫째 도수가 백분율로 제시되고, 둘째 노령자 구간에 대해서는 평균값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당황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정의에 대한 이해보다는 암기에, 수리 논리의 확장보다는 계산에 익숙한 학생과 교사들은 이 문제를 본고사 유형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연세대학교측의 문제 해설에서 나타난 바 있듯이, 적절한 가정, 즉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가정을 통해 노령층에 대한 적절한 대표값을 정하고, 그에 기초하여 미래의 평균연령 변화를 추단하는 수리적 과정을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제가 요구하는 수학적 계산 능력은 중학교 수준의 단순한 것이지만, 도표나 그래프가 갖고 있는 사회적·자연적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 그로부터 의미 있는 가설을 도출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문항 본래의 의도라고 파악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에 발표된 연세대학교 2008학년도 논술고사 예시문제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과정까지 얻은 지식과 계산능력을 토대로, 이것을 주어진 사회적·자연적 현상에 창의적으로 확장,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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