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 혁신기법 TPS 뼈대, 모랄·팀 빌딩 등 교육테스트 통과해야… '혁신=실행' 마인드 형성에 초점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수리의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혁신사관학교’.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곳은 차별화된 혁신활동 교육 및 연수 프로그램으로 요즘 재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최고경영자(CEO)에서부터 말단 신입사원까지 한 번 들어간 사람은 생각이 싹 바뀌어 나온다는 평판에 기업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혁신은 무한경쟁과 기업환경 악화로 저마다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오늘날 기업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혁신의 당위성만 되뇔 뿐 혁신의 실체도, 방법도 모르는 기업들이 허다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터에 ‘혁신은 이런 것이다!’라고 분명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혁신사관학교의 외침은 기업들의 관심을 자아낼 만하다.

그렇다면 과연 혁신사관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을 실시하기에 혁신에 목마른 기업들이 찾아올까. 지난 4일부터 2박3일 동안 진행된 이 학교의 혁신기본교육과정에 함께 입소해 체험해봤다.

"혁신합시다" 구호 외쳐

4일 오후 2시30분께 혁신사관학교 2층의 집념 도장(道場). 점심 식사 후의 나른함이 찾아올 무렵이지만 연수생들은 오히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다. 여기에 오기 전 ‘회사 업무를 벗어나 며칠 쉬다 오겠거니’ 하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에는 곤혹스러운 기색마저 감돌았다.

대한제강 등 8개 회사에서 온 30여 명의 ‘공개 68차 혁신기본교육과정’ 연수생이 4개조로 나뉘어 이 시간에 받은 교육은 이른바 모랄(morale, 사기) 훈련 1과정과 팀 빌딩(team building). 조직 구성원으로서 일사불란한 협동과 단합을 이루는 한편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갈 자신감과 사기를 최대한 북돋우기 위한 취지다.

7~8명씩 팀을 이뤄 탁자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연수생들은 일정한 동작과 구호를 반복했다. 먼저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아 다소곳이 앉은 자세에서 선창자의 “기립” 구호에 따라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바지 재봉선을 “짝” 소리가 나도록 힘차게 때린다. 그 다음 45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서로 경례를 하고 다시 허리를 곧추세운 뒤에는 “혁신합시다!”라는 구호를 동시에 외친다. 모든 구호는 단순히 큰 목소리가 아니라 ‘극한의 목소리’로 외쳐야 하는 게 이곳의 철칙이다. 이는 극한에 대한 도전과 극복을 통해 자신감을 배양하는 훈련 방법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동료들과 군대 제식훈련과 비슷한 팀워크 훈련을 하는 것은 멋쩍기 그지 없다. 때문에 어느 팀도 동작과 구호의 일치를 쉽사리 이뤄내지 못하고 중구난방의 모습을 연출했다. 몇 차례 반복 훈련을 지켜보던 최영호 지도위원이 잠시 훈련을 중단시킨다.

“여러분들의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이유는 팀원들 간의 간격 등 현재의 문제를 제때 파악하지 않고, 또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에 자신이 선창하는 순서가 아니면 목소리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여러분들의 생산현장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혁신은 마음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점을 지적 받은 연수생들은 다들 공감한다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이어 팀별로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의논하기 위한 구수회의가 벌어졌다. 잠시 후 속개된 모랄 훈련 모습은 확실히 나아져 있었다. 모두가 얼굴이 벌개지고 허리가 뒤로 꺾일 만큼 온몸의 기를 모아 “혁신합시다!”를 외쳤다. 서로 어긋나던 동작과 구호도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갔다. 훈련이 거듭될수

김지곤 기자
록 표정에도 점차 성취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건 맛보기에 불과했다. 진짜 힘든 모랄 훈련 2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훈련은 훈련에 그치는 게 아니라 테스트를 거쳐 합격을 받아야만 하루 교육을 마칠 수 있다.

이날 저녁 10시 무렵 모랄 테스트가 한창인 1층 지혜 도장. 공개 68차 과정의 한 팀이 오후 내내 갈고 닦은 실력을 평가 받기 위해 심사위원 앞에 섰다. 어둡고 붉은 조명 아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호랑이 그림과 ‘魂’(혼)이라는 글자를 잠시 응시하는 팀원들의 눈빛도 이글거리는 듯했다.

곧 바로 테스트가 시작됐다. 첫 번째 순서는 팀원 각자가 한 명씩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것. 흐릿한 어둠 속에서도 붉어지는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발 끝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온몸도 파르르 떨렸다. ‘극한의 목소리’였다. 이어 팀워크 평가가 계속됐다.

인재 十要암송으로 절정

“오늘 할 일은 오늘~! 지금 할 일은 지금~! 해보고 생각하자!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구호와 함께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불끈 쥔 주먹으로 허공을 가르는 팀원들의 동작은 작은 군무(群舞)였다. “저 푸른 혁신 위해 그림 같은 도전하여…한 평생 혁신하세~.” 기존 노래를 개사해 만든 혁신가는 각 팀의 창의성과 재치가 번득였다. 어떻게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팀워크 평가의 절정은 인재 십요(十要) 암송. ‘과감히 고정관념을 버리는 자’로 시작해 ‘개선은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자’로 끝나는 10가지의 인재상을 얼마나 또박또박 같은 호흡으로 외치는지를 테스트했다. 결코 쉽지 않은 시험. 하지만 모든 팀이 불합격과 재도전을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테스트를 통과했다.

심사를 맡았던 진상기 이사는 “좀 낯설어 보이죠”라며 운을 떼더니 “하지만 모랄 테스트 과정이 빠지면 전체 교육의 맥이 빠집니다. 집으로 치면 기초공사 없이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 테스트는 정신자세를 가다듬고 의지와 자신감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기초공사가 끝난 이튿날. 전날 오후 내내 학교 구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던 구호는 잦아들었다. 몸과 마음으로 혁신을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혁신의 구체적 방법론을 머리로 배워야 할 차례다.

혁신사관학교가 연수생들에게 가르치는 혁신 기법의 뼈대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세계 초일류 제조기업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생산 방식(TPS)이다. TPS는 말 그대로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 또는 전사적 이익창출시스템(Total Profit System)으로 풀이된다. 도요타의 경쟁력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도 오래 전부터 TPS를 벤치마킹하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

전날 ‘최강 도요타’의 비밀을 어느 정도 전해 들은 연수생들은 이날 TPS의 적용 방법에 대한 공부를 했다. TPS를 실제 도입해 성공한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실전 지식을 쌓는 것이다.

탐구 대상은 일본의 유명 가전업체 산요전기, 교재는 NHK가 산요전기의 사례를 심층 보도한 ‘상식의 벽을 깨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내용은 산요전기의 돗토리현 공장이 원가 경쟁력 저하로 해외 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TPS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생산 효율을 기적적으로 높인 사례를 다룬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워낙 반향이 컸던 터라 7차례나 앙코르 방송을 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는 TPS의 창시자인 고 오노 다이이찌 전 도요타 부사장의 최측근이었던 수제자 야마다 히토시 일본PEC 소장이 산요전기 혁신의 주역으로 나온다. 그는 돗토리현 공장에 컨설턴트로 나가 생산라인의 문제점을 간파한 뒤 혁신을 주도했다. 그가 제안한 ‘1인 포장마차’ 방식의 조립라인은 불과 실험 5일 만에 기존의 6인 분업 제조라인보다 대당 조립시간을 앞질렀다. 분업체제가 효율적이라는 상식을 보기 좋게 깨버린 것이다.

프로그램 시청이 끝난 후에는 팀별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산요전기 공장의 문제점과 이를 혁파해 성공한 이유, 그리고 우리 회사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등 세 가지 문제가 주어졌다. 이번 혁신기본교육과정에 공개 68차 과정과 함께 들어온 평창영월정선축산농협(평창축협) 직원들의 진지한 토론과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산요전기 사례를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방법과 관련해서는 심도 있는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자기 회사의 문제점과 낭비 요인, 비효율 등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 신입사원이 제기한 육류제품 재고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기도 했다.

평창축협은 지역 축협 중에서도 수 년째 최우수 축협으로 꼽혀온 곳이다. 그럼에도 혁신 마인드를 익히는 데 열성을 보이는 것은 보다 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김광수 평창축협 상무는 “(우리가) 5년 연속 최우수 지역축협으로 선정됐고 다른 축협에서 벤치마킹도 하러 오지만 현실에 안주할 수는 없다”며 “우리는 삼성처럼 다른 업종의 일류기업을 경쟁 상대로 삼아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를 이뤄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행동계획선언서 발표

사실 TPS를 가르치는 연수기관이나 컨설팅기관은 혁신사관학교 말고도 있다. 하지만 혁신사관학교의 교육과정이 차별성을 갖는 대목은 단순히 TPS라는 지식을 강의식으로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혁신 기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혁신 마인드를 갖추도록 하고 나아가서는 실행하도록 자극을 한다는 점이다. 2박3일의 혁신기본교육과정 말미에 행동계획선언서를 작성해 발표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즉 ‘혁신은 실천’이라는 의식을 연수생들 스스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행을 이중삼중으로 강조하는 혁신 교육은 ‘혁신=실행’이라는 마인드 형성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와 관련, 공개 68차 과정에 참여한 자동차 부품업체 ㈜고산의 김만중 사원은 “현재 생산라인에서 불량 발생이 많은데 돌아가면 당장 원인 파악을 해 개선책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같은 회사 길현일 사원도 “TPS와 혁신을 배웠으니 직장에서 실천하다 보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평창축협 유연화 지소장처럼 행동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는 “낭비 시간을 크게 줄여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못 읽었던 책 70권을 읽고 회사에서는 저가성 예금(일종의 보통예금) 20억원 수신을 달성해 9,600만원의 이익을 올리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직장 동료들과 보다 단단한 팀워크를 공유하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도 많았다. 평창축협 홍영훈 계장은 “서로 잘 몰랐던 부서 간, 선후배 간, 동료 간에 이해와 배려의 폭이 넓어진 것은 큰 소득이다. 혼자 일을 하는 것보다 팀워크의 힘이 시간이나 성과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혁신사관학교의 2박3일 혁신기본교육과정은 말 그대로 혁신의 기본만 가르치는 과정이다. 혁신의 완결은 실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 이후가 더 중요한 것이다. 혁신사관학교 출신 ‘생도’들이 진정한 혁신의 파수꾼으로 거듭나 산업현장을 지키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