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의존만으론 한계 봉착 추락이냐 부활이냐 기로에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지켜본 사람들은 ‘한국이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고 자존심상해 했다. 중국, 일본, 인도 등의 고유 의상이 화면 가득 비치며 전 세계에 타전되는 동안 한국은 아쉽게도 빠져 있었다. 행사연출을 호주와 프랑스인이 했다고 하는데 그들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였던 탓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 출신 방송인 이다도시(37)는 지난 10월 초 모국에서 14년의 한국생활을 담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다’(Ida au pays du Matin Calme, JC 라테스 출판사)라는 책을 내면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만나는 프랑스인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사느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나라에서 무섭지 않느냐, 거리마다 군인이 돌아다니지 않느냐 ”등등 실상과는 너무 다른 소리를 해서 당황스러웠다는 것. 많은 프랑스인들이 한국 하면 전쟁, 핵무기 같은 회색 이미지를 떠올리며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 세계인들에게 아직 낯설다. 이는 한국의 국가브랜드, 국가경쟁력 지수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에서 한국은 61개국 중 38위로 작년에 비해 9계단이나 하락했다.

세계적 평가기관인 안홀트(Anholt)-GMI사의 2005년 국가브랜드 순위에서도 한국은 25위로 조사됐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평가금액은 2,400억 달러로 일본(6만2,050억 달러)에 크게 뒤지고 인도(2,910억 달러), 멕시코(2,810억 달러)에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같은 결과는 한국의 경제규모가 세계 11위, 무역수지는 세계 10위인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한국이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뒤떨어지고 유형의 국력은 세계적이지만 무형의 소프트 파워는 그에 못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한 국가의 브랜드는 국제적인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관계 등 전방위에 미친다.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한국의 브랜드 파워를 높여야 하는 절실한 이유이다. 그런 상황에서 매우 짧은 기간에 한국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고양시켜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단숨에 끌어올린 ‘한류(韓流)’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미래 한국의 브랜드파워를 강화할 수 있는 유력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한류의 성장기는 그러한 가능성을 담보해준다. 1997년 무렵 중국, 대만에서 한국의 드라마, 가요에 대한 열기로 시작된 한류는 홍콩, 베트남,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2000년 이후에는 김치ㆍ라면ㆍ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에 대한 이상적인 선호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류 열풍은 일본에서 ‘욘사마(배용준) 신드롬’, 가수 보아 등을 통해 증폭됐으며 미국, 중남미, 중동, 동유럽, 중앙아시아 등에 각종 드라마가 소개되면서 한류의 세계화로 이어졌다.

한류는 한국인과 한국 자체에 애정을 갖게 해 일본에서‘겨울연가’방영 이후 한국에 대한 우호적(긍정적) 관심이 25% 가량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중앙아시아와 남미에서는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처음 알게 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의 국가브랜드가 높아지면서 상당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화장품 불모지였던 베트남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킨 드라마 ‘도시남녀’, ‘모델’의 여주인공 김남주를 모델로 한 LG ‘드봉’화장품이 프랑스의 ‘랑콤’, 일본의 ‘시세이도’를 제치고 베트남 화장품 시장의 70% 점유한 예처럼 국내 대기업들이 한류스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으로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 전역의 상품 수출에서 높은 신장세를 이뤘다.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상품, 관광, 영화ㆍ방송프로그램 등 3개 부문에서 벌어들인 외화는 18억7,000만 달러(2조1,440억원)였다. 산업정책연구원은 지난해 3월 음반ㆍ영화ㆍ방송ㆍ게임 등 4개 문화산업 분야에서 한류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 모두 4조5,000억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그러나 한류의 쾌속행진은 2004년 중반부터 한류의 발원지인 중국, 일본 등에서 역풍이 불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동남아시아권으로 확산됐다. 중국어권 국가에서는 ‘한류에 대항하자’는 이른바 항한류(抗韓流), 나아가 반한류(反韓流) 기류가 형성됐고 일본에서는 ‘혐한류(嫌韓流)’가 기승을 부렸다.

중국 정부는 한국 드라마를 포함한 외국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대 방영 금지 등 방송규제 조치를 취한 데 이어 내년부터 중국 내 모든 방송국의 한국 드라마 수입 및 방영 비율을 떨어뜨릴 계획을 발표하였다.

일본에선 2004년 7월 만화책 ‘혐한류(嫌韓流)’가 발행돼 순식간에 40여 만 부가 팔려나갔고 반한류 담론이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네트워크를 통해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추세다. 한류 열기가 식으면서 올 2월 말 기준으로 한국 드라마를 편성한 일본 지상파 방송사는 모두 36곳으로 지난해 64곳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베트남, 타이 등에서는 한국 드라마를 매일같이 방영하고 있으니 자국 프로그램을 한국TV에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국 방송프로그램의 방영을 중단하거나 줄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류 열기를 가늠할 수 있는 한류관광객도 하락 추세여서 2005년 1분기 관광객은 일본인 70만1,635명, 대만인 11만1,104명, 홍콩인 4만4,59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1%, 8.3%, 26.1% 줄었다.

10년 가량 지속돼 온 ‘한류 르네상스’가 최근 몇 년 사이 ‘한류의 위기’로 뒤바뀌는 양상이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 소장은 “한류가 일방적인 문화 침투로 인식돼 각국마다 자국 문화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촉발했고 한류 콘텐츠의 참신성이 점차 떨어진 데다 작품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한 것도 (한류의)역풍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한류 위기의 원인으로 ▲반한 감정과 보수 우경화 ▲한국문화상품의 우수성에 대한 시기심 ▲현지 수입 에이전트 및 제작자들의 반발 ▲한국스타나 기업의 신뢰 상실 ▲한류를 일방적 문화공략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등을 꼽았다.

한류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오늘날 한류는 장기적인 침체에 빠지느냐 아니면 재도약하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고 진단한다. 고정민 연구원은 “최근의 한류 상황은 일시적인 침체기로 볼 수 있지만 경쟁력이 있고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지 않는다면 침체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류의 위기는 한류가 가져온 경제ㆍ사회ㆍ문화적 파급효를 고려할 때 한국의 국가브랜드와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류의 위기를 극복하고 시급하게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침체된 한류를 재점화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글로컬(‘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이란 뜻으로 global과 local의 합성어) 문화’ 전략이다. 고유한 전통문화와 첨단 기술력, 상품의 기능ㆍ이미지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제2기 한류’, ‘포스트 한류’의 핵심 키워드는 전통문화. 여기서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거나 IT 등 첨단 기술력을 접목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문화콘텐츠 강국으로 부상한다는 전략이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디지털 한류’다. 디지털 한류는 문화적 장벽이 낮아 한국의 발전된 인터넷, 온라인 게임, 모바일콘텐츠, 휴대폰 디지털 가전제품 등 디지털 콘텐츠 수출이 증가하면서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DMB, 와이브로 등 디지털 콘텐츠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하고 해외에도 진출해 디지털 한류의 영역이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다음은 한국 전통문화의 브랜드화(한브랜드)를 통한 한류의 세계화 전략이다. 한복, 한식, 한지, 한옥,한글, 한국학 등 한(韓)브랜드를 생활화, 산업화, 세계화해 한류를 확산하는 것이다.

한복은 이미 서양 유명 디자인들이 주목하는 동양복식이 됐고 한식의 대표격인 김치는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지난 2월 ‘파리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한글 디자인 옷이 호평을 받는 등 한브랜드는 ‘한국’이라는 국가 이미지를 가장 확실하게 각인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문화융합(Cultural convergence)의 확대를 통한 한류의 확산도 시도하고 있다. 한ㆍ중ㆍ일 등 동양적인 가치를 담은 문화의 융합을 통해 아시아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나아가서는 소재의 국제화, 세계공통적 정서의 수용 등을 통해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국제적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최근 한ㆍ중ㆍ일ㆍ홍콩 4개국이 공동 투자한 시대극 ‘묵공(墨攻)’제작은 대표적인 예로 어느 나라의 배타적인 지배가 아닌 문화융합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한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지역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 전략으로 거론된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남미, 북미, 유럽, 중동 지역 등에 한류의 거점을 마련하여 그 지역 한류 확산의 교두보로 활용하고 현지화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제도 많다. 한류의 원천은 콘텐츠이므로 콘텐츠의 경쟁력 확보가 급선무다. 현재보다도 더 다양한 소재, 탄탄한 스토리텔링, 기술력 높은 촬영기술 등을 통해 콘텐츠의 경쟁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연구원은 “한류의 발전단계로 볼 때 향후 한류는 확대재생산과 동아시아 및 전 세계에 공유한 역사적 체험으로 자리잡으면서 정신적, 문화적으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새무얼 헌팅톤은 ‘문명충돌론’에서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 세계정치의 핵심적 갈등요소는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경제도 아닌 바로 문화”라고 했다. 변호사이자 ‘20세기 폭스’사의 중역을 지내는 등 할리우드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제인 케이건은 “세계 문화산업 시장에서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시대는 끝났다. 미래는 한류다”라고 주장했다.

기로에 선 한류가 위기를 넘어 제2기 신한류 시대를 열며 새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갈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