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걸 우이 부총리, 하반기 퇴진 가능성… 정치국 내 여성자리도 늘 듯류옌둥, 우아이잉, 쑹수옌, 우샤오링, 후샤오롄, 푸잉, 장치웨 등 주목

우이 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가 2007년 하반기 17차 전당대회에서 퇴진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그녀를 대신하게 될 여성 지도자들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우이 부총리가 지난 12월 14,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미 경제전략대화에서 미국측 단장인 헨리 폴슨 재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2007년 세계 정치계의 화두는 단연 여성이 될 것이다.

새로 개원할 미국 하원에서 낸시 펠로시 민주당 의원이 여성으로는 처음 의사봉을 잡는다. 4월 22일 프랑스 대선에서는 프랑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 여부가 주목거리다. 또한 미국에서는 8년 동안 백악관의 안주인이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2008년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서 백악관에 재입성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다.

아시아에서도 여풍(女風)은 거셀 전망이다.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한 한국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오랜 꿈의 성사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선 정국 1년간 지속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게 분명하다. 대만 경우 뤼슈롄(呂秀蓮) 부총통이 최초의 여성 총통 꿈을 불태울 것이다. 비리 연루 혐의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조기 레임덕에 빠지고 그와 적대적 공존 관계인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주석의 인기가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어부지리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풍’의 도미노는 홍콩에도 상륙할 조짐이다. 2001년 5월 파룬궁(法輪功) 문제로 중앙 정부와 마찰을 빚은 끝에 홍콩의 총리격인 정무사장(政務司長)직에서 도중 하차한 앤슨 찬(陳方安生)은 지난 7월 1일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참여를 예고했다. 2007년 행정장관 직선을 요구한 이날 시위에서 그는 ‘민주주의는 허시에(和諧 : 조화)의 열쇠’라는 중앙정부와 홍콩 시민의 요구를 조화시킨 절묘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었다. 대륙과 분리하여 대만을 해양국가화하자는 뤼슈롄과 홍콩 민주주의의 상징적 존재인 앤슨 찬은 2007년 내내 중국 지도부의 고민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여성 위상 아직은 소수민족보다 못해

이 같은 ‘여풍 도미노’의 ‘종횡사해(縱橫四海)’는 중국의 정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2007년은 하반기에 ·17차 전당대회(17대)가 열리는 ‘정치의 해’이다. 만일 여풍의 맞바람이 없었다면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16대 체제’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위직에서 여성의 위상은 하늘의 절반을 받치는 존재가 아니라 전인구의 8%를 차지하는 소수민족보다 나을 게 없는 처지이다.

국무원의 부장(장관)급 이상에서 여성은 부총리 1명, 국무위원 1명, 그리고 부장 1명 등 모두 3명이다. 부총리와 부장과 동격인 주임 1명이 있는 소수민족과 오십보백보다. 25명의 정치국 위원 가운데 여성은 우이(吳儀) 부총리 단 한 명이다. 소수민족 출신도 후이량위(回良玉) 부총리 한 사람만 있다.

지방 지도자로 내려가 보면 여성은 소수민족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31개 성, 시, 자치구에서 여성서기는 단 한 명도 없다. 여성 성장으로는 칭하이(靑海)성 성장 쑹슈엔(宋秀巖)이 유일한 데 반해 소수민족은 5개 자치구의 주석을 차지하고 있다.

17대에서 정치국원 겸 국무원 부총리 우이와 국무위원 천즈리(陳至立)가 물러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우이가 비울 정치국 위원 자리는 당 중앙 통전부장으로 있는 류옌둥(劉延東)이 메우게 될 것이지만 부총리와 국무위원 자리는 마땅한 인물이 없어 남성 독식이 예상되었다. 홍일점 각료인 사법부장 우아이잉(吳愛英)은 원자바오(溫家寶) 내각 출범 2년 뒤인 2005년 7월 1일에 부장으로 승진, 임명되었고 나이도 현재 55세로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국무위원 혹은 부총리를 바라 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바다 밖의 거센 여풍은 이러한 일반적 관측에 수정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 우아이잉의 사법부장 발탁은 한류(韓流) 바람을 탔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산둥(山東)성 정협 주석이던 우아이잉이 사법부 부부장으로 임명된 것은 2003년 12월이었다. 산둥성 출신인 그는 주로 산둥성과 부련(婦聯) 등 여성 분야에서 일해 왔다. 이런 그를 사법부 부부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당시 한국에서 강금실(康錦實) 씨가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이 된 것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리고 1년 반 뒤에는 실제로 그대로 됐다.

2007년에는 ‘한류’가 더 거세질 것인 데다 ‘포류(佛流)’와 ‘메이류(美流)’에 ‘강류(港流)’와 ‘타이류(台流)’까지 겹칠 전망이어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정치국에서 여성 자리가 둘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두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류옌둥이 예상대로 정치국에 진입하고 2007년 말 만 69세인 우이가 정치국에 잔류하는 경우다. 우이는 2007년 말의 17대에서, 또 2008년 11차 전인대에서도 70세 이상 최고위직 연임 불허라는 인사원칙에 가까스로 비켜난다. 하지만 그가 17대에 퇴진하리라 관측되는 것은 16대에서 물러나지 않아도 될 리루이환(李瑞環)이 세대교체를 위해 용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미통상외교 위해 우이 유임론도

그러나 중국이 처한 현실은 그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14, 15일 처음으로 열린 중·미 경제전략대화에서 주인공은 단연 우이였다. 그는 위안화 절상, 시장개방 확대, 그리고 지적재산권 침해 단속에 관한 미국측의 요구에 맞서 중국의 입장을 당당히 대변했다. 대화가 끝난 뒤 발표된 합의 내용은 중국은 내수를 확대하고 미국은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방적인 주기가 아닌 주고받기였다. 미국이 강력하게 요구한 위안화 절상에 대해서는 구체적 약속을 하지 않았다. 칼라 힐스, 샬린 바세프스키 등 미국 통상분야의 여걸들을 차례차례 제압했던 그의 대미 통상교섭 경력에 또 한번의 승리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내년부터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강적 ‘낸시 펠로시’와 마주하게 된다. 펠로시는 누구나 당연시해온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부여마저 반대한 인물이다. 인권문제, 노동자 처우문제 등 중국의 아킬레스 건을 지속적으로 두드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이의 퇴진은 강을 건너는 도중 말을 바꿔 타는 것이 아니라 말에서 뛰어내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류옌둥은 리더십에서 우이에 전혀 뒤지지 않지만 통상분야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를 체득화한 중국지도부가 ‘여풍’을 ‘여풍’으로 막고자 할 때 우이는 대안부재의 존재감을 지닌다.

지도부 ‘속투(續投)’를 권유해도 주룽지(朱鎔基)처럼 “박수칠 때 떠나겠다”라는 태도를 우의가 관철할 가능성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쑹슈옌 칭하이 성장이 류옌둥과 함께 정치국에 진입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쑹수옌 중앙위 후보위원이기 때문에 자격 상의 하자는 없다. 그녀는 또 후진타오가 후원해 온 단파(團派) 인물인 데다 경제 실무분야에서 일한 경력도 갖고 있어 한동안 부족하기는 하겠지만 우이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주목할 여성 지도자로는 인민은행 부행장인 우샤오링(吳曉靈)과 후샤오롄(胡曉煉)이 있다. 40대 후반인 우샤오링과 후샤오롄은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을 포함, 13명으로 구성된 화폐정책위의 구성 멤버이다. 화폐정책위는 거시적 조정정책의 목표 설정, 거시적 경제정책들 간의 조정 역할 등을 하는 곳이다. 화폐정책위 내의 서열은 우샤오링이 5위이고 후샤오롄이 8위이다.

우샤오링은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중국 경제와 위안화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또 농촌 소규모 은행들의 회계를 투명화하는 개혁에도 큰 공적을 남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0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면서 중국인을 3 명 포함시켰다. 우이가 3위였고 우샤오링이 35위였다.

한편 통화정책의 실무부서인 외환관리국장을 겸임하는 후샤오롄은 장래 중국의 금융부문 사령탑에 오를 것으로 예상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 두 사람은 우이의 퇴진과 해외의 여풍에 힘입어 고속 승진 사다리를 탈 것으로 점쳐진다.

외교 부문에선 호주대사인 푸잉(傅瑩, 53), 외교부 대변인을 지내고 현재 벨기에대사로 나가 있는 장치웨(章啓月), 그리고 현재 외교부 대변인으로 활약 중인 장유(姜瑜, 42) 등이 주목할 만 하다.

2007년 해외의 ‘여풍’은 그동안 은인자중하던 중국 여성 지도자들의 상당수를 권력의 상층부로 밀어 올릴 것 같다.


이재준 객원기자 중국문제 전문가 webmaster@china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