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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우리시대 얼굴] 조선 시대 사대부, 초상화 제작 일반화
삼국 시대가 기원… 현대엔 개성넘치는 수묵 인물화 시도



인간의 형상을 묘사하는 인물화는 고대로부터 회화의 주된 흐름을 형성해왔다. 그중에서도 초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그려졌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초상화의 기원은 문헌기록상 불분명하지만 삼국 시대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화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백제 아좌태자가 일본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 삼국사기나 중국 사서(史書)에 왕ㆍ고승에 대한 회화 기록은 대표적인 예들이다.

고려 시대에는 왕 및 왕후 초상에 대한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공신과 일반사대부에까지 초상화 제작이 널리 행해졌다.특히 왕 및 욍후의 초상을 제작, 보전하는 진전제도(眞殿制度)를 운영했으며 고승들의 승상(僧像)이 유행하였다. 반면 현존하는 작품은 드물어 고려 태조의 어진(御眞)과 30대 공민왕의 어진이 원본을 보고 다시 그린 이모본(移模本) 형태로 전해지는 정도다. 고승인 보조(普照)ㆍ진각(眞覺)ㆍ진명(眞明)ㆍ대각(大覺) 국사(國師)의 진영도 원형을 찾기 힘들다.

개국공신인 배현경ㆍ홍유ㆍ신숭겸ㆍ변지겸을 비롯해 사대부인 최충ㆍ최영ㆍ길재ㆍ이조년ㆍ이숭인 등의 화상도 기록에는 남아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없다. 안향ㆍ이색ㆍ정몽주 등의 초상화도 원본은 손상되거나 소실돼 조선 시대 때 그려진 이모본이 전해질 뿐이다.

한국 미술사상 초상화가 가장 발전한 시대는 조선 왕조다. 조선 시대는 문인 화가들과 화원들에 의해 회화가 폭넓고 활발하게 전개됐다..

먼저 왕의 초상인 어진은 개국 후 15세기 초반까지 고려 시대 방식이 유지돼 원찰에 어진을 봉안하였으나 15세기 중반부터 고려 시대 불교 관습이 사라지고 성리학적 제례가 굳어지면서 17세기 선조 때부터 18세기 인조, 효종, 현종까지의 250여 년간은 어진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17세기 말 숙종 때부터 왕권이 강화되면서 다시 어진을 그리게 됐고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토착화해가는 18세기 문화 부흥기에는 어진 제작도 활기를 띠었다.

조선 시대 초상화의 한 유형은 공신상(功臣像)이다. 초기 개국 공신을 비롯해 세조, 중종, 인조 등이 집권하는 과정에 공을 세운 정난공신, 이시애ㆍ이괄의 난 등을 평정한 진무공신, 임진왜란 공신, 각종 사화(士禍)에서 승리한 이들의 초상화가 상당하다. 신숙주ㆍ강신ㆍ이산해ㆍ이항복ㆍ이원익ㆍ김석위 등의 초상을 들 수 있다.

조선이 유교를 근간으로 함에 따라 일반사대부의 초상화도 많다. 국초의 최덕지ㆍ김시습, 중기의 이현보, 유학계의 거목인 허목ㆍ송시열ㆍ윤증 등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자화상으로 윤두서ㆍ강세황, 김정희 작품이 유명하다. 그밖에 고승인 무학대사, 사명대사, 서산대사의 초상이 이모본의 형태로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문인과 화원을 통해 인물화가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초기에 안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비롯해 김명국의‘달마도(達磨圖)’, 신윤복의 ‘미인도’, 김홍도ㆍ장승업의 인물화를 들 수 있다.

조선 왕조가 1910년 한일병합으로 무너지면서 한국 미술도 극도로 위축됐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 도화서의 마지막 화원인 소림(小琳) 조석진은 심전 안중식과 함께 임금의 어진을 그리면서 후학을 양성해 조선 시대 말기의 전통 회화를 근대 화단으로 이행시키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이들은 근대적 미술교육기관인 서화 미술원을 설립해 한국 현대 인물화의 초석을 닦은 이당 김은호를 비롯해 이상범, 오일영, 최양 등을 배출했다.

뒤이어 1920년대를 전후해 서양 회화가 상륙했고 1915년 고희동이 ‘자매’를 선보여 초상화의 계기를 이뤘다. 송병돈의 ‘봄날의 H양’, 윤성호의 ‘노인’, 김창섭의 ‘책을 든 여인’, 이종우의 ‘여인상’등은 서양화 기법을 활용해 초상화적인 사실적 묘사에 중점을 두었다.

광복후 49년 국전을 통해 인물화가 꾸준히 발표됐으나(역대 수상작 중 인물화가 44% 차지) 1960년대 들어 구상계 내부에 변화를 보이기 시작해 손수광의 ‘실내’(1970), 배동환의 ‘어머니의 방’, 장리석의 ‘남해의 여인’(1975), 신양섭의 ‘토착별곡’(1981)은 고정적인 유형의 인물화에서 벗어났으며 80년대 이후는 개성적이고 다양한 인물화의 전개를 발현하고 있다.

전통적인 수묵 인물화는 광복후 고비를 맞았으나 50년대 서울대 김용준 교수 등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서세옥, 박노수, 장운상 등을 배출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응노, 김기창, 김영기 화가 등은 국전의 고답적인 행태에 반발, 시대성에 맞는 전통의 새로운 창조를 주창해 현대 한국 수묵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른 실험정신은 70년대에 뚜렷한 형세로 부상해 수묵 인물화의 양상도 정적인 소재에서 동적인 소재로 바뀌었다. 마회자의 ‘노점’, 김영철의 ‘시장’, 이철주의 ‘명장’, 이종상의 ‘작업’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수묵 인물화에 독특한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김호석 화백과 힘있는 필선과 적확한 표현력으로 국내외서 인정받고 있는 재중 동포화가 이광춘 교수(경기대) 등이 주목받고 잇다.



입력시간 : 2007/01/09 16:23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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