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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고조선] "우리 역사의 출발점… 만주·한반도 지배"
윤내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소장
우리 고대사 고조선-열국시대-사국시대-남북국시대체제 돼야… 中 동북공정 우리 스스로 빌미 제공







“단군은 신화 속의 인물이니 단군조선은 실재하지 않았고 기자조선부터 실존하는데, 기자는 주(周)나라의 무왕이 조선왕에 봉(封)한 인물이니 기자조선의 역사는 중국 역사의 일부이다.”

“고구려는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현도군 고구려현에 일어난 왕국이니 고구려도 중국 변방정권 중의 하나다.”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다. 동북공정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학문적 연구를 넘어 역사적 영토권과 정치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 북부가 중국의 역사영토이니 장차 정치적으로 회복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주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단군을 신화적 인물로 밀어넣고 고조선과 고구려를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킨 까닭이다. 대응적으로 고구려재단 등을 만들고 법석을 떨었지만 근본적인 해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일방적으로 밀리는 양상이다.

그런 국내 현실에서 윤내현(67)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소장은 30년 전부터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수 있는 논리를 펴왔다. 1978년 첫 저서 ‘상왕조사(商王朝史)의 연구’를 발표한 이래 ‘상주사(商周史)’,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연구’ 등 중국사와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최근에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 자료를 비교 분석한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지식산업사)를 발간, 동북공정 및 한국 고대사 연구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다뤘다. 예컨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 <제왕운기>의 ‘전조선기’를 비롯해 중국의 중선지가 지은 <십구사략통고>의 지도,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 등에 근거해 고조선의 존재 및 국경을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기> ‘조선열전’, <한서(漢書)> <진서(晉書)> <수서(隨書> ‘지리지’ 등에서 한사군이 고조선과 한나라가 국경으로 마주한 (고대)요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윤 소장이 처음부터 우리 고대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의 원래 전공은 동양사, 그중에서도 중국 고대사였다. 윤 소장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던 중 자연스럽게 갑골문(甲骨文)을 접하게 됐고 석사 논문(갑골문을 통해 본 은왕조의 숭신사상과 왕권변천), 박사 논문(상왕조사-갑골문을 중심으로)을 갑골문으로 하였다.

그런데 당시 동양사학회 원로 학자 중엔 갑골문을 이해하는 교수가 드물어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가서 연구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의 중국 자료들을 보는데 한국 관련 부분들이 자꾸 눈에 띄었어요. 특히 기자(箕子)가 고조선으로 간 부분이 와닿았는데 갑골문에서 기자와 관련된 부분을 찾다가 기후(箕侯)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실존인물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윤 소장은 ‘상주사’의 집필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자와 한국 고대사의 문제에 파고 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자는 상(商)나라 왕실의 후예로 기(箕)라는 곳에 봉해진 제후였으나 상나라가 서주 무왕에 의해 망하자 조선으로 망명했다. 기자가 망명한 곳은 고조선의 중심지가 아닌 국경 근처 변방으로 기자는 그곳의 제후가 되었다.

윤 소장은 <사기> ‘진시황본기’36년조에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영토가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조선에 미쳤다’는 부분에 주목, 당시 요동의 경계(국경)가 베이징 옆 갈석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는 갈석산 동쪽인 한반도와 만주 일대가 모두 고조선 땅이 되는 것으로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고조선의 강역(疆域, 한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지역)을 설정해놓고 나니 한사군의 위치, 고구려의 역사 등이 사료의 기록과 맞아떨어졌다.

윤 소장은 그 같은 사실을 정리해 1982년 ‘기자신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계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의 조그만 부족집단 정도로 인식해온 국내 주류 사학계는 윤 소장의 주장을 “터무니 없다”며 무시했다. “역사학의 발전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토론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길 기대했는데 학계가 폐쇄적이고 학연ㆍ지연의 벽이 높은 것에 실망했습니다.”

윤 소장의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학계의 반발을 샀지만 일반 국민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의 고대사 특강에는 청중이 몰렸고 ‘고조선 제대로 알기’ 열풍이 불었다. 윤 소장은 86년 ‘사학지’를 통해 ‘위만조선’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했다. 종래 사학계의 통설은 위만조선이 고조선을 대체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윤 소장은 위만조선은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치하고 고조선과 병존했던 정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기자조선ㆍ위만조선ㆍ한사군은 고조선의 요서 지역 변방에서 일어난 정권이기 때문에 우리 고대사 체제는 “고조선-열국 시대(동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 삼한 등)-사국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남북국 시대(신라, 발해)의 체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윤 소장은 “분명 잘못된 시도이지만 중국 탓으로만 돌릴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동북공정은 한국의 역사 서술을 근거로 공세를 취하는데 우리 스스로 그런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 즉 고조선이 만주와 한반도를 지배한 국가였다면 자연스럽게 부여나 고구려, 발해가 우리 역사에 포함되지만 주류 학계에서처럼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의 조그만 국가였다면 부여, 고구려, 발해가 중국 역사에 편입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또한 대동강 중심의 고대사는 기자가 망명한 기원전 1100년 무렵부터 낙랑군이 축출된 기원 313~315년 무렵까지 무려 1,400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윤 소장은 고조선이 2000년 가까이 존재한 나라로 본다. 문헌적 기록뿐만 아니라 중국 랴오닝성의 홍산문화와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굴된 청동기는 방사성탄소 실험결과 기원전 2400년 정도의 것으로 판명돼 단군조선의 실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윤 소장은 “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고 공동체 복원(통일 등)의 근거이기 때문에 제대로 역사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고조선사를 개척한 윤 소장은 현재 단군학회, 고조선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입력시간 : 2007/02/12 15:42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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