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방고래·구들장에서 현대 건축양식에 맞는 개량 온돌로 변화

저녁나절 아궁이에 군불때고 쇠죽 끓이면 방구들은 밤새 식지 않는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화기(火氣)가 방밑을 지나 방바닥 전체를 덥게 하는 난방 장치. 온도가 높아진 돌이 방출하는 열로 난방을 하며 열전도에 의한 난방 외에도 복사난방과 대류난방을 겸하는 이것은?

정답은 우리 고유의 난방법인 온돌이다.

하지만 요즘 어린 세대는 온돌이라고 하면 무슨 뜻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큼 온돌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멀어진 존재가 됐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겨울철 시골에 가면 아궁이에 땔감을 넣어 불을 피우고, 무쇠로 만든 가마솥에서는 모락모락 밥 익는 김이 피어나오고, 안방에 들어서면 아랫목에 옹기종기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경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온돌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 덕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방고래(불길과 연기가 지나가도록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통로)를 만들어 그 위에 구들장을 놓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하는 전래의 온돌방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그러는 사이 온돌이라는 말 자체도 마치 사어(死語)인 마냥 어렴풋해졌다.

그렇다면 온돌은 어떻게 된 것일까.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일까.

정확히 말하자면 전통 온돌은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춘 게 맞지만 온돌은 엄연히 살아 있다. 다만 현대적 건축양식에 맞는 개량 온돌로서 외양을 바꿨을 뿐이다.

현대의 개량 온돌은 아궁이의 역할을 보일러에 맡겼고 방고래의 구실은 파이프가 대신하도록 했다. 또 땔감이 연소하며 발생하는 열기 대신 온수를 순환시켜 방을 데우는 방식을 많이 취하고 있다. 모양은 크게 바뀌었어도 구조적 원리는 거의 똑같은 셈이다.

대한주택공사(주공) 주택도시연구원 김성완 연구원이 지난해 12월 국제온돌학회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전통 온돌이 형태적으로 큰 변화를 맞은 것은 1960년대 공동주택의 등장부터다. 주택 구조가 서구식으로 바뀌면서 온돌을 여기에 맞도록 변형하는 작업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이후 70년대 중반 개발된 온수온돌은 온돌 구조와 열 공급 원리를 크게 바꾼 전환점이 됐다.

공동주택의 확산에 따라 개량 온돌에 관한 연구도 주공 등 업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졌다. 주공은 70년대에 시멘트로 만든 반조립식 ‘주공식 온돌’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어 80년대에는 보일러식 온수온돌이 널리 보급되면서 마침내 연탄 아궁이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파트의 층간 바닥충격음 규정이 시행되면서 온돌은 완충과 소음(消音)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탑재한 모델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은 사실은 온돌의 원리다. 나아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온돌만이 가진 장점이다.

온돌, 즉 구들은 통상 황토와 함께 화강암 등으로 만들어진다. 주목할 것은 구들을 구성하는 광물의 특성상 뜨겁게 달궈지면 원적외선이 방출된다는 점이다. 원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긴 파장의 전자파로서 열 전달이 빠른 특성 덕분에 온열치료 등 건강요법에 많이 활용된다. 이런 점에 주목해 일부 전문가들은 온돌이 온열치료의 도구로도 쓰임새가 많다고 강조한다.

온돌의 건강상 장점과 관련, 김준봉 국제온돌학회장(북경공업대 교수 및 연세대 건축공학과 객원교수)은 지난번 학회에서 인체 하부는 따뜻하게 하고 머리 쪽은 서늘하게 하는 이른바 ‘두한족열’(頭寒足熱)이 체온의 이상적 상태라며 한방에서도 환자 치료에 이용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온돌은 해외에서도 독특하면서 합리적인 난방방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건설업체들이 해외 아파트 시장에 진출하면서 한국식 온돌 아파트가 외국인들의 관심을 서서히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해외진출 주택업체, 한국식 난방으로 좋은 반응

카자흐스탄에서 대단지 아파트 분양에 성공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견 건설업체 동일하이빌은 부엌과 화장실 등 아파트 일부 공간에 온돌을 설치했다. 회사측은 “카자흐스탄인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방바닥에서 주로 생활하는 점을 감안해 한국식 온돌 아파트를 공급하면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좋아할 온돌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현대식 개량 온돌의 연료원이 된 보일러 제조업체들도 덩달아 해외 진출에 신바람을 내고 있다. 중국 시장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주목한 보일러업체 경동나비엔(옛 경동보일러)은 1992년 업계 최초로 중국에 보일러를 수출했으며 그동안 중국인들에게 온돌난방 방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식 난방문화를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현재까지 온돌난방용 보일러 공급 실적은 베이징(北京)시 등을 중심으로 2만2,000여 세대에 이른다.

우리의 온돌과 흡사한 바닥난방 방식은 서구 사회에서도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 김준봉 회장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보건위생과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차원에서 일찍부터 바닥난방 보급을 독려해 왔을 뿐 아니라 겨울용 온돌마루도 개발해 세계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최근 방바닥에 빈 관을 매설해 그 속으로 뜨거운 공기를 통과시키는 원시적 형태의 구들이 특허를 받은 일도 있다고 한다.

비단 두 나라뿐 아니라 최근 호주 등 여러 서구 국가들에서도 바닥난방 방식이 대안적인 난방 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온돌은 우리가 종주국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서도 온돌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완전한 온돌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온돌은 과거에 머무는 유적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승 발전할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다. 온돌 세계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서구적 주거양식에 파묻혀 존재조차 까맣게 잊혀졌던 온돌. 우리의 계승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뜨거운 한류의 불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동일하이빌이 카자흐스탄에서 시공중인 온돌아파트.
경동나비엔 보일러가 설치된 중국 옌벤의 온돌식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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