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지위·저임금·지역 간 양극화 심화로 학문·교육의 질적 하락 불러

지방 대도시의 제법 큰 사립대학교에서 5년째 근무 중인 K교수. 그는 요즘 들어 오랜 만에 친구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할 때면 연봉을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학원생 시절에는 석사,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에만 몰두했고 교수로 임용된 후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푹 빠져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던 것.

그런데 막상 친구들과 연봉을 비교해보니 자신의 신세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찌감치 건실한 직장에 터를 잡았던 또래들에 비해 자신의 연봉이 적잖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K교수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대학 교수로 처음 임용됐을 때는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쁜 마음이었는데 솔직히 경제적 보상을 따져보면 이 자리가 별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신참 차장급인 친구보다 1,500만원 가량 적은 연봉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K교수가 받는 급여가 아주 적은 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경북지역의 한 전문대 교수로 재직 중인 L교수는 학위를 2개나 갖고 대학 교수로 임용된 경우. 그런데 그는 한동안 중학교 교사인 아내의 절반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L교수는 “아내와 각자 수입을 관리하다가 막상 월급 내역을 비교해보고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충남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주일 예배를 볼 때마다 십일조 헌금을 일부러 부풀려서 내는데 그 이유는 곧이곧대로 내면 위신에 손상을 입을까 두려워서다. 그는 “지금 다니는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는 (급여가 너무 적어) 부끄러운 마음에 십일조를 못 냈을 정도”라고 고백했다.

1990년대 초 설립된 지방의 D대학교에는 정교수가 거의 없을 뿐더러 부교수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 전임 교수들이 조교수나 전임강사 등으로 채워져 있다.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교수사회가 저임금과 신분불안으로 흔들리며 교수를 꿈꾸던 젊은 두뇌들이 진로를 바꾸고 있다. 사진은 성균관대 2006 학위 수여식. 최흥수 기자
왜일까. 이유는 단 한 가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한 교수는 “학교 재단은 정교수나 부교수의 임금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교수들의 승진 자체를 안 시켜준다. 다른 학교보다 훨씬 까다로운 심사규정을 만들어 웬만하면 통과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고 속사정을 밝혔다.

충청권의 한 대학교 교수들은 출퇴근 시각까지 점검 당하는 신세다. 재단 측에서 교수들의 승용차 출입 현황을 일일이 기록에 남겨 평가자료로 삼기 때문이다. 강의가 비는 시간에는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 교수들의 근무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고 지성인을 자부하던 대학 교수들의 사회적 지위가 땅에 떨어지고 있다. 한때 정년보장과 높은 급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업무 수행, 게다가 사회지도층이라는 명예까지 곁들여진 교수직은 누구나 선망하는 최고 직업 중 하나였지만 이젠 ‘흘러간 옛 노래’가 됐다.

90년대 이후 대학설립이 자율화된 데 이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무한경쟁 논리가 득세하면서 국내 대학은 극단적인 양극화의 길을 가고 있다. 수도권 명문대와 일부 지방대는 정부와 기업의 집중적인 지원을 받아 경쟁력을 더욱 키워나가고 있지만 운영 재원 마련조차 빠듯한 나머지 대학들은 문을 닫을 위기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런 양극화는 교수들에게도 고스란히 불똥을 튀기고 있다. 단적인 예로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교수들과 대졸 신입사원보다도 못한 연봉을 받는 교수들이 공존하는 기현상을 들 수 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교수들은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중소 사립대일수록, 역사가 짧은 대학교일수록 많은 실정이다. 90년대 이후 신설된 소규모 지방 사립대 교수라면 저임금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셈이다.

수도권 명문대에 비해 재정이 열악한 일부 지방대는 형편없는 급여로 교수들의 의욕이 땅에 떨어질 지경이다. 임재범 기자
실제 강원지역 A대학 교수들은 몇 년 전까지 임용 첫해 월급이 고작 100만원에 불과했다. 재단 이사장이 채용 과정에서 “1년 동안은 인턴 기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당한 이면계약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나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각종 수당과 연구비 등을 빼고 월급을 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교수들은 개인별로 연간 1,000만~1,500만원의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데다 이전부터 오랫동안 재단 측에서 농간을 부려왔기 때문이다. 등록금 감소로 학교 재정이 어려워진 터에 재단이사장이 사적인 용도로 학교 돈을 마음대로 유용했던 것이다.

전횡과 비리를 일삼았던 재단이사장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황폐화한 학교는 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교육부에서 임시이사를 파견해 학교 운영을 맡고 있지만 재정 확충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대학 교수들은 요즘 월급을 두세 달에 한 번 받고 있는 실정이다.

더 놀라운 것은 A대학의 교수 임용에 지원을 했던 타 대학 출신 교수의 말이다. A대 Y교수는 “다른 지역의 한 교수가 우리 학교에 오려는 뜻이 있어 급여 조건을 솔직하게 알려줬더니 ‘그 정도면 많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더라”며 “우리보다 못한 대학도 있나 싶어 그때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Y교수를 의아하게 만든 교수는 당시 종교재단 사학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실제 종교재단 사립대 교수들의 경우 턱없이 낮은 급여를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내놓은 ‘전국사립대 교직원 임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임 교수에게 대졸 신입 직장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그보다 못한 2,000만원대 이하의 연봉을 주는 학교들 대다수가 종교계 사립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들의 흔들리는 위상은 낮은 급여 문제보다도 가중되는 신분 불안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돼온 재임용제도에 더해 2000년대 들어 확산되고 있는 계약제 방식의 임용제도는 교수들을 ‘시한부 고용’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K교수는 “재임용 탈락이나 계약기간 종료나 어느 쪽이든 그것은 곧 실직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 교수들의 고용 조건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사립대 교수들의 경우 고용 불안감은 국립·공립대 교수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사실상 ‘생사여탈’의 권한을 가진 학교재단에 잘못 보이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이른바 ‘석궁 사건’ 이면에는 재단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사학 교수들의 입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국내 사립대(전문대 포함)는 올 2월 기준 262개교로 전체 대학의 약 85%에 달한다. 국가고등교육의 대부분을 사실상 사학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당연히 교수들도 국립·공립대 교수에 비해 월등히 많다. 문제는 이들의 지위가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전국교수노동조합 문성열 교권실장은 “사립대 경영자들은 대학 교원들의 고용 불안을 좋아한다. 모든 교수들이 머리를 숙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3년 연세대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퍼져나가기 시작한 비(非)정년트랙(non-tenure track) 방식의 교수 임용제도는 교수들의 고용 불안을 부추기는 또 다른 사례로 지적된다. 비정년트랙은 말 그대로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 교수를 일정 기간 고용한 뒤 계약이 만료되면 내보내는 것이다. 대개 2년 기간으로 임용한 뒤 한두 차례 재계약을 해주기 때문에 최대 6년 정도 근무할 수 있다.

비정년트랙 교수는 단기 계약 조건임에도 전임교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의 주요 평가 기준인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려는 대학들이 최근 크게 선호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비정년트랙 제도를 도입한 학교는 국·공립 2개교를 포함해 99개 대학에 이르렀다.

비정년트랙 교수들은 정년보장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정년보장 교수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비정년트랙 교수들의 급여는 평균 정년교원의 77%에 불과하며 주당 최대 수업시간 역시 정년교원(9시간)보다 많은 11시간을 책임지고 있다. 한마디로 학교 입장에서는 ‘저비용 고효율’을 낳는 채용 제도이지만 뒤집어 보면 부당한 착취 구조인 셈이다.

대학 구조조정도 교수들에게는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수 있는 실질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일부 지방대에서 시작된 신입생 확보난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대학사회에서는 통폐합, 폐과(廢科) 등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교수들이 단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하나로 일방적인 면직 통보를 받는 경우가 빈발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3월 충북지역 J대학은 ‘학과 폐지에 따른 면직 통보’를 5명의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보내 지역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J대학의 면직 통보 대상에는 교수협의회 회원들이 포함돼 있어 비판적인 교수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문성열 전국교수노조 교권실장은 “미운 털 박힌 교수를 정원 미달 학과로 발령내고 그 학과의 신입생이 50% 이하가 되면 폐과하는 식의 부당한 행태를 벌이는 사립대도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교수들의 지위 하락, 신분 불안정이 결국 학문과 교육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연구와 강의 실적은 자유스럽고 안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꽃 피는데 최근 대학의 풍토가 그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진리와 지성의 상징이었던 상아탑. 그 꼭대기에 어렵게 올라간 교수들이 지금 신자유주의와 경쟁우선주의가 몰고 온 찬바람에 떨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