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좀먹는 毒… 공정위 '자진신고 감면제도' 등으로 검은 거래 차단 나서

시장에서 사업자들끼리 약속을 맺고 은밀하게 행하는 부당한 공동행위, 즉 담합(카르텔)은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저해 요소로 지탄의 대상이 된다.

미국은 담합을 중죄(Felony) 또는 경쟁의 거대악(Supreme Evil of Antitrust)으로 규정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성(Hard Core)카르텔금지이사회도 경쟁위반 행위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것으로 평가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을 ‘시장경제 제1의 공적(公敵)’으로 규정해 가장 엄중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담합이 이처럼 시장경제 최대의 적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독점적 이윤을 보장하고 자원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등 독점보다 그 폐해가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담합은 품질 개선, 원가 절감 등 경영혁신 노력을 하지 않고도 손쉽게 가격 인상을 할 수 있도록 해 궁극적으로는 한 국가의 산업 및 기업 경쟁력을 뿌리째 흔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이익과 후생이 강탈되는 것은 물론이다.

관련시장 피해, 매출액의 20%에 달해

권오승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OECD가 2002년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담합은 최소 10% 정도의 가격인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2004년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는 담합에 따른 피해액이 관련시장 매출액의 15~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담합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지만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탓에 경쟁당국 입장에서는 적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다. 독과점 사업자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기 때문에 부당행위에 대한 감시감독을 할 수 있지만 담합은 그 속성상 증거가 없으면 존재 여부를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담합이 빈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업종별로 ‘협회’ 명칭을 단 사업자단체가 너무 많다는 점이 꼽힌다. 근본적으로 이익을 공유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사업자단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담합의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공식, 비공식 회합에서 ‘요즘 힘들지 않냐’는 식으로 누가 한마디 하면 그게 담합의 암묵적 약속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가들이야 만났다 하면 사업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 모임에서 담합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담합을 할 경우 약속의 근거로 삼기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담합의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아예 만들지조차 않는다고 한다. 전화나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금물이다. 대부분 직접 만나 구두로 약속을 주고 받는다.

이와 관련, 공정위 카르텔정책팀 오행록 사무관은 “예전에는 사업자단체를 통해 담합을 위한 모임을 갖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시내 식당, 골프장 등 남들이 포착하기 어려운 곳을 회합 장소로 활용하는 경향이 높다”고 밝혔다. 룸살롱 같은 고급 술집도 은밀한 회동에는 제격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2월말 공정위로부터 휘발유, 등유, 경유 판매가격 공동인상 혐의로 과징금 부과 및 검찰 고발 조치를 당한 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4개 정유회사는 다소 일 처리를 어수룩하게(?) 한 셈이다.

서로간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목표 가격을 시장 가격으로 굳히기 위해 합의 이행 여부를 상호 감시하는 이른바 ‘공익모임’까지 운영하는 등 담합의 구속력에는 꽤 신경을 썼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남긴 것이다.

공정위가 담합의 증거로 확보한 자료에는 시장동향보고 형태의 회사 내부보고서가 다수 있다.

그중에는 ‘2004년 4월 이후 정유사 간 공익모임 운영 중’ ‘손익 제고를 위해 공익모임을 통한 시장안정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시장안정화 추진 시 경쟁사 일부 가격 대응’ 등의 경우처럼 정유회사 간 모종의 합의가 있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도 빈번하게 발견된다. 한마디로 부당이익 창출에 골몰하면서도 보안의식은 미비했던 것.

담합은 일정 계선상의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가 지난해 2월 밀가루 공급 물량과 가격 담합 혐의로 제재 조치를 취한 8개 제분업체의 사례가 딱 그런 경우다.

이들은 매월 한두 차례 영업임원 회의와 영업부장 회의를 개최해 밀가루 공급물량을 합의하고 각사별 생산비율까지 정했다. 게다가 서로 약속을 이행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호 현장 실사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이들 제분업체는 사장급 대표자 회의도 가질 만큼 담합을 윗선에서부터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 중에는 최고경영자(CEO)가 모르는 가운데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최근 많은 기업의 CEO들이 윤리경영, 준법경영 등을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나서는 터라 본인이 직접 담합을 지휘하거나 용인하기는 사실 어려워졌다.

하지만 회사 이익창출의 부담을 직접 지고 있는 영업담당 부서는 다른 입장이다.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영업담당 임직원 선에서 경쟁 회피나 가격 조절 등 담합 행위에 가담하는 무리수를 두다가 적발되기도 한다는 것.

담합 통한 이익보다 가혹한 벌칙 필요

한 경제학 교수는 “담합을 하다가 적발됐을 때 받는 페널티와 담합을 통해 얻는 이익 가운데 후자 쪽의 ‘경제성’이 높다면 기업들은 후자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며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기업인들을 많이 접했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어차피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담합의 유혹을 느끼는 기업들이 생각을 고쳐먹는 게 나을 듯싶다. 최근 공정위는 담합을 적발해내기 위한 효과적 장치들을 적극 도입하는가 하면 담합 혐의가 입증되면 더욱 엄중하게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등 부당행위에 대해 칼날을 가는 분위기다.

얼마 전 공정위는 ‘신무기’의 놀라운 성능을 확인하는 개가를 올렸다. 2005년 공정거래법 개정 때 실효성을 높인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통해 10개 합성수지 회사가 참여한 가격담합을 적발해낸 것.

감면제도는 담합 참여업체 가운데 첫 번째 자진신고자에게는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두 번째 신고자에게는 30% 감경 혜택을 주는 제도. 이번 사건에서는 호남석유화학이 스스로 고해성사를 함으로써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이 제도는 담합 참여업체에게 서로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하는 등 불안감을 극대화함으로써 담합을 깨는 효과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벌써부터 시장에는 담합 자진신고에 대한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행록 사무관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는 담합을 빨리 와해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담합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어 담합을 근절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경제를 좀먹는 담합을 향해 칼을 빼든 경제검찰 공정위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