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구멍 4개 통해 집도… 3차원 입체시야 확보로 정밀수술암·심장질환 수술에 이용, 1,000만원대 고가 수술비가 단점

신촌 세브란스병원 수술실. 수술팀은 환자를 마취한 뒤 환자의 배 4곳에 1cm 가량의 구멍 4개를 뚫고 로봇 눈(카메라)와 로봇 팔의 가위, 집게, 갈고리 팔을 각각 넣었다.

잠시 후 의사는 수술용 장갑을 벗고 로봇에서 3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수술용 기구를 조정하는 마스터 기구조정장치에 앉았다. 환자의 몸에 직접 칼을 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술실 정면 상단에 위치한 대형 스크린에는 환자의 뱃속이 화면 가득 펼쳐졌다. 의사가 게임 조종기처럼 생긴 조이 스틱을 움직이자 환자 복부에 뚫은 구멍 안에서 로봇 팔이 의사의 손동작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였다. 조직을 자르고, 지혈하고, 꿰매고, 로봇 팔은 비좁은 환자의 몸속을 훑으면서 능숙하게 수술 부위를 처치했다.

암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건 경이로운 로봇 덕분이었다.

전립선암 선고를 받고 고민에 빠졌던 김문식(68ㆍ가명) 씨는 우연히 매스컴에서 로봇 수술 장면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떨림이 없이 정교한 로봇이 일반 수술 시 포기해야 했던 치골 깊숙한 곳의 전립선 주변 신경군을 그대로 보존하며 암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전립선암 수술로 남성의 ‘자존심’인 성기능을 잃을까 두려워 수술을 꺼려왔던 그의 고민을 말끔히 씻게 했다.

그럼에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속담처럼, 로봇 수술에 관한 외국 논문과 각 매스컴 보도까지 꼼꼼히 챙겨본 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미국에서 로봇 수술을 받았다는 친구의 추천도 그에게 확신을 더해줬다.

김 씨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수술 로봇을 도입한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로봇 수술로 전립선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수술 3개월 뒤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김 씨는 “수술 후 소변조절 능력을 되찾는데 애를 먹을 줄 알았는데 바로 하루 만에 뇨관을 떼고, 2개월째부터는 요실금 처리를 위한 기저귀도 전혀 필요 없게 됐다”며 현대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혀를 내둘렀다.

2005년 도입된 로봇 수술이 불과 1년 6개월 만에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5년 7월 국내 최초로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이 도입한 지 1년 만에 로봇수술 100례를 넘어선 데 이어, 6개월 만에 다시 100례를 추가해 단 18개월 만에 200례를 돌파했다. 수술 이용자가 단시간에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 로봇수술 적용 분야

지난 1월까지 시행된 로봇수술 200례를 살펴보면 전립선암 106례, 위암 45례, 자궁암 19례, 직장암 10례, 식도암 10례, 심장수술 6례로 다양한 질환과 수술에 시도됐다.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로봇을 이용한 수술이 이처럼 다양한 질환의 수술에 시도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외과 수술 중 가장 드라마틱한 로봇 수술로 꼽히는 것은 비뇨기과 영역이다. 2005년 7월 15일 첫 전립선암 환자를 수술한 이래 엄청난 증가가 있었다.

전립선의 암을 제거하면서 사람의 손으로는 하기 어려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지 않는 섬세한 커팅이 가능하고, 수술 시간도 반으로 줄였다.

전립선암의 경우 대표적인 부작용인 요실금과 발기부전을 80~95% 이상 해결했으며, 기존 방법에서 6~12개월 소요되던 소변조절 능력 회복이 1~3개월로 줄였다.

위암의 경우 수술 후 퇴원까지 약 2주 가량 걸리던 기존 수술법에 비해 장운동 회복은 평균 3일, 첫 연식의 시작은 평균 4.1일 등 입원 기간을 평균 6일로 줄였다.

식도암은 일반적인 수술 방법으로는 약 30~40cm의 절개를 가하고 늑골을 벌린 상태에서 수술하는데 반해, 로봇수술은 1cm 구멍 4개로 수술이 가능하기에 수술 후 통증이 적고, 폐렴 등 합병증이 적다.

부인암에서는 자궁내막암, 자궁근종, 자궁선근종, 자궁내막증식증, 자궁경부암 등에 광범위하게 로봇수술이 적용되고 있다. 모든 부인과 영역에서 로봇 수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김영태 교수는 “자궁과 골반 구조물은 혈관ㆍ신경ㆍ뇨관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어 단순한 복강경 적용에 어려움이 많은데 로봇을 이용한 수술은 초정밀 수술이라는 데 큰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로봇수술은 현재로는 비싼 가격이 가장 큰 단점. 700만원에서 1,500만원 사이의 고가 비용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언론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로봇수술에 대한 효과가 알려지면서 1주일에 1~2건에 불과하던 문의가 근래에는 1주일에 20여 건으로 10배 이상 대폭 늘어나는 추세다. 일부 부유층에서만 이용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우려와 달리 일반병실(5~6인실)을 이용하는 환자들의 이용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보조로봇 시술도 활발

서울아산병원이 시술하고 있는 로봇 심장수술은 의사의 명령을 따르면서 수술을 보조하거나 영상 가이드를 해주는 수술 보조로봇 ‘이솝’을 이용한다.

흉부외과 이재원 교수팀이 시술 중인 이 로봇은 보이스카드에 입력된 의사의 음성 명령에 따라 로봇 팔이 상하좌우 최대 320도까지 움직이며, 수술 부위를 최대 200배까지 확대해 보여주는 내시경 수술 장치다.

이 로봇을 이용하면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해 필요했던 2~3명의 의료진이 없어도 된다. 집도 의사 혼자서 외과 수술 중 가장 섬세하고 고난이도인 심장수술이 가능하게 된 셈이다.

이 보조로봇을 활용하면 흉부외과 수술 시 15cm가량 흉골을 절개했던 것을 5cm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입원 기간도 기존 2주에서 3~4일로 줄였다. 이 보조로봇은 승모판 질환 수술 및 부정맥 수술, 관상동맥 우회로 수술, 선천성 심장중격결손 수술, 삼천판 질환 수술 등에 사용된다.

인공관절 수술에도 로봇이 보조장치로 이용된다. 컴퓨터에 입력된 환자의 뼈와 인공관절의 해부학적 상태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여 인공관절을 삽입할 부위의 뼈를 로봇이 직접 절단한다. 기존의 수술보다 정밀하고, 정확도가 높다. 회복도 빠르다. 수술 당일 2~4시간 후부터 통증 없이 운동이 가능하다.


"한국 IT기술 접목하면 의료용 로봇 강국 가능"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내시경 수술ㆍ로봇수술센터 이우정 원장

“우리나라는 산업용 로봇 강국인데, 의료용 로봇에선 약소국입니다. 현재 로봇 수술의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에 대한 국내 기술 향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국내 최초로 로봇 수술을 집도한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내시경 수술ㆍ로봇수술센터 이우정 원장은 “경제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의료보험 혜택 적용 검토와 함께 국내 의료용 로봇의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발전된 IT기술을 기반으로 로봇 산업에 뛰어 들면 의료용 로봇의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외과, 심장외과, 비뇨기과 등에서 활발히 사용되고 있는 로봇 수술은 앞으로 모든 영역에서 사용 가능할 전망이다. 이 원장은 “지금 로봇 수술의 꽃이 비뇨기과라면, 미래에는 산부인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비용 등의 이유로 로봇 수술이 ‘암’ 수술에 주로 적용되고 있지만, 양성 종양에 확대 적용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사실 현재의 로봇 수술은 수술의 과정 중 일부를 로봇을 이용해서 자동화한 것이거나 수술에 직접 사용되는 기구를 로봇이 사용하는 수준에 그친다.

엄밀히 말해서는 진정한 ‘로봇 의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에 이 원장은 “현재로는 의사가 하는 동작을 로봇이 그대로 재현하는 마스터 슬래이브 단계가 가장 발전된 형태”라며 “아직은 스스로 알아서 수술을 해주는 로봇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봇이 촉감을 느끼지 못하고, 운용 시스템도 크고 무거워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이 원장은 ‘만능 로봇’ 혹은 ‘인간보다 우월한 로봇’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암이 광범위하게 전이돼 손을 쓸 수 없게 된 환자가 찾아와 로봇수술로 치료해 달라고 할 때 난감했다”며 “의사가 할 수 없는 수술을 로봇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밀하고 빠르고 편한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복강경 등 기존 수술로 처치 가능한 수술에 로봇 수술이 무분별하게 이용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가의 로봇 수술이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돼 돈 버는 장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