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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경매시장] 돈 되는 작품에 '묻지마 베팅'
미술품 경매시장의 빛과 그림자
미술시장 활성화 순기능 불구 재테크 아닌 투기양상으로 변질
자본력 갖춘 대형 화랑 독식… 신뢰성·전문성 제고가 선결과제







“예술은 돈”이라고 한 20세기의 거장 피카소의 이 말은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의 변화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2006년은 ‘미술품=투자상품’이란 인식이 국내에 확산된 해였으며 미술시장이 15년이란 불황의 터널을 통과한 해이기도 했다.

그만큼 미술경매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지난해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에서 낙찰된 작품 가운데 1억원 이상의 작품 수는 모두 126점으로 전년도 25점과 비교해 5배 이상 높아졌다.

작품이 1억원 이상으로 낙찰된 블루칩 작가군도 전년도에 비해 2~3배로 늘어났다. 기존의 박수근, 김환기, 이우환, 이대원, 장욱진, 천경자, 백남준 외에 권진규, 류경채, 고영훈 등이 가세했다.

낙찰 총액도 600여 억원으로 전년도 170여 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이는 많은 미술품 투자자들이 지난해를 미술품 거래의 ‘호기’로 확신한 결과다.

서울 강남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K씨(45)는 지난해 초 여윳돈 약 1억원의 투자처를 찾다가 미술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의 권유로 이대원의 ‘농원’시리즈 1점과 젊은 작가의 작품 2점을 구입했다.

1년이 지난 지금 K씨가 구입한 미술품 가격은 약 50% 상승했고 젊은 작가의 작품값도 크게 올랐다. K씨는 조만간 이들 작품을 처분하고 가격상승률이 높은 이우환이나 최영림의 작품을 구입할 생각이다.

서울 여의도 증권사에 근무하는 H씨(36)는 “2년 전부터 미술품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왔다”면서 “주식보다 환금성은 떨어지나 투자수익률은 훨씬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이왈종, 문신, 김종학 등의 소품을 겨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

최근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술품 자체에 대한 관심 뿐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미술품을 보려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미술시장의 활황이 올해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미술품이 새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는 양상이다.

박수근 '시장의 사람들' 낙찰가 25억(사진 위), 박수근 '농악' 20억원, 이중섭 '통영 앞바다' 9억9,000만원, 김환기 '항아리' 12억5,000만원, 천경자 '여인' 1억800만원(왼쪽부터)
3월 7일 K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25억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가 하면 이틀 뒤인 9일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농악’이 20억원에 낙찰됐고 경매의 낙찰 총액은 123억8,360만원으로 ‘1일 최고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양대 경매사의 이번 경매에서 약 227억원의 돈이 몰린 것을 감안할 때 올 한 해 경매시장에 유입될 돈은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금융시장에서 미술작품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아트펀드가 등장하고 개인들이 중심이 된 사모펀드들이 결성된 것도 미술시장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미술작품이 이제는 투자대상의 하나라는 인식이 높아져 컬렉터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구입에도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서울옥션의 박혜경 이사도 “미술품은 문화상품으로 감성의 대상이면서 어엿한 투자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미술품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30, 40대 투자자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매시장의 활황은 일반 국민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작품가격이 공개되고 작품의 유통과정도 상대적으로 투명해져 미술계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공급자 중심의 미술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변하는 등 장기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크다.

반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매 역사가 10년에 불과해 아직 시스템이 취약하고 화랑(1차 시장)-경매회사(2차 시장)가 혼재된 현실은 미술시장에 대한 신뢰성과 전문성을 의심받게 하고 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각각 국내 최대 화랑인 가나아트 갤러리와 현대화랑이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화랑과 경매의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종래 ‘작가(작품)→화랑→경매’ 구조에서 화랑이 생략된 채 ‘작가→경매’라는 직거래 형태가 늘어나는 추세다.

미술시장 투기화로 일부 작가만 대우

중소 화랑들은 현재와 같이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형화랑이 (직거래)경매를 할 경우 자신들은 고사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홍보 면에서도 대형 경매회사와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인사동 윤갤러리의 윤용철 사장은 “컬렉터들이 경매쪽에 몰려가다보니 작가들이나 소장자들도 경매시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젊은 작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하다”고 말했다.

윤 사장은 “요즘 ‘이 그림을 사면 1년 뒤 얼마나 되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미술시장이 투기화되면 돈이 되는 작가만 대우를 받고 그런 상업 작가만 양성하게 돼 시류와 무관하게 순수 작품활동을 해온 원로, 중견 작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군소화랑들도 어려워져 전체적으로 미술시장의 토대가 취약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화랑 위기론에 대해 K옥션 김순응 대표는 “경매를 통해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고 커짐에 따라 대부분의 화랑들도 작품 거래가 활발해져 서로 좋다고 말한다”면서 “위기를 말하는 일부 화랑은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반박했다.

대형 화랑이 경매회사를 운영하는 것과 관련, 일부에서는 경매가 미술품의 투기화를 부채질하고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돈이 되는 특정 작가ㆍ작품에 대한 쏠림현상을 보이면서 화랑이 지원, 또는 관리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값을 올리는데 주력하거나 투기현상을 방조한다는 것이다.

이화익갤러리의 이화익 대표는 “현대화랑과 가나아트가 보유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값이 급격하게 오른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

서울옥션이 2006년 서울옥션과 K옥션 등에서 낙찰된 미술품(낙찰액 600여 억원)을 분석한 ‘2006년 미술경매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블루칩 작가 반열에 오른 이대원의 작품은 지난해 낙찰 총액이 20억2,270만원으로 박수근ㆍ김환기ㆍ이우환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가격상승률도 47%라는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화랑계에서는 이대원이 1960년 대 반도화랑을 운영할 때 박명자 현대갤러리 회장이 당시 직원으로 일한 게 인연이 돼 현대갤러리(K옥션)에서 이대원의 작품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중견 작가들에 대한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지난해 경매시장의 특징이다. 고영훈이 낙찰총액 7억8,700만원으로 최고를 기록했고 배병우 8,500만원, 사석원 2,860만원이었다. 가격상승률도 고영훈이 100%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고, 배병우는 40% 정도 올랐다. 고영훈ㆍ배병우ㆍ사석원 등은 가나화랑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K옥션 김순응 대표는 “경매회사의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소비자들이 하는 일”이라며 “일부 경매회사가 그런 경매를 장기적으로 자행한다면 소비자들이 눈치를 챌 것이고 결국 그 회사는 물론 작가도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장과열, 작전세력 개입하기도

특정 화랑들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일부 작가들의 작품가를 높이기 위해 세계적인 소더비, 크리스티 경매를 비롯 홍콩 크리스티, 국제 아트페어 등에서 고가로 구입, 국내에서 값이 오르도록 유도한 뒤 작품을 비싸게 되파는 수법은 화랑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P작가의 경우 작품이 해외 경매에서 고가로 매각돼 국내에서 자주 홍보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술시장이 과열되고 투기현상마저 보이면서 이른바 ‘작전 세력’이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떤 컬렉터가 특정 작가의 작품을 다수 보유한 뒤 경매에 한두 점을 내놓아 가격이 오르거나 직접 고가로 구입해 작품가를 올려 놓은 뒤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팔아치우는 수법이다.

심지어 일부 경매에서는 작품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거수기 역할만 하는 작전세력이 개입하는가 하면 구매력 있는 컬렉터들에게 응찰 전에 작품가에 대한 정보를 흘려 경쟁을 유발시키고 낙찰가를 끌어올려 파는 수법도 동원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경매에 오르는 외국 작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미술인들도 있다. 지난해 외국작가의 작품 거래 수는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해 1억원 이상 낙찰작이 총 1점에서 10점이나 됐다.

이는 국내 컬렉터층이 다양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국내 경매가 특정 작가, 작품에 집중돼 절대 작품수가 부족한 측면도 있다. 그러다보니 경매에서 거래된 외국 작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한 미술평론가는 “정말 좋은 작품은 소더비나 크리스티에 올랐을 것이다. 국내 경매에서는 과대 포장된 외국 작품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칫 작품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요즘 서울옥션이나 K옥션 경매장은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호황이지만 인사동 화랑은 개인전이 줄고 단체전이 부쩍 늘어난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작가나 화랑의 여건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미술인의 76%가 예술 활동 수입이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시장이 커지고 미술품이 재테크의 대상이 될 정도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미술계의 양극화 현상은 심각하다. 소수의 상층부는 과열돼 있는데 반해 미술계를 지탱하는 하층부는 시간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한때 유명작가 대열에 올랐던 70대의 한 원로 화가는 “오래 살고 작품이 많으면 오히려 제대로 평가를 못 받는 게 요즘 미술계 풍토”라며 한탄했다.

경매의 활성화로 미술시장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부각되면서 경매제도와 화랑의 공존, 건전한 미술 유통구조의 정립 등이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화익 대표는 “화랑이 작가의 지원ㆍ육성과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시키는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경매회사들도 미술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준모 씨는 “경매시장에서 나오는 이익이 미술계로 재투자돼 선순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경매사와 화랑들이 힘을 모아 신진작가 육성과 컬렉터 확산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입력시간 : 2007/03/27 14:52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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