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코트… 썰렁한 스탠드

“몇몇 심판들의 판정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경기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줄은 모르겠다.”(프로 배구)

“경기에 지고 나면 감독들이 선수들의 기량이나 작전, 경기력 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선 심판 판정을 먼저 문제 삼는 것이 다반사다.”(프로 농구)

지난 설날 연휴 기간인 2월 18일. 때마침 프로 농구와 프로 배구 경기가 거의 비슷한 오후 시간대에 열렸다. 프로 농구는 대구 오리온스와 동부 프로미와의 대결. 6강 플레이오프와 직결된 경기여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일전이었다.

프로 배구는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의 맞대결. 정규리그 2, 3위를 달리는 팀들 간의 대결인 데다 배구 코트의 새 강자인 현대캐피탈과 올 시즌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대한항공과의 경기라 역시 접전이 기대됐다.

그러나 경기 내용에 대한 관중과 팬들의 반응은 딴판. 설 연휴 공중파TV로 중계되고 경기 결과에 따라 시즌 막판 순위를 다투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두 경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과 결과는 서로 엇갈렸다. 막판까지 팬들의 열띤 관심과 환호를 불러 일으킨 경기가 있는 반면 다른 경기는 맥없는 플레이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날 동부와 오리온의 경기는 초반부터 팽팽했다. 경기 중 두 팀의 스코어 차가 벌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래도 경기의 긴장감은 지속됐다. 하지만 승부가 사실상 결정되는 4쿼터 이후 오리온 선수들의 열의가 초반보다 떨어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초반 우세에서 역전당했다는 아쉬움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중반까지는 이어진 열심히 뛰는 모습이 경기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되지 못한 것.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반면 프로 배구 경기는 현대캐피탈의 3-0 완승. 고작 1시간 10분만 걸린 경기였다. 하지만 관중이나 TV로 경기를 지켜본 배구 팬들은 마지막 한 포인트까지도 경기에 집중하며 지켜봤다. 스코어 차는 벌어져도 승패를 두고 다투는 스릴과 긴장, 그리고 작렬하는 득점의 환호가 마지막 점수까지도 전달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인 프로 농구와 프로 배구가 올 시즌 엇갈린 인기 판도를 보이고 있다. 겨울철 최고 스포츠로 군림하던 프로 농구의 인기가 주춤하고 있는 반면 반대로 프로 배구의 인기는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프로 농구는 올 시즌 사상 최악의 심판 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등 심판 판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극심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기 상승 곡선도 예전에 비해 훨씬 못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 시즌 3년차인 프로 배구는 지난 시즌에 비해 관중이 무려 50% 가까이 늘어나는 등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심판 판정을 둘러싸고 몇 번의 분쟁이 있었음에도 판정에 대한 후폭풍이나 경기 결과에 대해 선수나 심판들 간에 아무런 이의나 마찰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프로 스포츠의 인기 얘기를 하면서 왜 심판 판정을 거론하는지 궁금해질 만도 하다. 물론 심판의 판정과 경기 결과, 팬들의 관심도, 인기 간에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다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프로 배구에서 심판 판정 시비가 비교적 덜하다면 프로 농구는 상대적으로 극심한 편이다. 비록 직접적인 인과관계나 상관 관계는 없다손 치더라도 심판의 판정과 경기 결과, 그리고 나아가 스포츠 종목에 대한 인기도와 팬들의 관심 간에 적어도 ‘어떤’ 함수 관계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프로 농구에서 일어난 용병 선수의 심판 폭행 사건은 심판 판정을 둘러싼 불신과 갈등이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당사자는 창원 LG의 퍼비스 파스코.

파스코는 지난 4월 12일 KTF와의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수인 장영재와 심판을 폭행, 한국농구연맹(KBL)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당했다. 국내 프로 농구 사상 초유의 심판 폭행사건을 일으킨 파스코는 소속팀으로부터 다음날 퇴단 조처를 당했고 곧바로 짐을 꾸려야만 했다.

하지만 불명예스럽게 한국을 떠나야 했던 파스코에게 오히려 위로의 시선을 보낸 이들은 다름 아닌 농구팬들이다. 사건 직후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파스코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파스코 사건'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이들도 파스코가 코트에서 상대 선수와 심판을 폭행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폭행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고 상대 선수가 지나치게 신경을 건드릴 만큼 몸싸움이 심했고 욕설까지 내뱉으며 폭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변명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오히려 많은 농구팬들은 농구 코트가 심판 폭행 사태로까지 얼룩진 데에는 심판 판정에 대한 오랜 불신과 불만이 누적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대로 반칙을 찾아내야 할 때 그렇지 못하거나, 반칙을 범한 선수가 아닌 피해자인 상대 선수의 잘못으로까지 판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는 것.

프로 농구 코트에서의 최근 잇따른 판정 시비와 갈등은 파스코 경우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서장훈의 퇴장과 욕설 사건 등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서는 그런 갈등이 특히 심하게 표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실 프로 농구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이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심판은 경기를 원활히 진행하고 선수들이 얼마나 규정을 잘 지키는지 감독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심판의 능력은 나아가 경기의 흥미를 배가시키는 차원으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심판 판정이 객관성을 잃거나 오심이 잦아진다면 선수들 간에 마찰이나 충돌이 커지기 십상이다. 최근 일어난 사태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또 오심이나 납득할 만한 판정이 장기적으로 오랜 지속된다면 선수들은 기량을 향상시키고 열심히 뛸 의욕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면 경기가 재미 없어지고 흥미를 잃은 팬들은 결국 경기장을 떠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공명정대한 심판 판정은 프로스포츠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키 역할을 하고도 남는 셈이다. 심판 판정을 둘러싸고 코트의 위기로까지 일컬어지는 프로 농구가 어떻게 문제를 극복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지 지켜볼 일이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