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율 증가와 함께 재혼율도 해마다 증가상처 갈등 극복이 관건… 주위 시선 따뜻해야

해마다 발표되는 통계청의 혼인 및 이혼 통계 추이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결혼 풍속도가 크게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이혼이 많아지면서 재혼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기준으로 전체 혼인 건수의 25.2%가 재혼이었다. 결혼한 부부 네 쌍 가운데 한 쌍이 한쪽 또는 양쪽 다 재혼에 해당하는 커플인 것. 이는 꼭 10년 전인 95년의 13.4%에 비해 두 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현상은 이혼과 재혼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우리 사회의 보수적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음을 반영하는 세태로 풀이된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시대가 된 것처럼 이혼과 재혼 역시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이 행복을 담보해주지 못했듯이 재혼도 결코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오히려 가족관계가 초혼 때보다 복잡해지면서 예기치 못한 갈등과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재혼에 대한 기대가 깨지면서 또다시 결혼생활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커질 수 있다.

실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이혼 상담을 의뢰하는 재혼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이혼 상담 건수 가운데 재혼자의 비율은 15%로 2005년 13.6%에 비해 소폭이지만 증가했다. 상담소 측은 “이혼율이 높아짐에 따라 재혼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재혼가정의 재이혼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혼과 재혼을 비교적 쉽게 생각하는 미국의 경우 초혼가족의 이혼율이 40%인 반면 재혼가족의 이혼율은 70%에 이르고 세 번째 결혼한 부부의 이혼율은 무려 80~9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현재 공식 통계로 재혼자의 이혼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족문제 전문가들은 재혼가족의 재이혼 사례가 초혼가족의 이혼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가족, 친지들이 이혼을 적극 만류하는 초혼 때와는 달리 재혼의 경우 주변의 관심도 덜할 뿐더러 당사자들 역시 ‘한 번 이혼했는데 두 번 못하겠냐’는 식의 자포자기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으러 나선 재혼가족이 다시 위기를 맞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재혼가족의 구조적 특성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재혼가족은 흔히 혼합가족으로도 표현하는데 그만큼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 갈등 또한 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각각 자녀를 둔 이혼 남녀가 재혼을 하게 되면 두 가족이 합쳐지는 것일 뿐 아니라 그 바깥에는 친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전 부인과 전 남편이 여전히 변수로 존재한다. 어찌 보면 네 가족의 경험과 문화가 혼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재혼가족의 구성원들이 혼란과 갈등에 쉽게 노출된다.

경제문제 갈등은 재이혼 불러

“재혼한 지 1년 넘었는데 남편이 통장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시댁은 땅 보상으로 수십 억원을 받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집이에요. 물론 시댁 식구들은 잘 대해줍니다. 남편은 장손인데 전 부인이 돈만 밝히고 시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 이혼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자상하고 부지런하죠. 그런데 아내를 못 믿어 통장조차 보여주지 않는 이 사람과 계속 살아야 되나요. 어떤 때는 내가 이 집 식구가 아니라 가정부 같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 너무 힘들어요.”

한 재혼주부가 상담기관에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올린 글이다. 이 주부는 재혼해서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 아이도 낳았지만 ‘돈 문제’ 만큼은 조금의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통상 초혼부부들은 가정 경제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거나 아내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지만 재혼부부는 사정이 다르다. 둘 다 경제력을 어느 정도 가졌다면 각자 재산관리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또한 남편이나 아내 중 한쪽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경우에는 상대에게 곳간 열쇠를 좀체 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재혼자들은 이혼 과정에서 재산문제와 관련된 홍역을 단단히 앓았기 때문에 재혼 후에는 배우자를 쉽게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부부 사이의 신뢰는 오히려 더욱 금이 간다.

가족의 생계를 나몰라라 하며 남편이나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유형의 배우자들도 재혼가족의 유지를 힘들게 한다. 두 살 위의 초혼 남성과 재혼한 30대 후반의 주부 양 모 씨는 “남편은 월급 180만원 중에 50만원만 생활비로 주고는 나머지는 자기가 관리한다. 그러면서 내 아이들에게 나중에 뭔가 해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재혼부부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첫 번째 사유는 경제문제다. 응답자들의 30% 이상이 돈 문제 때문에 다시 파경에 이르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곤궁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혼한 여성들의 경우에는 그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가정을 유지할 명분도 사라진다는 지적이다.

경제문제 외에 재혼가족의 안정을 위협하는 갈등 사유로는 부부 불신, 외도, 가정폭력, 전혼자녀 문제 등이 많이 꼽혔다.

자녀문제도 시한폭탄

재혼가족에게 자녀문제는 큰 숙제 중의 하나다. 부부 모두 자녀를 데려왔건 한쪽만 데려왔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같다. 그것은 친자녀와 계자녀를 똑같은 ‘내 자식’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30대 후반의 방 모 씨는 1년 반 전에 이혼하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초혼인 아내는 방 씨의 과거를 다 이해하고 결혼을 했지만 두 아이를 기르는 게 적잖이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생모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도 잘 키워야 하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

방 씨는 그런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막상 자녀를 대하는 방식에 이르게 되면 아내와 심하게 충돌할 때가 적지 않다. 이 문제로 두 사람 사이에 큰 위기도 벌써 몇 차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생모와 헤어진 상처도 있고 해서 좀 자유롭게 두고 싶은데 아내는 자신의 입장 때문인지 아이들을 너무 엄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서로 대화를 통해 절충점을 찾으려 노력은 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방 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재혼가족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사람들을 부모 형제로 맞아들여야 하는 자녀들의 입장에서도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자녀들이 오히려 부모보다 더 힘들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한창 신체적, 정서적으로 성장 중인 청소년 자녀들은 자신의 정체성 형성 과정만으로도 벅찬데 가족의 정체성까지 새로 설정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부모의 재혼에 대해 영·유아기 또는 20대 이상의 성인 자녀들과 달리 10대 자녀들이 더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이런 발달 단계상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부부 간의 유대관계에만 집착하고 자녀들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자녀들은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가족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10대의 나이에 성매매의 늪에 빠진 심 모(18) 양이 그런 케이스다. 지방 소도시에서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던 심 양은 엄마가 재혼하면서 자신을 외가에 맡기자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가출해버렸다. 이후 서울에 혼자 올라와 거리를 전전하던 심 양은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것.

한 청소년문제 전문가는 “재혼가족의 자녀들이 혼자 괴로워하다가 가출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며 “때문에 재혼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보다 세심한 배려를 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편견은 또 다른 장벽

재혼가족이 내부적으로 단란한 가정을 이루는 데 성공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바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이다.

재혼한 지 10년이 넘은 주부 황 모 씨의 경험담이다. “남편의 전처가 낳은 딸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얼마 후의 일이에요. 나는 아이를 키우는 데 떳떳했기 때문에 담임 교사한테 솔직하게 계모라는 사실을 밝혔더니 선생님이 딸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군요. 한번은 아파트 경비원이 내 딸 아이를 세워 놓고 너는 왜 아빠와 성이 다르냐라고 물어 아이가 울면서 집에 온 적도 있어요.”

사실 이혼과 재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재혼가족 당사자들은 아직 떳떳하게 ‘양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부부들은 재혼가족이라는 사실이 노출돼 자녀가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매사에 조심스럽다.

가족문제 전문가들 역시 재혼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편견이 재혼가족의 안정을 흔드는 훼방꾼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상담기관 관계자는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이혼이든 재혼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두고 타인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재혼가족들의 바람도 한결같다. 그들 스스로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어가기에도 힘이 부치는 터에 밖에서 흔들지는 말아달라는 하소연이다.

황 씨는 “재혼가족도 하나의 가족 형태일 뿐이에요. 색안경을 끼고 자꾸 이상하게만 보려고 하는 시선들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사람들이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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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