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새 1만원권 지폐 도안 오류 많아… 원본을 새로 해석해 그린 그림에 불과

인터뷰 - 소남천문학사연구소 박창범 교수

새 1만원권에 그려진 천상열도분야지도 도안의 오류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23일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만났다. 박 교수는 1998년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 판독 결과, 총평을 내린다면.

“ “상당히 부실하다. 별의 크기는 매우 잘못 되어 있고, 별자리 모양과 배치도 잘못되어 있는 것이 많다.”

- 천문도를 약식으로 모사하다 보니 그런 것이 아닌가.

“약식에도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 도안에는 그러한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별자리를 선별해서 어떤 것은 생략하고 어떤 것은 살릴지를 정할 때 별자리의 중요도, 즉 28수나 밝은 별자리 순위 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선택되어 그려진 특정 별자리 하나 안에서도 이를 구성하는 별들 중 일부가 이유없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큰 특징인 별 크기 구별도 훨씬 더 정확히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 현재 확인된 결과만으로도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인가.

“그렇다. 문제가 되는 수준이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

“천문도 도안을 지폐에 싣는다는 것은, 전통과학과 현대과학을 망라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학에 대한 국가적인 대우를 국민에게 천명하는 일이므로 과학계로서는 아주 반가운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폐들에 실린 예술품 도안과는 다른, 과학문화재로서의 독특한 면을 간과한 것 같다. 과학문화재는 그것이 ‘있다’는 것, 또는 ‘오래되었다’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이 가진 ‘과학성’이 함께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안은 그 과학성을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

- 새로 발행된 1만원권을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했는데.

“맨처음 봤을 때 도안속의 북두칠성이 일그러진 것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별자리들이 낯설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와서 (주간한국의 의뢰를 받아)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때 내가 낯설게 느낀 이유를 알겠다.”

- 당시엔 이 정도로 왜곡이 심한 줄 몰랐나.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문화재를 도안으로 싣는다면 거의 사진 수준에 가까운 정교한 도안이 제작될 줄 알았다. 이렇게 원본을 새로 해석해서 옮겨 그린 그림이 실릴 줄 몰랐다.”

-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나.

“나도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과학문화재에 대한 인식부족, 과학문화재의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인물을 그릴 때는 그 디테일 자체가 꼭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 캐리커춰처럼 특유의 인상만 제대로 전달하면 될 것이다. 그와 똑같은 인식으로 과학문화재를 대한 것 같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이 디테일이 중요한 문화재를 그릴 때는 특히 그런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미리 조심했었어야 한다고 본다.”

-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깊이와 넓이가 필요하다고 본다. 직접적인 제작 과정에서는 해당분야의 몇몇 전문가들을 통해 충분한 기간동안 깊이있는 자문과 감수를 거치도록 하고, 그 이후 최종 확정 전에 관련 학계에 있는 (직접 관여하지 않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광범위한 검증절차를 거치는 것이 오류를 걸러내는 데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게 하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 같다.”

●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약 600년 전인 조선 태조 때 제작된 별자리 그림이다. 1394년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면서 이를 기념해 천문학자들이 이성계의 명을 받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 1m, 세로 2m의 검은 돌(烏石, 편암) 표면에 1,467개의 별들이 새겨져 있다. 이후 돌이 닳게 되자 숙종이 다시 탁본을 이용해 돌에 천문도를 새겼다. 현재 국내에는 태조 때 만든 국보 제228호 석각본과 숙종 때 복각한 보물 제837호 석각본이 경복궁 내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숙종대 석각본은 세종대왕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지난해에 옮겨왔다. 현존 석각본은 조선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고구려 시대 원본을 후대에 복제한 것이다. 고구려 때의 '원조 석각본'이 전란에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천문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천상열차분야지도 별자리는 1세기경에 관측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전의 하늘을 담아낸 천문자료다. 제작 시기의 근거는 고구려 고분에서도 나타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자리의 배열이 고구려 고분에 나타난 별자리의 배치와 거의 들어맞는다는 것.

특히 각 별자리를 이루고 있는 작은 원형 모양의 하얀 점의 크기를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별의 밝기에 따라 점의 크기가 다르다. 별을 표시하는 이 작은 점은, 크기가 클수록 별이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놀랍게도, 이것 역시 현대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별의 밝기 등급과 일치하는 정도가 당시까지의 세계 천문도들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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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 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