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80%가 불법사채 운영50년대 말 본격 형성된 사채시장, 70년대 명동 중심으로 '활황'경제개발시대 '음지의 巨富' 속속 탄생, 여전히 지하경제 핵심으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한국에서 돈거래를 한다면? 그는 채무자에게 굳이 가슴살 1파운드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쉽게 거부(巨富)가 될 여지가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고리대금업은 일반화돼 있고 활황 중이다.

행정자치부와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를 이용해 돈을 빌린 국민은 328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미등록 대부업체, 이른바 ‘사채(私債)’를 활용한 사람은 절반이 넘는 180만여 명이다.

등록 대부업체의 80% 이상이 형식상 등록만 했을 뿐 사실상 사채 형태로 운영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300만 명 가까이가 고리의 사채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남한 인구 15명 중 1명꼴이다. 이는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신용불량자가 약 285만 명에 이르는 데서도 가늠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채시장은 국내 금융시장의 한 축인 사금융의 근간을 이루며 제도권 금융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게다가 ‘지하경제’의 핵심으로 그 규모가 400조~500조원으로 추정돼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상당하다.

우리나라 사채시장의 뿌리는 깊다. 금융제도가 형성되기 전부터 성행했다. 광복 직후 무담보신용대출의 고리대금업인 ‘사설무진’, 한국전쟁 이후 번창한 ‘사설계’, 1950년 대 후반부터 등장해 60~70년 대에 번성한 ‘전당포’등이 대표적이다.

■ 백 할머니, 광화문 곰 등 전설적 인물 많아

물론 본격적인 사채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50년대 말 남대문, 회현동, 명동 지역에서 활약한 이른바 암달러상에 의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암달러상은 미군부대 유출 물품을 구매하는 상인에게 하루 10%의 이자로 구매자금을 빌려주었다.

당시에도 부동산, 상거래를 통해 사채시장의 큰손이 된 경우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이규훈 씨는 명동 금싸라기 땅에 청휘빌딩, 우학빌딩 등을 보유하는 등 현금 동원 능력이 대단했다.

‘白할머니’로 불렸던 백희엽 씨는 1ㆍ4 후퇴 때 무일푼으로 월남, 일제 페니실린 수입으로 돈을 번 뒤 50년 대 후반 건국채권이 액면가의 20% 선에서 거래될 때 대거 매입해, 거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60년 대 말부터는 주식투자에 손을 대 300억~400억원의 거액을 굴렸다.

70년대 들어 경제개발이 본격화하고 기업의 자금수요가 급증하면서 사금융의 명동시대가 개막됐다.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 기업들이 금융권에 비해 2~3배의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사채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 종로, 광화문에도 사채시장이 형성됐으나 명동 시장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당시의 사채시장은 전당포식(담보대출)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에 전주(錢主)들이 손쉽게 거금을 벌 수 있었고 기업의 생사여탈권이 사채권자들이 쥐고 있을 정도였다. 이때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 중에는 재계나 산업계 유명인사도 많았다. 한국제지 단사천 회장, 우학산업 이학 회장, 신한종금 김종호 전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사채의 고리로 인한 부작용이 심화되자 72년 8월 3일 ‘사채동결조치’를 내렸다. 이후 사금융이 위축돼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되자 사금융을 양성화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단기금융업법(단자사), 신용협동조합법(신용협동조합), 상호신용금고법(상호신용금고) 등이 그것으로 명동의 발빠른 일부 사채업자는 상호신용금고를 설립하였다.

김지곤 기자.

이에 따라 은행이 주도하던 금융시장이 70년대 후반 이후에는 단자사(종합금융회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양상을 띠었다. 당시 단자업계나 증권가에서는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성보실업 윤장섭 회장을 비롯해 거액 자금을 사채시장과 단자시장에서 굴리던 은 모ㆍ홍 모 씨, S물산 대주주 김 모 씨, G호텔 이사장 등이 꼽혔다.

특히 82년 단자설립이 자유화된 이후에는 큰손 가운데 일부는 아예 단자회사를 직접 차려 금융인으로 변신한 경우도 적지 않다. 백 할머니 아들 박의송 씨는 우풍상호신용금고를 설립했고 D투자금융은 전직 장관 L씨의 친인척을 중심으로 100여 명의 사채업자가 참여해 설립했다.

H 투자금융은 과거 국공채 등 채권투자를 많이 했던 배모 씨 등이 중심이 돼 설립했다. 이들 중 일부는 ‘단자회사→투자금융→종합금융’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0년대 강남 개발로 큰손이 된 경우로는 ‘강남개발의 개척자’로 불리던 김형목 씨와 그의 아들인 김택 씨가 있다,

사채시장의 부응기였던 80년대는 큰손으로 통하던 장영자의 6,000억원대의 ‘어음사기사건’과 또 다른 큰손인 조금순 씨의 피살사건이라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80년 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에는 ‘광화문 곰’으로 불리던 고성일 씨가 정치권과 유착해 증권과 사채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고 씨는 금융기관에서 주식담보를 받는 등 과욕을 부리다 큰 손실을 보고 재산관리를 하던 아들이 부도가 나면서 몰락했다. 고성일 씨는 99년에 숨져 사채 무대에서 사라졌다.

■ 90년대 IT 부으로 명동에서 강남으로 대이동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명동 사채시장이 하향세를 보인 반면 강남 사채시장이 활황을 이뤘다. 김대중 정부에서 벤처 붐이 일면서 메카인 강남으로 자금이 몰린 데다 연 40%로 이자를 제한하던 이자제한법을 폐지(98년 1월 12일)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사채 유형도 전통적인 신용대출, 어음할인 등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 자동차 담보 대출, 신용카드 대출, 가계수표ㆍ상품권 대출 등 다양해졌다.

강남 사채시장은 초기 신사동 일대에 몰렸다가 최근에는 강남역 주변이 중심지가 되고 있다. 강남의 전주(錢主)들은 명동의 큰손과 마찬가지로 집사(중개자)를 내세워 사채업을 하고 있는데 부동산 담보 대출이 주종을 이룬다.

지 모 사장(63), 유 모 사장(65)이 대표적인 인물로 200억~500억원 정도의 현금을 다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역삼동 두꺼비’라는 별명을 가진 큰손은 1,000억원대의 자금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인 사채시장인 명동은 박 모 회장(71), 이 모 회장(65), 황 모 회장(73), 방 모 회장(62) 등 이른바 ‘명동 4인방’이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들은 모두 전주들로 500억~1,000억원 이상 이권이 걸린 사업은 박,이 회장이 맡고, 100억~500억원대 이권사업은 황 회장이, 30억~200억원대는 방 회장이 주로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자제한법 폐지 이후 서민을 상대로 한 고리대금업자의 증가로 고금리 피혜가 속출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사금융양성화를 위한 ‘대부업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 사채시장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대부업법에 따르면 사금융업자는 규모에 관계없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대부업자, 대부 중개자, 대부업계 투자자(전주)로 등록해야 하고 금리도 연 66%를 넘길 수 없도록 규제했다. 아울러 불법채권추심도 못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국내 4만여 개 사채업자 중 1만 7,210개 업체가 등록하였다. 반면 큰손들은 대부분 신분 노출을 꺼려 등록을 하지 않고 있다. 대부업체가 아닌 다른 법인을 설립하거나 바지사장을 내세워 사채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인 김 회장(70), 문 회장(70), 최 회장(65) 등은 부동산 대출 위주의 사채업을 하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 대신 중개자를 내세우거나 저축은행을 통해 대출하는 형식을 취한다. 명동 사채업에 밝은 관계자는 “지난 대선자금 수사 이후 큰손들이 사채시장을 떠나 기업합병 전문회사나 공개된 투자회사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정부 규제가 음지로 내몰아, 외국계 업체 진출 늘어

최근 사채시장은 지난 3월 무등록 대부업자의 불법영업을 규제하기 위해 이자제한법을 부활(법률상 연 40% 초과금지 및 초과분 무효, 반환청구권)한데 이어 대부업법상 상한이자율(66%) 놓고 대부업자와 정부ㆍ국회 간에 논란이 일고 있어 크게 요동치는 상황이다.

정부ㆍ국회가 고리대금의 폐해를 막기 위해 대부업 이자율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부업계는 “현실과 유리된 이자율 조정은 오히려 불법사채업을 부추긴다”며 반대한다. 대부업계는 이자율이 10% 떨어질 경우 100개 이상의 대부업체가 무등록 업체(사채)를 옮겨 갈 것으로 전망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