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이자·빚 독촉… 악몽 속 사채 피해자120만원 빚이 1년 뒤 1억 5,000만원으로, 사채 갚기 위해 또다른 사채 이용 '악순환'

“120만원이 빌렸는데 1년 뒤에는 1억 5,000만원의 빚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설마? 법치국가에서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믿어지지 않겠지만 현실에서는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사채(私債)의 깊은 수렁에 빠진 학습지 교사 김성은(가명·여ㆍ26) 씨가 그러하다. 지금 그녀는 사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김 씨가 사채의 유혹에 넘어간 건 지난해 초. 학습지 미납대금 100만원을 갚기 위해 사채업자로부터 120만원을 빌린 것이 화근이었다. 은행 신용대출을 이용하려 했으나 몇 해 전 친구에게 명의를 빌려준 게 잘못돼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문을 두드릴 수 없었다. 또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자니 신용조회 기록이 남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돼 부득이 사채를 택했다..

김 씨가 사채업자로부터 받은 돈은 선이자 50만원을 뗀 70만원. 이자는 1주일에 30만원으로 월 100%라는 살인적인 조건이었으나 곧 갚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빌리기로 했다.

그러나 김 씨는 두 달 이자 290만원을 갚았지만 원금을 갚지 못하자 남편의 자동차를 담보로 다시 사채 700만원을 빌렸다. 선이자 200만원, 수수료 70만원을 뗀 430만원을 받아 빚 350만원을 갚고 나니 80만원뿐이었다.

이때부터 김 씨는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악순환을 지속했다. 빚 700만원과 이자 70만원을 합한 770만원을 갚기 위해 남편의 자동차를 담보로 각기 다른 사채업체로부터 500만원씩을 대출받아 빚을 갚는 등 이후 8개월 간 그런 상황이 계속됐다. 1년여가 지난 현재 김 씨의 사채 빚은 모두 1억 5,000여 만원이 됐다.

가정은 풍비박산 났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날마다 13명의 사채업자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 사채가 이 정도로 무서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부업협회인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한대협, 회장 양석승)가 지난해 7월 10일부터 올해 5월 10일까지 대부업피해신고센터에 신고된 피해 현황(630건)을 분석한 결과 ‘이자율 위반’(연 66% 초과, 선수수료 수취 위반행위)이 전체의 65%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연 이자율이 무려 9,600%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 평균 이자율은 756%로 대부업법상의 이자 66%를 10배 이상 초과했고, 등록 대부업체 이자율(852%)이 무등록 대부업체 이자율(660%)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부업체들이 등록 여부에 관계없이 심각하게 법을 위반한 것이다.

김지곤기자

다음으로 많은 피해 사례로는 불법채권추심(제3자 고지 및 대납요구, 욕설 등) 17%, 대출사기 6%, 부채증명서 2% 순으로 나타났다.

사채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제1, 2 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는 7등급 이하의 낮은 신용자가 대부분이다 한국신용정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약 72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할 경우 조회기록이 남아 나중에 은행권 이용 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사채를 이용한다.

중소업체에 다니던 박재석(가명·31) 씨는 회사 부도로 인한 카드 연체료 100만원을 갚기 위해 등록 대부업체로부터 200만원을 연 65.7%로 대출받았다가 낭패를 보았다. 3개월 간 연체없이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았고 회사에 취직해 다니고 있는 데도 과거 대부업체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은행서 대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한대협은 13일 한국신용정보(한신정)와 한국신용평가정보(한신평)의 자료를 근거로 “대부업체 조회만으로 신용등급이 4~5 단계씩 급락한다는 속설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신용등급의 최대 하락폭은 1등급 정도로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신정이 올해 1~4월 동안 대부업체의 신용정보 조회를 한 개인의 신용등급을 조사한 결과 신용등급 변동이 없는 고객이 64.9%, 1등급 변동한 고객이 28.7%로 나타나 총 93.6%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

. 한대협 관계자는 “(대부업체에) 조회한 사실에 대해선 신용등급 변화와 무관하게 은행 스스로가 고객 신용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은행권의 높은 문턱이 급전이 필요한 자를 사채 시장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 광주의 건설업체에서 일하는 최영훈(가명·39) 씨는 모친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으나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절당했다. 최 씨는 할 수 없이 사채업자로부터 500만원을 빌리며 선이자 80만원을 뗀 420만원을 받았는데 나중에 상환하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사채를 추심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동원되는 경우도 적지않다. 폭력ㆍ협박ㆍ욕설이 동원되고 신체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민주노동당 송태영 민원정책실장은 지난해 11월 한 주부가 “채무변제를 못해 신체포기 각서를 작성했다”며 “사채권자가 집 주위를 서성이며 초ㆍ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도 접근한다며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송 실장은 “신체포기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으니 개의치 말고 경찰서에 신고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강원도 강촌 유원지에서 모텔을 운영하던 김상주(가명·52) 씨 부부는 지난해 2월 모텔을 지으면서 사채업자로부터 1억 2,000만원을 빌렸다가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10억원 상당의 모텔을 강탈당했다. 김 씨는 “사채 추심업자들이 모텔에 들어와 자해행위를 하는 등 행패를 부려 할 수 없이 모텔을 내줬다”고 말했다.

사채 폐해는 재산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 충북에서 학원강사를 하는 박 모(35) 씨는 사채를 갚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채보증 문제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하면 사채빚에 쪼들리던 가족이 집에 찾아온 사채권자를 두려워해 차를 몰고 저수지로 돌진, 함께 자살하기도 했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저신용자가 720만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불법사채 문제는 개인파산자를 양산하는 등 갈수록 심각해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 해법으로‘채무조정제도’를 제시했던 유세형 한대협 초대회장은 “사채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채권자와 채무자, 은행 등 제도권 금융권, 정부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채무조정제도, 개인회생제도 외에 신용불량자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는 배드뱅크를 확대하고 은행은 신용불량자의 취업을 알선하는 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금융과 사금융의 중간지대인 ‘제3금융 시장’을 활성화하면 사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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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