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만명 회원 거느린 국내 최대 커뮤니티 '자출사' 탐방자전거 탄 후 뱃살 없어지고 부부생활도 활력마음껏 도로 위 달리기엔 아직 어려운 점 많아

아침 출근길이 전쟁터로 변한 지 오래다. 도로 위는 수많은 자동차들로 꽉 막혀 있기 일쑤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기는 마찬가지. 사람에 치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출근길은 어느새 악몽으로 변해 있곤 한다. 이 같은 출근길을 자전거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이른바 ‘자출족’이다.

■ 나는 자전거 타고 출근한다.-자출족 김지회씨

“바람이 귀를 지나갈 때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아 본 사람만이 그 기분을 알 거에요. 그 휘파람 소리에 온 몸을 맡기다 보면 출근길 뿐 아니라 하루가 즐겁고 활기차지죠.”

자전거 마니아 김지회(45)씨에게 출근길은 전쟁터가 아닌 ‘여행길’이다. 그의 집이 있는 중계동에서 회사가 위치한 신당동까지는 편도로 약 18km. 자전거로 1시간 남짓 되는 거리다.

결코 짧지 않은 거리지만 아침마다 자전거 한대에 몸을 싣고 중랑천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 이 시간이 김 씨에게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됐다.

“아침마다 출근전쟁을 치르다 보면 출근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잘 없잖아요.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한 출근길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여행’이에요. 여행을 즐기듯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하나하나가 새롭게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길 가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돌멩이 하나까지 다 즐길 수 있게 되는 거죠.”

김 씨가 자출을 시작한 것은 1년 반 전. 처음에는 ‘운동’을 목표로 자출을 계획했지만, 점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에 빠져버리게 됐다. 자전거를 타는 게 출근 시간도 줄여주니 시간 활용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자전거로 여유 있게 풍경을 즐기면서 오더라도, 교통체증에 꽉 막힌 도로 위를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빠른 것. 더불어 교통비까지 절약할 수 있으니 김 씨는 요즘 ‘출근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출근을 할 정도’ 라고 너스레를 떤다.

“처음에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 한 게 막 40대에 접어들 무렵이었어요. 이제 나도 40대가 된다고 생각하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사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스케이트 보드, 인라인 스케이트를 먼저 했어요. 그런데 이게 나이 든 사람들이 하기에 만만한 운동이 아니더군요.

자전거는 제가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고 더불어 풍경까지 즐길 수 있으니 저한테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자전거를 시작한 이후 스스로도 부쩍 젊어진 걸 느낀다고 한다. 요즘에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다 보면 뒷 모습만 보고 ‘학생’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뱃살이 없어진 것은 물론 무엇보다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단단해졌다.

자출족들 사이에서는 ‘자출 다이어트 성공담’이나 ‘자출 이후 부부생활도 더욱 활력 있어졌다는’ 경험담들도 곧잘 오고 가곤 한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건강해질 수 있는 게 자전거의 진짜 매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전거는 다른 운동과 다르게 열린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잖아요. 그만큼 자연과 함께 숨쉬며 마음의 여유도 찾을 수 있는 거죠. 출근 하면서 운동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삼조 아닌가요?”

■ 자전거로 출근 문화를 새로 쓴다-자출사

김 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누비는 ‘자출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자출족 열풍의 중심에 인터넷 커뮤니티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 (http://cafe.naver.com/bikecity.cafe, 이하 자출사)’ 이 있다.

2003년 처음 시작된 ‘자출사’는 현재 11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국내 최대의 자출족 커뮤니티라 할 수 있다. 자출 코스나 자전거에 관한 정보교류에서부터 자전거 에티켓 교육, 자전거 사고 처리 시스템의 일종인 노란 천사 운동 등 자출족에게는 꼭 필요한 사회 운동까지 전개하며 국내 자출 문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다.

자출사 운영진 오종열 (31)씨의 설명에 따르면 자출사는 자전거 마니아를 중심으로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즐기는 방법이 없을까’를 연구한 끝에 설립됐다고 한다. 기존의 자전거 스포츠가 너무나 전문화되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것. 오 씨는 “자전거는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탈 수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입니다.

그런 자전거가 복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비싼 장비를 갖춰야만 탈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게 많이 안타까웠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출근길에 자전거를 타자는 것이었어요.”

자출사 회원들이 주도한 자출은 생각보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05년 말부터 불과 1~2년 사이에 여러 매체를 통해 ‘자출족’이 새로운 트렌드로 소개되기 시작하더니, 자출에 관심을 보이고 카페에 가입하는 회원수만 해도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 몇 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출족 열풍의 영향으로 실제 옥션을 비롯한 인터넷 쇼핑몰의 자전거 판매량만 보더라도 해마다 3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

. 고유가 시대에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교통수단이라는 점이 부각된 데다가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 트렌드까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자출사 운영진 최정호(42)씨는 “실제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가보면 1~2년 사이에 자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작년만해도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를 지나다니다 보면 괜히 다가와서 위협하거나 클랙션을 울리는 운전자들이 꽤 많았거든요.

요즘에는 자동차들이 먼저 차선을 배려해주기도 하고 ‘자출’을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주변에서도 자출을 시작하고 싶다며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는 게 보일 정도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자출족이 자전거를 끌고 마음껏 도로 위를 달리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그나마 한강변이나 중랑천, 청계천 등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는 편에 속하지만 아직도 자전거와 자동차가 한 데 섞여 달리기에는 위험천만한 곳이 많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이 같은 어려움은 더욱 심해진다.

자출사 운영진 조형철(44)씨는 “지자체에서 자전거 도로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인도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적다”고 지적한다. 자전거도 자동차와 함께 도로 위를 달리는 교통수단인데 인도에 도로를 설치해 놓으면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고, 그만큼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조 씨는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전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전거를 단순한 레저스포츠로 보기보다는 자동차와 같은 교통 수단의 하나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전거는 오히려 자동차보다 운동 효과나 환경보호 측면에서 더 탁월한 교통 수단인거죠. 도로 위에서는 자전거를 운전하든, 자동차를 운전하든 모두 똑 같은 ‘드라이버(운전자)’입니다. 이런 인식이 있어야 서로를 배려할 수 있고 더욱 안전한 자출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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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 기자 lunall3na99@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