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무어·칼더와 함께 파리서 세계 3대거장 조각전대규모 동유럽 순회전 통해 북방외교 전령사 역할도해외서 더 각광… 올림픽 등 대규모 행사서 단골 초대

헝가리 부다페스트 전시에서의 문신(1991년)
2005년 말, 미국 뉴욕 주재 UN한국 대표부는 조각의 거장인 문신(1923~1995) 유족측에 긴급히 협조를 요청했다. 2004년 9월부터 현지에서 전시되고 있는 ‘한국의 빛’ 이란 주제의 문신 조각전을 1년 더 연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각국 외교관을 접촉하는 UN한국 대표부에서 문신 조각이 한국의 외교력을 높이는데 적잖이 기여했기에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한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치열한 외교전 끝에 2006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사무총장에 추인된 반기문 장관은 UN한국 대표부에서 문신 조각을 배경으로 첫 기자회견을 열어 숨은 공로자를 돋보이게 했다.

문신 조각은 일찍부터 민간 외교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북방외교가 본격화한 1990년대 초 대규모 동유럽 순회전을 통해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알렸고 그 이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1980년 영구 귀국하기까지 약 200여 회에 걸친 전시회에서 한국인 거장의 위대함을 떨쳤다.

문신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알려진 작가다. 그는 일본 도쿄미술학교에 다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며 해방과 함께 귀국, 20대에 전국을 순회 전시하면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당대 최고 평론가인 근원(近遠)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 군이 등장했다”며 상찬의 평문을 쓰기도 했다.

문신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독창적인 작품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70년 남프랑스 포르 바카레스 국제 조각전에 특별 초청돼 높이 13미터의'태양의 인간'을 발표해 참가자 및 세계 조각계 관계자들로부터 "최고"라는 격찬과 함께 세계적 조각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신은 파리, 독일 등지에서 각종 포름과 조각전 등에 참가하였으며 1971년 한국 화가로는 처음으로 세계미술시장(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을 개척하였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초 지하철전에는 대형 석고조각을 출품해 센세이션을 일으켜 프랑스 3대 TV가 대대적으로 보도하였고 1973년 국제 현대미술교류전(파리)에서는 샤갈 등 당대 거장들과 동시에 초대되기도 했다

문신은 유럽화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문신의 시대’(각종 국제전)를 전개했으며‘세계 10대 예술가’로 선정되어 각국 유수미술관에서 순회전시회를 가졌다.

세계적인 평론가 쟈크 도판느(국제예술평론가협회 정회원)는 문신 예술에 대해 "문신의 작품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위대한 독창성이다. 이 독창성은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등 세 가지의 근본적인 요소가 놀라울 만큼 잘 융합되어 이루어진 것이다"고 평가했다.

1970년대 유럽 각 도시에서 국제 살롱전, 그룹전, 조각 심포지엄 등 전시에 참가하면서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선 문신은 197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귀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1980년 영구 귀국했다.

국내외 조각전을 통해 명성을 알리던 문신은 1988년 서울올림픽 국제 야외 조각전에서 25미터 높이의 스테인리스 스틸의 대형 조각인 '올림픽 1988'이란 명작을 창작,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미국 NBC와 영국 BBC가 현장 인터뷰하여 세계 52개국에 동시 위성 생방송함)

문신은 동양 작가로는 처음으로 1990~91년 헝가리, 유고 등 동유럽 순회전을 가졌으며 1992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3대 거장 조각전’에서 세계적 명성을 드높였다.

영국의 헨리무어, 미국의 알렉산더 칼더, 한국을 대표한 문신 조각전이 동시에 열린 가운데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국 작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기까지 했지만 유럽 언론은 문신 조각의 독창성을 높이 평가했고 관람객들 역시 문신 조각전에 몰렸다.

프랑스는 “세계적인 조각가인 한국인 문신이 프랑스에 영광을 안겨 주었다”면서 ‘프랑스 예술문학 영주장’이란 훈장을 한국인에게는 처음으로 문신에게 수여하였다. 문신이 세계 최고의 조각가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독일 바덴바덴 시에 전시된 문신조각을 감상하는 관람객들(2006년)

문신 예술은 1995년 그가 타계한 뒤에도 ‘세계성’을 인정받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1977년 피카소 등 대가들의 작품만 전시하는 샤를레5세 홀(일명 ‘존엄한 방’)에 아시아인 최초로 문신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국정홍보처의 요청으로 2001년 7월 중국 베이징 소재 한국문화원에서 문신 전시회를 가져 문화강국의 자부심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독창적인 예술성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5년 9월, 스페인 발렌시아 비엔날레에는 특별 초대되어 개막 15일 만에 관람인원 40만 명이란 기록과 함께 전시 종료까지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문신 예술을 감상하였다.

문신 조각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바덴바덴시에서 6월부터 9월까지 전시돼 ‘문신 열풍’을 일으킨데 이어 내달 8월 같은 도시에서 ‘문신미술영상음악국제축제’가 열려 문신 붐이 재연될 조짐이다. 또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사절로 대규모 문신 조각전이 예정돼 있어 ‘세계의 문신’으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

문신 예술은 최근 패션과 접목, 조각가ㆍ화가ㆍ디자이너의 다양한 면모를 지닌 문신의 모습과 함께 문신음악이라는 장르와 더불어 일찍이 미술사에 없었던 종합예술로의 확산과 융화를 거듭하고 있다.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같이 생활하며, 신처럼 창조한다”는 문신의 좌우명이 불꽃 같은 예술혼으로 되살아 나 한국을 넘어 세계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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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장흥면 장흥아트파크 문신 불빛조각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