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인입양인대회 16개국 700여 명 참가 대성황가족찾기용 고국 방문서 벗어나 한국 정착도 적극 나서입양인들 품어 안을 사회적 지원 시스템 마련해야

‘우리를 위해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말라’

고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의 초상이 달라지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은 비련의 주인공이 아니다. 한국인의 핏줄을 지닌 국제적 인력으로서 당당한 걸음과 함께 모국으로 회귀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고국을 방문하는 해외입양인들의 수는 연 평균 5천여명. 이들은 잠깐의 방문객이 아닌, 고국 땅에서의 정착과 사회 기여를 생각하는 한국사회의 어엿한 한 구성원으로 재편입되기 위한 새로운 입지와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지난 8월1일 경기 과천 한국마사회 컨벤션홀에서는 국민의 눈길을 끄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국제한인입양인협회(IKAA)가 주최한 ‘2007 세계한인입양인대회’였다.

해외 16개국에서 모인 입양인과 가족 등 약 700명이 모여 성황리에 대회가 치러졌다. 국내의 해외입양사상 가장 큰 입양인대회로도 주목을 받았다.

약 50년에 걸친 한국의 국외입양 역사 속에서, 젊게는 1980년대 말 또는 1990년도 초 국외입양아로 떠났던 이들이 장성한 청년세대로 돌아와 한자리에 모인 행사였다.

이번 해외입양인대회가 보여준 가장 큰 변화는 달라진 해외입양인들의 존재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들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도적 도약을 재고하게 하는 기폭제로서 의미가 깊다.

해외입양인들이 국내 뿌리찾기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사진:뿌리의집 제공>
대회에 참여한 한 한국인 자원봉사자는 “입양인들은 더 이상 한국인들이 미안해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며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국민의 시각이 바뀌어져야 할 때임을 상기시켰다.

이번 대회를 주최한 IKAA 준비위원회의 고문 킴 홈씨는 “IKAA는 변호사와 공인회계사 등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고 있는 한인입양인 출신의 고급 전문인력들이 다수 모여있는 단체이며, 과거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과 전문성을 발휘해 이제는 모국인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현재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슬픈 입양인이 아닌 자랑스러운 입양인으로 봐 주기를 바란다”며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들의 고국 귀환 인력을 합리적으로 지원할 사회적 시스템을 함께 고민하고 구축해 나갈 시점”이라 덧붙였다.

친부모를 찾거나 자신의 정서적 정체감을 찾으려는 해외입양인들의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과 함께 이를 지원하는 정보 제공 시스템이 조금씩 안정화되면서 이제 해외입양인들의 시선은 일시적 방문이나 핏줄 확인이 아닌, 고국에서의 미래와 봉사, 기여라는 새로운 초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IKAA 한국대회의 참가자 상당수가 대회 후 한국에 돌아와 일할 뜻을 굳힌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 거주중인 해외입양자들의 권익보호단체인 해외입양인연대에서도 “해마다 고국에 들어와 살기를 원하며 문의하는 해외입양인들이 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 및 덴마크 해외입양동포들과 양부모 가족들이 6일 마포구청에서 명예구민증을 받고 환한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포구청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 및 덴마크로 입양된 36명의 동포에게 자신의 뿌리가 대한민국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명예구민증을 전달했다. 신상순 기자

과연 해외입양인들을 당당한 글로벌 인력이자 우리 사회의 한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는 현재 얼마나 갖추어져 있을까.

재외동포재단 차세대팀 홍진향 과장은 “해외입양인들은 아직 국내의 현실에서 심적으로는 재외동포, 법적으로는 외국인인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법인 ‘입양특례법’ 등의 강화 문제를 비롯해 국가적 지원체제가 체계적으로 갖춰지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해외입양인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의사표현,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국외입양자 수는 1958년부터 시작해 2005년 현재까지 총 157,145명에 이른다.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한인입양아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다.

국외입양이 시작된 초기의 입양이유는 대부분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난이나 전쟁고아라는 시대적 아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사정이 대폭 호전된 뒤에도 우리의 해외입양은 다른 이유, 같은 수치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아이들을 국외입양시키고 있는 나라, 세계 제4위의 아동수출국이라는 불명예가 좀처럼 씻겨지지 않고 있다.

국외입양률이 연 평균 2천명. 한편에서는 법적으로나 민간차원에서 국내입양률을 높이고, 해외입양을 최소화 또는 방지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해외입양인들이 계속적으로 양산되는 이유는 차치하고, 해외입양후 성인으로 돌아와 고국에 머물기를 원하는 동포들에 대한 권익 보호와 제도적 뒷받침의 문제가 새 과제로 눈 앞에 다가와 있다.

현재 한인해외입양인들의 복지와 정책에 관련된 기구로는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외교통상부 산하기관인 재외동포재단, 그리고 해외에서 가동되고 있는 국제한인입양인협회(IKAA)와 국내 체류자들이 중심이 된 해외입양인연대(G.O.A.L) 등이 있다.

재외동포재단은 1997년에 설립된 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 정책을 모색하고 실행해 온 기구다. 설립과 동시에 국내 4개 입양기관의 국외입양인 모국방문사업과 모국어연수사업을 토대로 하여 입양인들의 민족정체성 형성과 모국간의 유대강화를 위한 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대표적으로 ‘모국 초청 연수 사업’, ‘국외입양인 자생단체 활성화 지원사업’ 및 ‘국외입양인 사후 관리지원사업’ 등을 계속 시행중이다.

재외동포재단은 설립 후 2006년 현재까지 총 9차례에 걸쳐 세계에 흩어져있던 18세 이상 국외입양인 약 444명을 초청해 모국문화체험연수를 벌였고, 국내의 국외입양기관들에서 추진한 모국방문사업을 통해 약 38,700명의 참여를 측면 지원했다. 또한 2005년까지 약 16년에 걸쳐 334명의 모국어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한 바 있다.

이외에도 세계입양인단체 대표자회의 서울 개최, 스웨덴 입양인단체 AKF 20주년 기념행사 개최 등 특히 2006년을 기점으로 해외입양인 관련 정책에 대한 도약의 분위기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고국에 체류중인 해외입양인 당사자들의 체감 현실은 아직 스산하다. 일상 생활을 위한 주변 여건이 여러 면에서 미흡하고 불편하다.

사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의 경우 공식적으로 등록된 회원수가 약 2,000명. 일시적으로 온라인 상담을 청하거나 한국 체류를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사이트를 방문하는 해외입양인들까지 합치면 훨씬 많은 국외입양인들이 이용하는 단체다.

이들 중 정식 가입 회원의 약 10%(비공식 추정치)가 현재 국내에 취업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은 현실적으로 외국인들과 동일하다. 이들은 F-4비자를 통해 입국하며, 2년 단위로 비자 유효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고국에서의 체류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원하는 입양인의 경우 외국인 거주증을 발급 받을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겪는 현실 그대로를 맞는다. 휴대폰이나 은행계좌 개설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불편이 많다.

해외입양인연대 김대원 사무총장은 “심지어 재외동포법이나 입양특례법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국외입양인들의 관련 정보의 부족, 홍보의 미흡함을 지적하고 있다.

● 1980년대 이후 고국 방문자 연평균 5천여 명
변호사·공인회계사 등 국제적 전문인력도 많아

해외입양인연대의 경우 재정적인 운영기반 자체도 불안한 사정이다. 1998년 설립되어 한국출신 해외입양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이 단체는 현재 보건복지부와 재외동포재단의 지원금과 약 60명의 개인후원자 도움으로 근근히 꾸려지고 있다.

상근직원으로 한국인 3명, 해외입양인 5명이 일하고 있지만 사실상 생업을 따로 가진 상근직이다. 2007년 하반기를 맞고 있는 요즘에도 내년 운영비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측에서 아직은 미력하나마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재외동포재단에서 발표한 향후 사업방안에 따르면, 국외입양에 관련된 기존 유관 기관들과의 협조 범위를 더 확대해 해외입양인들의 요구와 희망에 대해 적극 부응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특히 교육인적자원부와의 연계 하에 고국으로 귀환하기를 원하는 해외한인입양인들의 한국사회 적응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모국어 연수 및 국내 유학시 장학금 지원사업 등을 강화하고, 재정경제부와의 협조 하에 본인이 원할 경우 국내에서의 취업 문제를 상담하고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등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 홍진향 과장은 “고국에서 살고자 하는 해외입양인들의 움직임이 더욱 가시화 될 경우를 대비해 앞으로 이들이 언제든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이를 적절히 지원해 줄 수 있는 관련 조례나 법령 등이 마련될 수 있도록, 특히 이것이 일시적 정책이 아닌 지속적이고 안정된 지원 시스템으로 법제화되어 시행될 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해외입양인들의 회귀에 대한 본격적이고 진지한 토론이 시작됐다. 지난 7월 31일 한인해외입양인 문제를 정면으로 재조명한 첫 국제 심포지엄이 국내에서 열린 것도 여러모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 시대를 향한 한국사회의 좌표를 생각할 때, 자발적으로 고국에 돌아와 늦으나마 한국사회의 한가족으로서 당당히 함께하기를 희망하는 해외입양인들에 대한 방치는 소중한 인적자원의 수급 면에서도 국가적으로 아까운 손실이다.

비록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은 아니지만, 그간의 연민이나 감성적인 자성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외입양인’이라는 한국인 사회로부터의 고단한 삶을 ‘지정받은’ 해외입양인들에게 이제 우리 사회가 보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이성적인 답을 이 시대는 요구 받고 있다.

홍진향 과장은 “무엇보다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며, 이들에게 해외입양이라는 힘든 짐을 안겨 준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지금도, 앞으로도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과제임은 틀림없다”며 정책 추진상의 어려움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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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