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 개혁의 깃발 들고 당 화합 모색… 영남·보수 색깔 빼기 과정서 정면 충돌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가 ‘화합과 개혁’이라는 투 트랙의 깃발을 들고 12월 대선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경선 패배에 반발하고 이 후보 측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李ㆍ朴 진영 간에 또다른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당장 원내대표ㆍ정책위의장 선출을 놓고 양 진영 간에 파열음이 일고, 앞으로 2명의 최고위원, 전국위의장, 16개 시ㆍ도당 위원장, 공석인 당협위원장 선거가 이어질 예정이어서 李-朴의 전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무엇보다 이 후보의 당 화합과 개혁 추진에 박 전 대표 측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이ㆍ박 전쟁의 양태와 향후 당 구도와 대선에 미치는 진폭이 달라질 전망이다.

이 후보는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날 처음 당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당의 색깔과 기능을 바꾸겠다”며 당 쇄신을 천명했다.

이 후보는 그 다음날에도 “세계 역사상 이런 첩첩이 큰 정당은 없다”“사람 자체의 교체보다는 체질을 교체해야 한다”(인적 체질 개선)고 해 당에 대한 대대적은 수술을 예고했다.

한 측근 인사는 “한나라당의 수구ㆍ보수ㆍ영남당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고는 아무리 대선지형이 유리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전략통인 또다른 측근은 이 후보가 한나라당을 환골탈태시키려는 배경을 두고 이 후보가 서울시장 재직시 자문교수단과의 공부모임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귀띔했다.

당시 자문교수단은 수회에 걸쳐 ‘지도자론’을 논하면서 21세기 한국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데 대통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한다.

그 때 집권 전략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산토끼ㆍ집토끼론’. 한나라당 집토끼(지지세력)는 충성도가 높아 웬만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만큼 산토끼를 잡는데 전력해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이 후보가 당체질 개선과 개혁, 그리고 외연확대(산토끼)에 전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즉 국민이 기대할만큼 당을 변화시키고 점차 지역ㆍ세대ㆍ계층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에 매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경선의 후유증이 컸던 만큼 초반에는 당 화합에 비중을 두겠지만 점차 중도실용주의의 강도를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당의 수구ㆍ보수의 색깔을 빼 중도ㆍ실용주의로 옮기고 영남당 이미지를 탈색하는 방편으로 호남, 충청, 수도권의 비중을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초반 이 후보의 당 쇄신 깃발은 몇 발작도 떼지 못한 채 저항과 역풍을 맞고 있다. 아직 이명박ㆍ박근혜 후보 간 치열했던 경선전의 포연이 가시지 않은데다 영남ㆍ보수풍과 박풍(朴風)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이들은 ‘당의 색깔과 기능을 바꾸는 것’이 결국 영남정당의 뿌리를 해체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번 경선에 나타난 박 전 대표 지지층인 영남세력이 타격을 받는다는 시각이다.

‘인적체질 개선’역시 ‘체질이 개선되지 않은 사람은 언제든지 교체한다’는 것으로 이 후보의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냉전적 수구체제 인식을 갖고 있는 영남 수구파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한 저항의 움직임은 박 전 대표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오늘부터 저는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는 감동적인 낙선인사에 내재돼 있었다.

이를 두고 ‘아른다운 파배’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박 전 대표가 밝힌‘백의종군’에는 ‘당장은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리두기’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는 12월 대선과 내년 4월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 도정에서 이 후보 측에 모든 주도권을 내주지는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이기도 하다. 최근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류세력이 이 후보의 당 쇄신에 반발하는 것은 그러한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표 캠프의 영남ㆍ보수세력을 대변하는 김용갑 의원(경남 밀양ㆍ창녕)은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 색깔을 바꿔 정체성을 좌측으로 옮기겠다고 한 것은 보수세력 가슴에 못을 박는 것”이라고 이 후보를 정조준했다.

박 전 대표의 측근인 최경환 의원(경북 경산ㆍ청도)도 “정권교체를 위해 중도개혁세력 영입이 필요하지만 다만 이게(인적쇄신) 선거 끝나자마자 당을 접수해서 마치 결과에 따른 논공행상식의 이런 뜻은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명박ㆍ박근혜 진영 간 1년 여에 걸친 기나긴 전쟁은 이명박 대선후보를 탄생시키며 잠시 멈췄지만 ‘생존’을 위한 각 세력간 ‘또다른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ㆍ도당 위원장 선거를 앞둔데다 당내 세력 재편에 따라 총선 공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당 조직을 물갈이하려는 이 후보측이나 세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박 전 대표측 모두 치열한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이ㆍ박 전쟁의 향배는 내달 중순 이후 본격적인 당내 행보에 나서는 박 전 대표의 입장과 선대위원장 수락 여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2월 대선에서 이ㆍ박 진영은 물론, 한나라당이 공생하느냐, 아니면 공멸하느냐의 갈림길도 그때 가서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 내년 총선은 이-박 대리전?
양캠프 핵심 참모들 격돌 예상
진수희-이혜훈, 유승민-박창달, 조해진-김용갑, 윤건영-이인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날선 혈전을 벌였던 이명박ㆍ박근혜 캠프 소속 의원들 중 일부가 내년 4월 18대 총선에서 재충돌할 조짐이다.

우선 이ㆍ박 진영의 대변인으로 최전선에 나섰던 진수희ㆍ이혜훈 의원이 눈에 띈다. 비례대표인 진 의원이 2004년 12월 강남구 대치동에서 이 의원의 지역구(서울 서초갑)인 서초구 방배동으로 이사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격돌이 예상되는 것.

게다가 경선 국면에서 이 의원이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데 앞장서 이 후보 진영 일부에서는 이 의원을 내치기 위해서라도 진 의원을 반드시 공천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반면 진 의원은 이 의원과의 관계를 고려해 고향인 대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내내 검증 공세의 선봉에 섰던 유승민 의원 지역구(대구 동을)에는 이 후보 캠프의 박창달 전 의원이 출마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선인 박 전 의원은 포럼 ‘한국의 힘’을 이끌면서 이 후보를 외곽에서 지원했다.

이 후보 캠프의 조해진 공보특보는 박 전 대표의 보수세력을 상징하는 김용갑 의원 지역(경남 밀양ㆍ창녕)을 노크하고 있고, 이 후보 캠프의 브레인으로 활동한 윤건영 의원은 고향이 경북 고령이어서 박 전 대표 캠프의 경북지역 책임자인 이인기 의원과 공천 경합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이 후보에 대한 집요한 검증공세를 방어해 낸 은진수 법률지원단장은 부산 지역 출마가 점쳐지는데 인연이 있는 남구 을에 나설 경우 박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캠프를 총괄했던 김무성 의원과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

그밖에 이 후보 캠프의 박영준 수행부단장은 대구나 칠곡, 강승규 미디어홍보단장은 고향인 충청권이나 수도권,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배용수 공보단장은 고향인 PK(부산ㆍ경남), 또는 수도권 출마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례대표인 전여옥(서울 영등포갑)ㆍ이주호(고양 일산)ㆍ박찬숙(수원 또는 서울 송파갑)ㆍ나경원(서울 강남권)ㆍ송영선(대구 또는 경북 청도)ㆍ배일도(경기 남양주갑)ㆍ황진하(경기 파주)ㆍ안명옥(인천 중ㆍ동ㆍ옹진) 의원 등도 총선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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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