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제빵·위폐감식·양복기술 분야의 1인자들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식. 피날레를 장식하는 ‘안녕’에서 파격적인 ‘다듬이소리’는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당시 음향총괄감독을 맡은 김벌래(66ㆍ본명 김평호) 씨의 모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대 음대 교수 두 사람이 반대하여 쓰지 않기로 했던 소리를 과감하게 밀고 간 것..

김씨는 1970∼1980년대 만들어진 광고 소리의 90%가 그의 작품일 정도로 ‘음향의 달인’, ‘광고 소리의 대부’로 불린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88년 서올 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 대형 행사에서 사운드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66년 펩시콜라의 병 따는 소리를 만들어 주고 백지수표를 받은 일은 광고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현재 홍익대 광고홍보학부 겸직교수로 17년째 대학 강단에 서고 있기도 한다. 그런 김씨의 최종 학력은 1959년 국립체신고등학교 졸업. 그는 “소리를 이해하는데 학력은 상관없었다”면서 “이제는 학벌보다는 자신의 일에 소신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로 평가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외환은행 서태석(64) 부장은 위폐 감식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국토방위청 산하 비밀수사국(USSS)이 위조 지폐 정보교환 요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서씨의 학력은 중학교 중퇴다. 그는 2001년 정년 퇴임했으나 독보적인 능력 때문에 곧바로 부장급으로 재채용돼 현장에서 뛰고 있다. 그가 1년에 적발하는 위조 지폐는 평균 10만 달러..

그는 “내세울 만한 학력이 없기 때문에 믿을 건 실력뿐이라는 마음으로 37년 동안 위폐 감식 외길을 걸어왔다”면서 “어느 분야든지 자기 노력으로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기술 하나만 있어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위수(62) 대한민국명장회 회장은 한국 남성복 패션을 리드해가는 명장(名匠)이다. 1983년 양복 기술 경력사원으로 ㈜삼성에 입사한 이래 외길을 걷고 있다.

최근까지 20여년 간 유럽, 미국, 일본 등을 오가며 선진 양복 기술을 국내에 접목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 국내 양복 기술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2년에는 섬유분야 양복식중에서 최초의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금씨는 대학은 가지 못했으나 이탈리아 패션전문학교를 다니는 등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이 분야 최고의 위치에 있다. 현재 제일모직의 남성복 컴퍼니 팀의 기술고문을 맡고 있으며 배제대학 등에 출강,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학력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7월 김영모과자점 대표인 김영모(54) 대한제과협회 회장은 노동부가 주관하는 ‘기능한국인’으로 선정됐다. 37년 동안 제빵 분야의 외길을 걸으면서 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은 것이다.

김씨는 1982년 서울 서초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김영모과자점을 차린 이후 꾸준한 기술 개발을 통한 신제품 출시로 김영모과자점을 제과업계 정상 브랜드로 키웠다. 국내 최초로 천연발효(유산균 발효) 빵을 만들어 웰빙빵 붐을 일으킨 것도 그다.

김씨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그는 “각자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떳떳한 것”이라며 “학력은 인격이나 성품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또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아이들을 ‘분재’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보니 ‘열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학력이 아니라 자기분야에서 즐겁게 열정을 갖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김씨의 둘째 아들 영훈(27)씨가 프랑스 리옹제과전문기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매장에서 제품개발 업무를 하며 가업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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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