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60년사 정리… '사람·법·체제' 교체 진행 중"체제유지 공조 상대는 남한뿐" 결론 변화 급물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정남(36)의 거취가 새삼 국내외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가 평양으로 복귀, 당의 요직을 맡아 북한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이라는 소식이 잇따르면서다.

지난 6월 일본 NHK 방송과 AP통신이 김정남의 평양 복귀 소식을 전한데 이어 최근에는 그가 북한의 당(黨)ㆍ군(軍)ㆍ정(政)을 모두 통제하는 조직지도부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김정일 위원장 후계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김정남이 주목 받는 것은 그가 지닌 잠재력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로서 실제 권부의 요직까지 차지하게 됐다면 북한의 권력지형은 물론 후계구도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당연히 한국을 비롯해 주변국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실 김정남의 행방은 아직까지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는 올해 2월 11일 중국 베이징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 내외신의 집중 취재 대상이 된 뒤 자취를 감췄다.

최근 그에 대한 소식은 중국 내 북한 정보통으로부터 전해졌다. 복수의 북한 소식통은 “북핵이 6자회담 당사국들의 2ㆍ13 합의로 급진전을 이루어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묶였던 북한 돈 2,400만 달러 문제가 풀릴 무렵인 6월을 전후해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이 평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또다시 해외로 나갔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정남이 그동안 해외에 머문 배경과 활동을 분석하면 평양 복귀설에 무게가 주어진다. 김정남이 공개적으로 외부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공항에서 체포될 때다. 그 이후 김정남은 중국, 마카오 등에서 목격됐다.

북한 내부 사정과 김정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남의 주된 역할 중의 하나가 해외에서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조총련 자금과 BDA 은행 자금이 대표적이라는 것. 일부에서는 김정남이 해외의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러한 정황은 김 위원장이나 북한이 김정남을 신뢰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그만큼 김정남이 북한에서 당 요직을 맡을 개연성도 충분하다.

김 위원장이 그의 시대를 열어가면서 끊임없이 측근정치를 해온 전례도 김정남의 중용 가능성을 높여준다.

김 위원장은 1994년 김일성 사후 ‘고난의 행군기(1995~97년)’에는 혁명 1세대와 군부의 지원에 힘입어, 98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친인척그룹과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당 조직지도부 등 직계부서 그룹을 중심으로 북한을 이끌어 왔다.

게다가 2003년부터 북한 내부에서 ‘해방 60년사 정리’라는 큰 흐름이 형성되면서 김 위원장의 친정체제 강화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해방 60년사 정리의 기준은 ‘민족’이다. 해방 이후 남북한 60년사(1945~2005)를 ‘민족’입장에서 냉정하게 평가해 반민족적 행위를 엄단하고 향후 민족(남북한)이 중심이 되어 새 역사를 열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1994년 이후 김정일시대를 열어가면서 북한이 ‘궁극적인 파트너는 남한’이라는 결론을 내린 데 근거한다는 게 북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94년 이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최광 당시 총참모장이 군 엘리트들을 해외에 파견한 것을 비롯해 행정관료 중에도 해외로 내보낸 인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시대의 자주ㆍ자조ㆍ자립만으로는 북한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체제위기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것.

그 후 해외 파견자들이 보고한 내용을 종합한 결과 ‘북한이 공조할 수 있는 상대는 남한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98년 이후 현대그룹의 대북 투자를 비롯한 남북교류ㆍ경협이 본격화하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것도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북한이‘해방 60년사 정리’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사람ㆍ법ㆍ체제의 교체다. 2003년부터 북한 권력엘리트의 세대교체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내각을 비롯한 경제와 행정, 대남, 사회ㆍ문화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지난 4월 새로 기용된 김영일 내각 총리를 비롯해 남북회담 북측 대표인 권호웅 책임참사,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석군수 임업상 등이 대표적이다.

우선 사람을 교체하는데 친정체제 구축이 필요하고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친위그룹이 형성되고 있다. 그 중 군부는 측근의 중심세력이 되고 있고 2000년 이후에는 당과 공안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주요 요직에 진출해 있다.

김격식 총참모장, 김기선 인민무력부 간부국장, 김대식 정찰국장, 김원홍 보위사령관, 김정각 인민무력부 부부장 등이 새롭게 측근대열에 합류한 군부 핵심 인사들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있는 강동운과 황병서는 각각 425기계화 군단장과 총정치국 출신이며 이용철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주상선 인민보안상 역시 인민군 작전국장과 5군단장 출신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친정체제를 강화하는데 아들만큼 든든한 후원자는 없다. 김정남 중용설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김정남의 평양 복귀나 중용의 진위보다 북한의 변화다. 오는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민족공존을 위한 ‘해방 60년사 정리’라는 북한의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한 전제하에 앞으로 과제는 북한의 신호에 대한 남한의 태도다. 일단 어떤 정상회담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와 같은 뒷돈 시비가 있고 특정 세력을 위한 정상회담이라는 구설수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화답이 김정남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궁금한 요즘이다.

● 김정일 후계자는? 3새 세습인냐 집단지도체제냐
정남ㆍ정철 후계자론에 집단지도체제설 유력
"시대 흐름상 부자세습은 불가" 분석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정남(36)의 평양 복귀설이 불거지면서 또다시 김정일 후계구도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남과 최근까지 후계자로 거론됐던 차남 정철(26) 간에 후계자 경쟁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의 평양 복귀가 확인되면 북한의 후계구도는 사실상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한다. 김정철로 기울었던 권력의 추가 김정남을 향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남은 김 위원장과 영화배우 출신인 성혜림 사이의 아들. 25세 때인 95년 김 위원장으로부터 인민군 대장 계급을 부여 받기도 했으며 80년대 말 국가보위부 해외 부문을 맡은 데 이어 90년대 중반 들어 노동당 중앙위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 임명되면서 후계구도가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80년대 무용수 고영희가 김 위원장의 두 아들(정철ㆍ정운)을 낳으면서 정남의 위치도 흔들렸다. 그의 이모인 성혜랑이 96년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은 정남에게 결정적인 악재가 됐다.

반면 김정철은 당에서 후계자수업을 받고 김용순 아태위원장(2003년 사망),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지원세력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04년 6월 생모인 고영희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는 후문이다.

정철의 후계 가능성을 전망하는 견해도 여전히 적지 않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환갑이 된 2002년경부터 김정철의 후계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고 고영희에 대한 개인숭배가 본격화된 점, 그리고 김정남이 적통(嫡統)의 장자가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김정철에 우위를 두었다.

북한 고위 관료를 지낸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 책임연구도원도 “북한 주민은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이라는 영화배우를 잘 알고 있는데 그녀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반해 북한문제 전문가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장자인 정남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힘이 김정남 쪽으로 쏠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북한 후계구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부자세습의 후계가 아닌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3세대 세습에 대해선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북한 고위 관계자들을 잘 아는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 역시 “시대 흐름상 부자세습은 불가능하다”며 “북한 권력체제 변화와 함께 집단지도체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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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차장 jjpark@j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