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까지 위협하는 열악한 한국의 노동환경 집중점검정부 발표 산재 발생률 줄고 있지만 전문가들 '부실 투성이 통계' 지적OECD 국가중 최악 상황… 스트레스·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 급증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한국타이어 직원 연쇄사망 사건이 ‘업무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다시금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달 28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이번 사건에 대한 역학조사 설명회에서 “같은 부서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같은 질병에 걸린 것으로 봐서 심장질환으로 돌연사한 직원 7명은 공통적으로 노출된 업무적 요인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는 집단발병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직원들의 심혈관질환 사망률은 같은 연령대의 일반 국민에 비해 16배나 높게 나타났다. 말하자면 한국타이어 공장의 근무환경이 일반적인 생활환경보다 심혈관질환 사망률을 최대 16배나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뿐이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측이 업무상 재해로 추정되는 공장 직원들의 질병에 대해 사내 한의원에서 진료받도록 하거나 건강보험으로 청구하는 등 산업재해(산재) 처리를 회피한 사례도 다수 포착됐다.

노동부가 발간한 ‘2005년 산업재해현황분석’에 의하면 고무제품 제조업의 전체 재해율은 1.70%이며, 특히 1,0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전체 재해율은 4.0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국내 최대 타이어 제조업체인 한국타이어의 재해율은 고작 0.7% 이하로 매우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진상조사단 측은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한국타이어 공장의 작업환경이 월등하게 뛰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산업재해율이 평균보다 훨씬 낮게 나온 것은 산재 은폐의 개연성이 높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타이어 직원 연쇄사망 사건은 그 자체로서도 충격적이지만, 국내 산업현장의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노동안전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산재 발생률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2%대를 웃돌다가 90년대 이후 처음 1%대로 내려온 뒤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안전후진국’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벗기 위해 정부가 사업장에 대한 근로조건 감독 등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재 발생률은 IMF 경제위기를 맞은 직후인 98년에 0.68%로 저점을 찍은 뒤 상승세로 되돌아섰다. 구조조정 태풍의 여파로 사업장마다 인력이 줄어든 반면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근무여건이 나빠지면서 안전에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오름세를 탄 산재 발생률은 2003년 0.9%를 기록하면서 1% 돌파의 위기에까지 직면했지만, 정부가 다급하게 산업재해 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등 불끄기에 나선 덕분에 최근 들어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산재 발생률은 0.77%. 2005년에 이어 2년 연속 같은 비율이다.

산재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숫자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2003년 2,923명으로 역사적인 고점을 찍은 이후 2004년 2,825명, 2005년 2,493명, 2006년 2,453명 등으로 감소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전체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가 얼마나 되는지를 파악하는 지표인 ‘사망만인율’(사망자 수의 1만 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값)도 낮아지고 있다. 2006년 사망만인율은 2.1로 89년의 2.58 이후 거의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산업안전, 노동안전은 IMF사태가 빚은 위기국면을 벗어나 안정세로 접어든 것일까. 이에 대해 상당수 노동 전문가들은 ‘아니올시다’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정부의 산재 관련 통계가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부실 투성이라서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노동부가 매년 집계하는 산재 통계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적용사업체에서 발생한 산재 중에서도 산재법에 의한 업무상 재해 및 질병으로 승인을 받은 사망과 4일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재해만을 조사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군소사업장과 산재 승인을 받지 못한 재해가 통계에서 누락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부의 특별감독 대상이 되는 것을 꺼린 사업주가 산재를 은폐하거나, 근로자 스스로 산재 여부에 대한 인식이 적어 아예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라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김은기 노동안전부장은 “산재 신청을 번거롭게 생각하거나 회사 눈치를 보면서 아예 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매우 많다”며 “특히 직업병은 당사자도 사업주도 스스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즉 노동부 산재 통계와 달리 실제 산재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설령 겉으로 드러난 통계 수치를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해 국내 산재 발생률 0.77%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최대 2배나 높다. 더욱이 사망만인율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최악이라는 게 노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노동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위험천만하다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사실은 중대한 산재가 공장이나 건설현장 등 작업환경이 다소 열악하고 위험한 사업장에서만 발생할 것이라는 통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뒤집어 말하면 쾌적하고 안전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무직 종사자들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적잖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흔히 화이트칼라로 분류되는 직종 종사자의 월 근로시간은 평균 180~200시간 안팎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블루칼라로 분류되는 직종 종사자의 월 근로시간은 평균 200~220시간으로 화이트칼라에 비해 약 20시간 정도 많다. 특히 야근, 특근이 많은 장치, 기계조작 및 조립 종사자의 경우 초과근로 시간도 40시간 가까이 된다.

이처럼 근로시간을 놓고 보면 화이트칼라의 근무여건이 블루칼라에 비해 훨씬 나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 이유는 화이트칼라 직종의 경우 정해진 근무시간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5일제 근무제가 정착됐다고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말에도 스스로 휴일을 반납하고 출근하는 화이트칼라가 상당수다.

특히 회사에서 중간 간부층을 형성하며 가장 왕성하게 일하는 30, 40대 직장인뿐 아니라 일찌감치 치열한 생존경쟁에 길들여진 20대 직장인도 적잖이 ‘회사형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재벌 계열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 A차장은 “기본적인 업무량도 많지만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요즘 직장 풍토에서 정시 출퇴근은 꿈도 못 꾼다”며 “동료들 역시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A차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절대적인 노동시간도 문제지만 노동강도나 직무 스트레스 역시 화이트칼라 종사자들에게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신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뇌ㆍ심혈관계 질환을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뇌ㆍ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과로와 스트레스가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직업병이라고 말한다.

실제 근래 빈발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돌연사는 상당수가 뇌ㆍ심혈관계 질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노동부의 ‘2006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뇌ㆍ심혈관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 등 작업관련성 직업병자는 전년 대비 62.2% 증가라는 엄청난 폭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뇌ㆍ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도 늘어나고 있는데, 지난해만 해도 총 565명(남 493명, 여 72명)이 여기에 희생됐다. 연령별로는 뇌ㆍ심혈관 계통에 무리가 오기 쉬운 50대 이상이 50.27%로 절반을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30~49세의 한창 때에 세상을 등진 사망자가 271명으로 무려 48%나 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25~29세의 팔팔한 청년 사망자도 9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산재 승인을 받은 건수만 집계한 것이어서 산재 승인을 못 받았거나 아예 신청을 하지 않은 사례를 합하면 그 숫자가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윤간우 박사(산업의학 전문의)는 “상당수 직장인들의 과로는 돈을 더 벌려는 경제적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며 “스스로 과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죽음으로 내닫는 게 오늘날 노동현장의 현실”이라고 밝혔다.

국내 대부분 사업장에서 직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스트레스의 속성상 객관적인 측정이 어렵다는 난점은 있지만,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우리 사회가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 장세진 회장(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은 “스트레스는 피로, 우울증, 불면, 짜증, 대인기피 등 ‘신체화’ 과정을 거쳐 뇌ㆍ심혈관계 질환으로 발전하며, 심하면 사망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방어기제가 약한 직장인의 경우 스트레스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클 뿐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부작용을 강조했다.

직무 스트레스는 결코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스트레스는 곧 노동 생산성 저하를 의미하기 때문에 기업과 사회 전체의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더해 과로와 스트레스까지 짊어지고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오늘날 한국의 직장인을 살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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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