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 이서현 상무, 편집매장 '10코르소코모' 오픈사촌언니 정유경 신세계 상무의 '분더샵'에 강력도전'10코르소코모'는 이탈리아 첨단 패션 트렌드 이끄는 복합쇼핑몰정유경 상무, 지난해 롯데 장선윤 상무와의 대결 이어 제2라운드

올 봄 명품 시장에 재벌3세 ‘딸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맞상대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와 신세계의 정유 상무. 제일모직이 3월 말 서울 청담동에 셀렉트숍(명품 편집매장) `10코르소코모(10 Corso Como)`를 오픈하면서 국내 명품 사업의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신세계와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는 정유경 신세계 상무와는 사촌지간. 정유경 상무는 고(故)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이자 이건희 회장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이다. 때문에 이번 제일모직의 셀렉트숍 오픈은 재벌지간 사촌간에 펼쳐지는 대결로도 명품 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제일모직의 이번 셀렉트숍 오픈을 단순하게 보면 ‘수입품 매장 하나 여는 데 무슨 호들갑이냐’ 할 만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이달 중 문을 여는 10코르소코모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셀렉트숍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또 10코르소코모는 제일모직이 야심을 품고 추진하는 명품사업으로 거론된다. 실제 명품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제일모직이 10코르소코모 오픈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바라보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서현 상무를 위시한 제일모직이 ‘사활을 걸고 있다’고 까지 할 정도다.

밀라노 시내의 한 지명을 브랜드화한 `10코르소코모`는 1991년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인 프랑카 소차니의 언니 카를라 소차니가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1층부터 3층까지 패션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 서점 음반, 단 3개의 룸만 갖춘 부티크호텔 등이 들어서 있는 한마디로 복합 쇼핑 문화공간이다. 패션, 미술, 음악, 디자인, 라이프스타일 등에 걸쳐 이탈리아의 첨단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모직은 지난 해 여름부터 소차니측과 접촉, 올 초 단독매장을 열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도입부터 진행까지 이서현 상무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사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아 백화점 바로 건너편에 들어설 예정으로 한창 마무리 공사중인 10코르소코모 역시 이탈리아 밀라노의 매장과 같은 컨셉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한 마디로 단순 쇼핑 스토어라기 보다는 멀티 기능을 갖춘 셀렉트숍. 때문에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분더샵, 무이, 쿠 등 명품가의 모든 셀렉트숍들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분석이다. 든든한 자본력과 마케팅력을 갖춘 제일모직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일모직의 10코르소코모 오픈으로 당장 경쟁하게 될 주요 맞상대로는 신세계그룹의 분더샵이 꼽힌다. 이서현 상무가 앞장서는 제일모직과 정유경 상무가 버티고 서있는 신세계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장에서 맞닥뜨리게 된 셈이다.

이미 신세계가 일찌감치 발을 디뎌 놓은 셀렉트숍 시장에서 분더샵은 국내 톱3대 셀렉트숍 자리를 꿰차고 있다. 신세계 측에서 공식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더샵은 정유경 상무가 주도해 국내에 수입 멀티숍 바람을 성공적으로 일으켰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분더샵은 현재 서울 청담동과 신세계 본점 본관 등에 들어서 있다.

굳이 분더샵만이 아니더라도 이번 제일모직의 10코르소코모 오픈은 신세계와 명품 사업에 있어서 교차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 마디로 10코르소코모 오픈을 계기로 제일모직이 향후 명품 사업에 본격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무엇 보다 10코르소코모 오픈이 명품 업계의 화두로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이서현 상무나 제일모직이 그간 명품 사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일모직이 그렇다고 해외 명품 브랜드 수입 판매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주력 사업으로 거론될 정도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빈폴 등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성장시키는데 더 주력해 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시각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에비뉴얼관, 제일모직DERERCUNY

이에 반해 정유경 상무가 포진한 신세계는 국내 명품 시장에서 일찌감치 막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명품 브랜드들이 대거 입주한 신세계 본점 본관을 개관하며 위용도 과시했다.

사실 국내 재벌가 ‘딸들의 명품 전쟁’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세계 본점 본관이 오픈하면서 당시 ‘도우미로 나선’ 정유경 상무와 롯데 애비뉴엘의 장선윤 상무가 벌인 대결이 효시격으로 꼽히는 것. 신세계 보다 2년 앞선 2005년 명품관인 애비뉴엘을 개관한 롯데에 맞서 두사람은 ‘명품 대전’의 맞상대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때문에 이번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와 정유경 신세계 상무와의 ‘대결’은 ‘딸들의 명품 전쟁’ 2라운드로도 불린다. 특히 정유경 상무로서는 지난 해 재계 라이벌 롯데와 ‘1차 명품 대전’을 벌인데 이어 1년 만에 본의 아니게 ‘2차 명품 대전’을 치르게 된 셈이다.

현재 장선윤 롯데 상무는 지난 해 롯데호텔로 자리를 옮겨 호텔 마케팅 CRM 홍보에만 전념하고 있다. 공식 직함은 마케팅 부문장으로 명품 업무에서는 비켜나 있다.

롯데호텔이 맡고 있던 면세점 업무도 호텔에서 별도 사업부로 독립돼 장선윤 상무의 업무 영역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면세 호텔 업무가 법인은 같지만 경영은 독자적으로 하게끔 내부 조정을 한 탓이다. 때문에 장선윤 상무의 ‘이탈’로 자칫 벌어질 뻔 했던 이서현-정유경-장선윤 ‘재벌가 딸들의 3각 대결’은 무산된 셈이다.

특히 정유경 신세계 상무는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의 언니인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와도 호텔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펼치고 있어 사촌간의 3각 대결 구도가 자못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유경 상무로서는 계열사인 웨스틴조선호텔 내 플라워숍, 웨딩, 레스토랑 등 호텔 업무에서는 자매 중 언니인 이부진 신라호텔 상무와, 명품 시장에서는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와 교차 대결을 벌이게 된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이서현-정유경 상무의 대결과 경쟁 구도는 지난 해 ‘1차 명품 대전’과는 궤를 달리 한다. 정유경-장선윤 상무간 명품 1차 대전이 롯데 명품관인 애비뉴엘이 버티고 서 있는 바로 옆에 신세계가 본점 본관을 재개관 하면서 촉발된 것이라면 이번 2차 명품 전쟁은 셀렉트숍(명품 편집매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놓고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멀티숍으로도 불리는 셀렉트숍은 해외의 유명 브랜드 중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브랜드와 제품을 선별적으로 들여와 종합 구성한 매장으로 명품 시장의 첨단으로 떠오르고 있는 분야에 속한다. 제품들도 전위적이거나 첨단 디자인이 많아 상품군을 구성하고 매장을 꾸미는데도 특별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통 명품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분더샵을 가진 신세계 정유경 상무와 10코르소코모를 들여 오는 제일모직의 이서현 상무 모두 패션과 명품 분야에서 빼어난 안목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명품이라는 시장과 분야에서 제일모직과 신세계가 걸어온 길은 약간 차이를 보인다. 신세계가 백화점이라는 유통 기반을 갖추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명품 수입과 유통 판매에서 확실한 강자 자리를 굳혀온 데 반해 제일 모직은 상대적으로 자체 브랜드의 ‘명품화’ 노력에 치중해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10코르소코모 오픈을 계기로 제일모직이 향후 국내 명품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궁금증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서현 상무와 제일모직은 빈폴 등을 위시로 한 자체 브랜드의 ‘명품화’에 전력을 투구해 오고 있다. 1997년 신사복 브랜드인 갤럭시와 스포츠 브랜드 라피도를 중국에 진출시키며 일찌감치 해외 시장을 개척한 것을 비롯, 국내 간판 캐주얼 브랜드인 빈폴을 2005년 중국 고급 백화점에 입점시킨 것 또한 글로벌 패션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로 풀이된다. 라피도 또한 베이징 난징 등 중국 대도시 유명 백화점에 진출해 있다.

특히 일찌감치 해외진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모은 제일모직의 대표 브랜드 빈폴의 대륙 공략도 주목할 만 하다. 한국 패션 시장에서 1위의 자리에 오른 빈폴이 해외 명품 브랜드들과 경쟁해 승리를 거둔 유일한 브랜드라는 점은 제일모직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빈폴은 상해 최고급 백화점인 ‘상해 포동 팔백반 백화점’에 입점하며 신생브랜드임에도 백화점 내 캐주얼 군에서 가장 넓은 매장을 확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성공적인 매장 오픈에 이어 중국 현지 패션쇼를 개최하면서 현지인들의 높은 관심을 모으는데도 성공한 바 있다.

제일모직이 유럽 선진시장을 겨냥해 선보인 여성복 브랜드 ‘데렐쿠니(DERERCUNY)’도 제일모직의 글로벌 패션 사업을 위한 노력의 성과로 꼽힌다. 데렐쿠니는 제일모직 밀라노 법인이 글로벌 패션사업을 구체화하기 위해 패션의 심장부인 밀라노 현지에서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역발상’으로 런칭시킨 브랜드. 최근에는 해외 외신에 ‘패션 본산지인 이탈리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성과도 거두고 있다.

2005년 봄/여름 상품을 처음 선보였는데 이는 제일모직이 그간 품어왔던 글로벌 명품에 대한 의지가 담긴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것이 정설이다. 제일모직 이태리 밀라노 법인 또한 한국 패션업계 최초로 설립된 이태리 현지 법인으로 국내 패션산업의 세계화를 위한 첫 시도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10코르소코모 오픈을 계기로 패션 & 명품계의 트렌드 리더로서 이서현 상무의 주가도 올라가고 있다.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과 기획팀 부장을 거쳐 기획 담당상무를 맡고 있는 이서현 상무의 그간 활동과 실적으로 미뤄 중ㆍ장기적 전략을 잘 가지고 움직이면서 경영자적 능력도 뛰어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

특히 패션산업은 일반 제조업과는 다르게 심미안이 중요한데 미국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한 이서현 상무는 디자인 부문에서 뛰어난 통찰력과 감각을 발휘,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임 전 임직원들의 마인드가 주력 브랜드가 속해 있는 국내 시장(신사복,캐주얼 등)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편이었는데 부임이후 패션 업계 전체를 바라보고 폭넓은 시야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 제일모직의 글로벌 마인드 고취에 일익을 담당한 것도 이 상무의 업적으로 꼽힌다.

때문에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경영자라는 평가가 입증된 정유경 신세계 상무와 이서현 상무 간에 벌어질 향후 ‘선의의 대결’ 승자를 점치는 것도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