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의 파워게임… 초기 살생부 올랐던 인물들, 영남대학살 희생자로 판명최고 파워맨은 역시 MB… 이재오·이상득·이방호 등도 실력 발휘나경원 대변인 서울 중구 전략공천에 박성범·허준영 등 유탄 맞아

“여론조사와 경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누가 ‘금줄’을 잡느나에 따라 결판이 나는데.”

서울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기업인 K씨는 한나라당 공천 행태에 적잖은 불만을 나타냈다. 최종 공천된 후보가 케리어나 여론에서 자신보다 뒤졌는데 단지 ‘이명박 사람’이란 이유로 낙점이 됐다는 것이다.

경기지역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대학교수 L씨도 “한나라당 실세 의원의 지원을 받는 경쟁 상대에게 밀려 떨어졌다”며 ‘금줄’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을 나타냈다.

사실 한나라당 4ㆍ9 총선 후보 공천에서 ‘금줄’의 위력은 대단했다. 후보의 당락은 물론, 공천 학정시기, 심지어 공천 신청한 지역구까지 무시하고 이뤄진 전략공천까지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말하는 ‘금줄’이란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실세인 ‘보이지 않는 손’을 일컫는다. 당청 주변에서는 최고의 순도 100%의 금줄이 이명박(MB) 대통령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다음 금줄에 대해서는 견해차가 있는데 친이명박 쪽에서는 대체로 이재오 전 최고위원,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방호 사무총장, 정두언 의원 등이 꼽힌다. 친박근혜 쪽은 박근혜 전 대표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강재섭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최고위원 등도 ‘금줄’로 분류된다.

‘금줄’의 위력은 대단해 공천 1차 확정자 중에 금줄과 관련된 후보가 상당하다. MB직계인 권택기 전 당선인비서실 정무기획팀장(광진갑), 진성호 전 인수위 전문위원(중량을),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성북갑), 김효재 전 인수위 자문위원(성북을), 정두언 의원(서대문을), 백성운 전 인수위 행정실장(경기 고양 일산갑), 김해수 전 의원(인천 계양갑), 정종복 의원(경북 경주), 이상득 의원(경북 포항 남구 울릉), 이방호 의원(경남 사천), 윤진식 전 산자부 장관(충북 충주), 이재오계인 진수희 의원(서울 성동갑), 이군현 의원(서울 동작을), 안경률 의원(부산 해운대 기장을), 친박계의 김선동 전 박근혜 전대표 비서실부실장(서울 도봉을)이계진 의원(강원도 원주), 김학원 의원(충남 부여ㆍ청양) 등이 대표적이다.

나경원 대변인이 서울 중구에 전략공천된 것 역시 ‘금줄’의 힘이 작용햇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나 대변인은 서율 송파병에 공천을 신청해 당협위원장인 이원창 전 의원과 비례대표인 이계경 의원이 3파전을 벌였다.

이재오 의원과 강재섭 대표.

초반에는 이방호 사무총장과 안강민 공심위원장의 지지를 받는 나 대변인의 공천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원창 전 의원이 반발하고 이 전 의원을 챙겨온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나 대변인이 지역구와 무관하다며 문제를 제기, 결국 나 대변인은 서울 중구로 전략공천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구에 공천을 신청, 1차 관문을 통과해 경합중이던 박성범 의원, 허준영 전 경찰청장, 양지청 서울대 교수, 이윤영 인수위 상임자문위원이 유탄을 맞았다.

박 의원은 정몽준 최고위원을 영입하는데 공을 세?m다는 후문이고, 양지청ㆍ이윤영 씨는 친이명박계로 분류됐으며, 허준영 전 청장은 중구 남대문 경찰서장을 지낸 이력에다 강재섭 대표가 지원한다는 소문도 있어 저마다 공천을 장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줄’의 파워게임에서 비롯된 전략공천으로 금배지의 꿈은 사실상 날아가버렸다.

서울 은평갑 공천 논란은 더욱 가관이다. 은평갑에선 MB계인 김영일 전MBC 보도국장, 이재오 전 최고가 미는 안병용 당부대변인, 박근혜계인 김현호 정책특보 등이 경합을 벌여 김영일 후보가 1차로 공천확정?記립?안병용측에서 김 후보의 전력을 문제삼아 다시 안병용 후보로 바뀌는 일이 벌어졌다. 당 안팎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있다.

서울 마포을에서 이재오 전 최고와 가까운 강용석 변호사와 정몽준 최고 사람인 홍윤오 전 성국개발 사장의 경합에서 강 변호사가 승리한 것도 이 전 최고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최대 격전은 역시 친이(親李)계와 친박(親朴)계의 대결이다. 결론은 친이계의 일방적인 승리로 기울었다. 1~7차에 이르는 공천 과정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이던 친이계는 13일 이른바 ‘영남대학살’’로 불리는 8차 공천에서 확실한 방점을 찍었다.

현역 의원 25명 공천 탈락자 중 친이계가 12명, 친박계가 10명으로 외형상 균형을 갖춘 물갈이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친이계가 외상을 입은 반면, 친박계는 수족이 떨어져 나간 형국이었다.

무엇보다 25명을 대신해 공천을 받은 후보가 대부분 친이계 소장 인물들로 채워진 점이 두드러진다. 대구 달서을에서 이해봉 의원을 누른 권용범 뉴라이트전국연합대표, 탈당한 곽성문 의원의 대구 중ㆍ남구 자리를 꿰찬 배영식 한국기업데이터 사장, 정두언 의원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홍지만 전 SBS 앵커 등은 모두 친이계로 분류되는 정치신인들이다.

부산 동래에서 친이계열인 이재웅 의원을 누른 오세웅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자문 변호사였고, 사하을의 공천을 따낸 최거훈 변호사도 이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기자회견을마친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있다.(왼)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 공천 양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고 의원실을 떠나고 있다.(오른쪽)

‘영남대학살’ 공천과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피살자 명단에 오른 의원들이 공천 초반부터 여의도를 중심으로 떠돌던 ‘살생부’에 오른 인물이란 점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측에서는 이번 공천이 친이계에서 미리 각본을 짜고 그에 따라 수순을 밟아갔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공천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MB의 측근인 L의원과 J의원, 그리고 P씨 등이 중심이 돼 강북의 GㆍL호텔과 강남의 I호텔에서 팀을 이뤄 살생부를 작성한다는 얘기가 돌았다”면서 “이번 공천 결과는 살생부가 실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살생부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L 의원이 작성했다는 ‘L 리스트’, J 의원이 작성했다는 ‘J 리스트’, 이 대통령의 소장파 실세가 작성했다는 ‘P 리스트’ 등 여러 개의 살생부가 나돌았다. .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도 처음 10명 안팎에서 15명, 20명으로, 공천이 막바지에 이른 3월 초에 즈음해서는 30명, 40여명으로 늘어났다.

리스트에 오른 인물은 비리 연루 의혹을 받고 있거나 당 이미지를 훼손하는 행위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 의정활동 성적이 떨어지고 지역구여론이 좋지않은 의원, 그리고 친박계 중 지나치게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한 의원 등이었다. 여기에 3선 이상, 60세 이상 의원들도 실생부 리스트에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번에 영암대학살의 대상이 된 25명 중 80% 가량이 살생부에 오른 의원들이다.

예컨대 중진인 L,의원과 초선인 K 의원은 비리연루 의혹을 받고 있고, 또 다른 K 의원은 과거 여의도 입성 전에 금품 수수 사건에 연루됐던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G의원은 뒤늦게 ‘친이 인사’임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경선 때 보여준 ‘친박 행보’ 때문에 살생부 대상이 됐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추문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L 의원, 술자리 추태를 보였던 K의원등도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

4ㆍ9 총선 공천이 마무리된 한나라당 지형도는 친이계인 MB직계, 이재오계 등이 약진한 가운데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 이전에 비해 축소됐으나 여전히 당내 세력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밖에 강재섭 대표가 이종구ㆍ이명구 의원 등 자파세력을 챙겼고, 이방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을 등에 업고 소규모의 이방호계를 구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권 의원(경남 김해갑), 송은복 후보(경남 김해을)은 공천이 위험할 수 있었으나 이 총장이 구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총장이 당내 연대 출신의 좌장으로 이번 공천에서 같은 연대를 나온 친박계 유정복 의원과 함께 연대를 나온 후보들이 공천을 받는데 보이지 않게 힘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이진동 전 조선일보 기자(경기 안산 상록을), 이범관 전 서울검사장(경기 이천 여주) , 현기환(부산사하갑) 후보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세력판도는 4월 총선과 7월 전대에서 당권 향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천 후폭풍에 따른 박근혜 전 대표측의 선택과 고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종진 차장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