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물갈이' 주도한 한나라당·민주당 공심위외곽서 이재오 거센 입김… 한나라 친이계 장악손학규가 지원한 박재승 위원장은 재야파 주도

4ㆍ9 총선의 막이 오르기도 전에 공천 후폭풍이 거세다. 대선승리의 여세를 몰아 과반 이상의 의석을 노리는 한나라당이나 여당에서 야당이 돼 절치부심하는 통합민주당에 매머드급 ‘물갈이’ 핵폭탄이 떨어진 결과다.

더욱이 물갈이탄이 집중 투하된 지역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영남과 호남이어서 향후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18대 총선에 따른 정치지형의 변화는 공천 단계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셈이다.

그러한 ‘공천 쿠데타’를 가져온 장본인은 각 당의 공천심사위원회다. 공심위의 칼 바람에 여야의 텃밭은 쑥대밭이 됐고 대장급 금배지들이 여럿 날아갔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심위의 구성과 공천 과정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이 4월 총선 결과와 이후 당내 파워그룹 및 역학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각 당의 공심위가 요즘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1월 초 총선기획단이 구성되고 20여일이 지나 출범했다. 당시 공심위는 외형상 총선기획단의 작품으로 여겨졌고 실제 그들의 입김이 적잖이 반영됐다. 어쩌면 한나라당의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의 밑그림은 총선기획단에서부터 그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총선기획단은 이방호 사무총장이 단장을 맡았고, 김학송 전략기획본부장,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 정종복 사무1부총장, 송광호 사무2부총장, 박순자 여성위원장, 서병수 여의도 연구소장, 김정훈 원내부대표 등 8명으로 구성됐다.

이중 친이명박계 인사는 이방호 총장을 비롯해 정병국ㆍ정종복ㆍ박순자 의원 등 4명이었다. 친박근혜계 인사는 김학송ㆍ서병수 의원과 송광호 전 의원 등 3명이었고 김정훈 의원은 중립으로 분류됐다. 친이계 인사가 우위를 점하는 모양새를 띠었다.

총선기확단에서 친이-친박계 인사의 세력 불균형은 공심위 구성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나라당 공심위원들이 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부산, 경남 지역에 대한 공천심사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 공심위는 위원장을 경선 당시 검증위원장을 지낸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이 맡았고 내부 인사로는 이방호 사무총장과 임해규 의원, 비례대표인 김애실 의원, 강창희 인재영입위원장, 임종구 의원이, 외부인사는 김영래 전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대표, 이은재 건대 행정대학원장과 양병민 전국금융노조위원장, 강혜련 이화여대 교수, 강정혜 서울시립대 교수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중 이방호 총장과 임해규ㆍ김애실 의원, 강혜련 교수 등은 친이명박 성향이고 친박근혜계는 강창희 의원과 강정혜 교수 등 2명에 불과했다. 안강민 위원장을 비롯한 그밖의 위원들은 ‘중립’으로 분류됐지만 사실상 친이명박 쪽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었다.

친박계 의원들은 공심위원 인선 당시 공심위 구원이 친이계로 기운 것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공심위에서 현역 의원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박계 의원이 1명이라도 더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수도권 공천에서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됐고, 18일 공천혁명이라 불리는 ‘영남대학살’에서도 사실상 친박 쪽이 입은 내상이 훨씬 크다.

이처럼 한나라당 공천에는 각 계파간 이해관계가 깊숙이 작용했다. 이상득 국회부의장 공천 파동과 나경원 대변인 전략공천 문제는 빙산의 일각으로 공심위원들이 계파의 이해를 반영, 대리전을 치른 결과다. 이는 한나라당의 공천 물갈이가 빛바랜 혁명으로 비춰지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통합민주당 역시 공천 쿠데타를 감행했다. 주역은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대선패배의 그늘에 눌려 있던 민주당에게 4월 총선에서 희망을 갖게 했다.

박재승 위원장은 지난 2월 초 옛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합의발표 이전인 1월, 손학규 대표가 공심위원장으로 전격 발탁한 인물.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공심위는 외부인사 7명, 내부인사 5명으로 팀을 구성, 개혁 공천을 주도했다.

박 위원장이 영입한 외부인사는 김근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박경철 이사,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인병선 시인과 장병화 가락전자 대표이사,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다.

민주당 당내 인사는 신당에서 김부겸, 이인영 의원, 민주당 쪽에서는 최인기, 김충조 최고위원과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인 황태연 교수가 포함됐다.

박 위원장과 외인부대는 공천혁명의 진원지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심사를 맡은 안강민(왼쪽), 박재승 위원장(오른쪽)

이들 대부분은 재야운동권 출신으로 김근태 의원과 이력, 정서가 비슷한 인물들이다. 이이화 이사장은 재야역사학자로 유명하고, 인병선 시인은 신동엽 시인의 부인으로 김근태계 의원모임인 민주평화국민회의(민평련) 지도위원을 맡고 있다.

또 김근태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씨와 교감이 깊다. 증권가에서 ‘시골의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경철 정책이사는 김근태 의원의 오랜 후원자로 현역 의사이자 탁월한 주식투자전문가이다.

박 이사는 김근태계가 민평련지역모임, 정치아카데미 등을 전국적으로 열 때 강사로 참여하는 등 김 의원을 적극 지지해왔다. 장병화 대표는 기업인이면서도 민족문제연구소 지원,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 아름다운 가게 지원 등 사회활동을 적극 후원해 온 특이한 인물이다. 정해구 교수도 개혁성향이 강한 인사이다.

공심위원의 면모가 개혁성향의 손학규 대표와 유사하다. 손 대표는 김근태 의원과 고교(경기고), 대학(서울대) 동문으로 막역한 사이다. 게다가 박재승 위원장은 손 대표가 발탁한 인물이고, 김부겸 의원은 손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손 대표를 도운 인연이 있다. 이인영 의원은 김근태 전 당의장 사람으로 전체 공심위원이 손 대표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반면 민주당의 최대 계파를 형성해온 정동영계는 공심위에서 별반 힘을 쓰지 못했다. 옛 민주당 인사도 소수에 불과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공천과 총선을 통해 손 대표가 당내 최대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공심위는 지난 5일 당 지도부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금고형 이상의 비리ㆍ부정 전력자를 모두 배제하기로 확정해 민주당을 발칵 뒤집어 놓은데 이어 이인제, 정동채, 채수산 의원 등 당 중진과 호남의원을 물갈이하는 등 공천 태풍으로 민주당을 초토화했다. 앞으로 있을 비례대표 공천 역시 박재승 위원장이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와 합의해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하게 돼 공천개혁이 이어질 전망이다.

반면 1차 공천자 발표 55명 중 38명이 과거 열린우리당 출신인사로 분류되며 ‘‘도로 열린우리당’’이란 비판에 직면한 것이나 2차 공천자 48명 중 당 중진을 포함한 34명이 재공천 된 것은 개혁 공천의 의미를 감쇄시켰다는 평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