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영어달인 김원희·오상민·박시정 씨미국 대학강의 듣고 드라마도 보고 해외연수 한번 안갔지만 즐기는 영어로 말하기·듣기 실력 쑥쑥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어학원의 인텐시브 프로그램. 말 그대로 집중적으로 영어 학습이 이루어 지는 수업이다. 레벨 테스트를 통해 최고 수준을 통과해야지만 수강이 가능한 이곳에는 네이티브 버금가는 실력을 자랑하는 수강생들이 모여있다. 새벽 6시 30분, 인텐시브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돋보이는 2명이 있었다. 오상민(37)씨와 김원희(35)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두 명의 수강생은 유창한 영어실력의 소유자들이지만 영어 연수나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토종영어고수들이다.

“사실 저는 사립 초등학교에 다녀서 일찍 영어를 접한 편이에요. 6학년 때 처음 영어수업을 듣게 됐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공부를 하게 된 셈이죠. 교육 시스템 자체가 저를 영어에 빠져들게 만들었어요.”

김원희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왔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특히 군대에서 장교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해 ‘영어 달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군대에서 군사교리를 담당했는데 대부분 미군교리를 참고 해야 했어요. 자료도 그렇고 장비 매뉴얼도 전부 영어였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또 대학 전공분야에서 사용하는 많은 표준이나 자료들이 미국이나 영어권 국가에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라 영어환경에 노출돼 있던 기간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길었어요.”

김 씨는 유학이나 연수를 택하지 않은 대신 미국 대학에서 제공하는 무료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영어실력을 키웠다. 해외 언론사의 무료기사나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해 영어 듣기는 물론 독해까지 마스터했다는 그는 경제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영어달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토종 영어고수 오상민 씨는 두 자녀를 둔 37세 직장인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다시 컴퓨터 공학으로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IT업체에서 컴퓨터 관련한 일을 하며 영어고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 씨는 “직장생활을 하며 따로 시간을 내서 영어공부 하기가 쉽지 않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보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더 어렵다”며 “주로 평일 새벽시간과 저녁 식사 후 야근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영어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학원에서 내주는 과제도 만만치 않아 보통 하루에 4시간 이상은 영어에 투자를 한다는 그는 “단어 외우기를 포기한 순간부터 영어가 더 재미있고, 편해졌다”면서 “영어단어를 의무적으로 암기하는 것보다는 반복적으로 눈에 띠는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그만의 영어비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활용해 자막 없이 영화나 미국드라마를 보는 것도 영어실력을 늘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김원희 씨와 오상민 씨 모두 영어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지구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슬럼프를 겪을 수 있다며, 이 때를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 것이 영어를 마스터하는 비법이자 영어 울렁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영어공부는 물고기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김 씨와 오 씨는 “연초나 방학 때 반짝 몰리는 수강생들도 1년 이상 꾸준히 영어공부를 지속한다면 분명 놀라운 일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라며 자신들 뿐만 아니라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같은 ‘끈기’라고 강조했다.

김 씨와 오 씨 뿐만 아니라 실제로 유학이나 연수를 택하지 않고 영어달인이 된 사람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중요시하는 부분이기도 한 ‘끈기’.

외국어 방송사인 Arirang TV의 편성 PD로 활약했던 박시정(32)씨 역시 순수토종영어고수로 영어를 마치 모국어처럼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알파벳 정도만 겨우 알던 그 역시도 영어달인이 되기까지 영어를 향한 ‘애정’과 ‘끈기’가 없었더라면 아마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는 “펜팔을 하면서 또 팝송을 따라 부르면서 영어를 좋아하게 됐지만 꾸준한 문장·문법 암기, 단어공부가 없었다면 영어실력을 제자리 걸음이었을 것”이라며 “교과서 문장을 통째로 외우고, 문법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했던 게 지금 실력의 밑바탕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영어에는 단계가 있는데 언덕을 올라가는 과정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에요. 한번 올라갔다 잠시 쉬기도 하고, 오르고 쉬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가장 최고 단계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실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한다면 절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겠죠. 좌절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견디세요. 어느 순간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영어’라는 굴레는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는 박 씨는 “포기한다고 해서 결코 무관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영어가 또 다시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에 맞춰 꾸준히 영어를 즐긴다면 누구라도 영어달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완벽하게 영어를 마스터하기도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토종영어고수들. 그러나 영어달인이 되기까지 그들의 숨은 노력과 의지는 더욱 빛을 발하며, 영어광풍 대한민국의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