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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어덜키드] 아이들은 사라지고 어덜키드만 있다?
어른처럼 말하고 옷입고 화장하는 조숙한 어린이들의 세계



'리더십' 관련 서적을 보는 아이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지난 주 보도된 '초등학생 집단 성폭력 사건'을 보며 어른들은 혀를 찬다. 대구 모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상급생들이 음란물 내용을 모방해 하급생들에게 음란행위를 모방하게 하고 성폭력을 해왔다는 충격적이 내용이다.

성폭력과 같은 범죄나 이탈행동만이 아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말투와 행동까지 모두 어른의 모양새를 닮아간다. 어른과 같은 아이, 이른바 '어덜키드(Adulkid)' 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조기 논술 교육으로 내용도 이해 못하는 고전을 달달 외우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접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어른처럼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아이들.

'되바라진 그들' 어덜키드는 누구인가?

■ 애어른 만드는 왜곡된 '정보의 홍수'
미디어·조기교육·부모 태도 등 영향으로 '과잉 사회화' 현상 나타나



서울에 사는 석지혜 씨는(30) 7년차로 접어든 초등학교 교사다. 송파구 잠동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그는 처음 교단에 섰던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예전과 비교해 몰라보게 조숙한 학생들 때문에 진땀을 흘렸던 것도 여러 날. 그는 “아이들이 너무 조숙해 무서웠다”고 말했다.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애들과 기 싸움으로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주말에 롯데월드를 간다거나, 영화를 보는 것, 찜질방 가는 것 등이 신기했죠. 반에 공식커플이라고 해서 커플링도 맞추고 다른 학교에 이성친구가 있다는 아이도 많고요. 제가 고등학생 때 겪었던 일들을 초등학생들이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이어 석 교사는 한 아이의 학습지를 보여주었다. 이 학교 6학년인 조혜수 양은 자기소개서에 ‘핸드폰 가지고 다니게 해주셨으면 해요. 선생님은 젊은 분이시니까 이해하시겠죠?’라고 인사했다. 조 양은 꼭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로 ‘미래에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과 일본책에 파묻혀 보는 것’이라고 적었다.

조 양의 학습지를 보자. 질문은 “연극배우가 되고 싶은 친구와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과의 갈등상황에서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라”는 것이다. 조양의 답안은 다음과 같다.

‘진로를 결정하기 전에 너의 적성, 흥미, 성격에 맞는지 잘 생각해보았느냐?…엄마는 연극배우가 힘들고 고된 것을 알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네가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에 공부를 시키시는 것이다…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 어른스러운, 너무나 어른스러운

이런 조숙한 아이는 비단 조혜수 양 만이 아니다.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조숙한 아이, 이른바 ‘어덜키드(Adulkid)’가 늘어나고 있다. 의젓한 말투에 ‘잘 먹고 잘 자란’ 아이들은 신체도 어른 못지않게 성숙하다. 전문가들은 최근 10년 새 앞당겨진 2차 성징으로 이미 여아는 초등학교 3,4학년, 남아는 5,6학년에 사춘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이성에 눈을 뜨고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도 초등학교 3,4년부터다.

이런 현상은 지난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 초등학생 2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뚜렷해진다.

변화는 놀이문화에서 시작된다. 초등학생들이 자주 읽는 책으로 만화가 39%로 1위를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요즘 아이들은 동화책과 논술 추천 도서 등 수업관련 책보다 소설과 같은 성인용 단행본을 많이 읽는다고 대답했다. 31.6%로 세 명 중 한명이 성인용 도서를 자주 읽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음악 분야에서 더 현격하다. 초등학생 60.1%가 즐겨 듣는 노래로 가요를 대답했다. 팝송을 대답한 어린이도 8.4%다. 5.1%차지한 ‘기타’란의 대답 중에는 일본 대중가요인 ‘JPOP’과 영화사운드트랙이 많았다. 좋아하는 노래 제목을 써달라는 질문에는 ‘kissing you’ ‘tell me’ 등 가요이지만, 영어 제목 그대로를 적는 아이들이 많았다.

자주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는 쇼·오락이 57%로 압도적이었다. 이어 드라마, 교육방송 순이었다. 프로그램 제목을 적어달라는 질문에는 <무한도전> <1박2일> <우리 결혼했어요>같은 버라이어티 쇼와 <미우나 고우나>와 같은 홈드라마까지 다양했다.

이성친구가 있다는 어린이는 30.4%. 대부분이 학교와 학원에서 만났다고 대답했지만, 소개팅(2명)이나 채팅(3명)을 통해 만났다는 대답도 있었다. 이성친구와 주고받는 선물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가장 많았다(39.2%). 2월 밸런타인데이와 3월 화이트데이 영향인 듯했다. 커플링을 주고 받았다는 대답도 16.2%로 2위를 차지했다.

초등학교 여학생의 경우 외모에 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난 듯했다. 향수와 립글로스, 마스카라와 같은 색조화장품을 구입해 본적 있다는 여학생이 전체의 31%를 차지했다. 성형수술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는 대답은 8.4%, 실제로 성형수술을 했거나 계획 중이라는 아이도 두 명 있었다.

어덜키드의 특징은 성인들이 겪는 우울증이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습성을 아동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 아동 중 78.7%는 ‘만사가 귀찮거나 모든 일을 하기 싫을 때가 있다’라고 대답했다(항상 그렇다 11.5%, 자주 그렇다 20.5%, 가끔 그렇다 46.7%).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있다’는 아동도 조사 대상의 절반가량인 42.3%였다.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한장면. 성숙한 딸과 순수한 엄마의 이야기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 과잉 사회화의 결과

왜 어덜키드가 늘어나는가? 전문가들은 어덜키드 증가 요인으로 ‘미디어의 영향’을 꼽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정보 접근이 용이 해진데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텔레비전, 인터넷의 노출을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어른들의 말과 행동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모델링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박효정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과거 아이들이 웃어른과 형제를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익혔다면 요즘엔 컴퓨터가 그 역할을 대리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앞의 설문 조사에서 공부 방법, 유행하는 말과 행동 등의 정보를 인터넷,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얻는다는 대답이 절반(47.7%)에 달해 아이들의 어른스러운 행동과 말투는 미디어를 통해 습득된 것임을 유추하게 했다.

대입논술고사, 수행평가 등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일찍 작문을 쓰고 고전을 읽는 등 나이에 맞지 않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은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그러나 입심에 비해 지적 능력은 높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으로 승부하는 ‘다이제스트’식 독서 교육이 사고력은 없지만 말은 잘하는 헛똑똑이 아이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과잉 사회화’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부모 세대의 변화도 한 요인이다. 맞벌이의 증가로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이 적고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신의 감정을 자녀에게 쏟아 붓는 부모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런 ‘신세대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욕구를 그대로 드러낸다. 청강문화산업대 유아교육학과 황정숙 교수는 “요즘 부모들 중에는 자식에게 ‘안 그래도 힘든데 너까지 왜 그러니?’ 와 같이 자기의 입장에서 하소연을 일삼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성인의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발달시키며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바쁜 부모에게 거부당하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욕구는 감추고 부모가 원하는 애어른의 모습을 일찍부터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교수는 “초등학생에게 외고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들, 이런 어른들이 아이들을 빨리 어른이 되길 강요함으로써 어덜키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숙한 아이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황 교수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숙한 아이는 일반적으로 청소년기나 중년기를 거치며 인생 전반을 혼란 속에 살아갈 수 있다. 즉 어릴 때 하지 못했던 반항을 해보려고 하며, 언제나 완벽해야 칭찬받는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타, 영웅, 성취지향적인 인물이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사 이외에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기 쉽다”고 충고했다.

아이는 아이처럼 자라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다.

■ 요즘 아이들의 말말말
"네가 이해해라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야"



교육현장에서 요즘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 학원 전문가, 아동학 교수들이 상담과정에서 실제로 들은 요즘 아이들의 말을 유형별로 소개한다.

1) 어른의 현재 고민을 아이가 이야기 한다.

“동생이 많이 샀으니까 나는 안 살래. 우리 집은 부자 아니잖아.” by 유치원생.

“아빠는 승진해야 하니, 더 공부하세요.” by 초등학교 2학년

“빚이 많아 걱정이야. 그 빚을 언제 다 갚아?” by 초등학교 3학년

2)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초등학생

“네가 이해해라. 우리 할머니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 거 모르셔.” by 초등학교 1학년

“난 다 알아그런데 장유유서, 그런 것만 없었으면 좋겠어.” by 초등학교 6학년

3) 어른이 되어서 할 일을 미리 이야기 한다.

“난 분가해서 살거야.” by 초등학교 5학년

“우리 아이는 엄마가 키워주면 좋겠어. 공짜로는 미안하니까 100만원 주고.” by 초등학교 5학년

4) 어른들을 평가한다.

“부모님 장단점이요? 아버지는 그냥 무난한 편이고요. 어머니는 대하기 쉬워 좋은데 쓸 데 없이 챙기는 게 단점이에요.” by 초등학교 6학년.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요? 용돈이 2년 7개월이나 밀렸어요. 좀 주길 바래요.” by 초등학교 6학년







입력시간 : 2008/05/08 14:26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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