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만성통증·피로감·탈모 등 부작용 환자들 '이중고' 내몰아우울·불안등정신적 고통도 치료효과에 부정적 영향

최근 상영 중인 영화 '버켓리스트'는 항암치료 후 극심한 구토와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말기 암환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본 암환자들은 극중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는 말기 암환자 잭 니콜슨의 모습이 현실세계에서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고통 받는 자신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며 동병상련을 드러내기도 한다.

항암제 복용이나 방사선치료 같은 항암치료는 암 수술 후 암 발생을 억제시키고, 치유율을 높이며,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구토와 메스꺼움, 탈모 등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린다.

이제껏 암을 조기 발견해 수술로 완치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암환자에게 항암치료는 불가피하며, 무서운 암과의 싸움에서이기기 위해선 부작용 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암환자 가운데는 항암치료로 투병 할 때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고 느끼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암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이경갑 회장은 방광암을 앓았지만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병의 원인이 전체적인 몸의 면역력 저하에 있다고 본 그는 발병된 병소만 공격하는 방사선치료나 항암제 복용이 병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항암치료가 병든 세포만이 아니라 몸의 모든 세포를 공격해 결국 몸 전체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항암치료 중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은 단지 암을 이기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이 아닌 몸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는 신호다.

구토와 설사는 소화기계 점막세포가, 몸 전체의 질병 저항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골수세포가 죽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회장은 암환자 중에는 항암치료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항암치료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했다.

구토는 항암치료로 인한 부작용 중에서도 환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증상으로 알려져 있다. 구토가 심하면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음식섭취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준다. 암환자들은 암 자체만으로도 불균형한 영양상태에 빠지는데다 항암치료로 인해 구토를 하게 되면 일상생활은 커녕 제대로 영양섭취를 못해 항암치료를 견뎌낼 능력조차 감소한다.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영양부족으로 사망하는 암환자가 20%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백혈병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해 환자의 혈액을 추출하고 있다. / 사진=임재범기자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백혈병 조혈모세포이식'을 위해 환자의 혈액을 추출하고 있다. / 사진=임재범기자

항암치료 중 극심한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많다.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통증으로 하루종일 고통에 시달리고, 통증으로 인해 교감신경이 더 예민해져 불면증까지 생기는 환자들도 있다.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진통제를 써 보지만 웬만해선 효과를 보지 못한다. 게다가 통증이 심한 암환자 가운데 약 37%는 통증을 과소평가하거나 진통제에 대한 오해 때문에 진통제 처방조차 받지 못한다는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설문조사결과도 있다.

그밖에도 빈혈과 심각한 피로, 탈모, 폐렴증세 등이 항암치료 환자들을 괴롭힌다.

항암치료가 이처럼 심각한 부작용을 수반하는데도 그동안 의료계는 암을 극복하는데 주력한 나머지 부작용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암치료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 이제 암환자 두 명 중 한 명은 완치되는 시대가 열렸다. 암 생존율이 높아지고, 투병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그에 따라 관심의 초점이 생존율에서 환자의 삶의 질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더 이상 항암치료의 부작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2006년 9월11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전국 63개 의료기관의 외래, 입원 암환자 7천2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통증이 있는 환자 3천245명 가운데 60.8%가 "수명이 연장되는 것보다 통증이 덜한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환자들이 오래 사는 것 못지않게 고통스럽지 않게 살기를 원한다는 방증이다.

이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 하는 것이 암치료에 있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수요에 따라 항암치료의 부작용 뿐 아니라 기존 암치료의 전반적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치료는 한계가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경란 교수는 암환자의 절반 이상이 우울증과 불안, 분노 등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신적 고통을 앓게 될 확률은 암의 진행상태에 비례해 말기 암환자들의 경우 거의 전부가 매우 심한 우울증과 불안 등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암과 싸워 이기려면 신체적 건강과 함께 정신적 건강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아주대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전미선 교수는 "암환자의 우울과 분노, 불안감 등은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치료효과에도 매우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실제 본인의 환자 중에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 심한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항암치료를 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이미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이론이다.

이처럼 암환자의 정신 건강은 환자의 삶의 질뿐 아니라 병의 치료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으나 환자의 정신건강까지 살피는 의료제도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또,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기존의 접근보다 몸의 전체적인 면역력을 높여주고, 삶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암환자협회' 김선규 회장은 직장암 수술을 받고 3년간 투병생활을 했지만 항암치료는 받지 않았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보다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김 회장은 항암치료 대신 유기농 야채 섭취 등 철저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적극적으로 실시했고, 스트레스 관리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면역력을 길렀고, 암 극복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역시 항암치료가 불가피한 암환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 스트레스 관리 등 삶의 질을 높여주는 치료법을 통해 암을 극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항암치료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기류에 따라 암세포에 국한되지 않고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삶의 질까지 두루 고려한 전인적 치료의 필요성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