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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랑, '향수 예술' 세상을 매혹시키다
황후 위해 제작 후 유럽 왕실·귀족 애용 프랑스 유산으로 180년 명성




글·최유진 미술세계 선임기자
사진·겔랑 코리아 제공

1- 겔랑의 향수 제조공장
2- 겔랑의 창시자 피에르 프랑소와 파스칼 겔랑
3- 겔랑의 향수는 수공에 의한 공정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향은 인간의 후각을 통해 기억되는 신비로운 기체다. 작은 유리병에 담겨있던 액체는 분사되는 순간 모양도 부피도 없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제 향을 드러낸다. 향기는 잊혀진 기억을 또렷하게 되살려주기도 하고 누군가에 대한 새로운 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을 사로잡는 향기.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매혹하는 것인지는 1770년 영국의회가 선포한 ‘향수를 이용해 국왕의 신하를 유혹, 통정하거나 결혼하는 여자들은 마녀와 창녀를 처벌하는 법의 저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법령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코끝으로 들어와 뇌로 전달되어 마음에 각인되는 향. ‘향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겔랑은 향수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수회사로 180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겔랑의 명성은 프랑스의 유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겔랑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를 위한 향수 오데코롱 임페리얼(Eue De Colon Imperiale)을 만들면서 ‘프랑스의 향수’가 됐다.

화학자였던 피에르 프랑소와 파스칼 겔랑(Pierre Francois Pascal Guerlain)은 황후의 우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이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오렌지 블러썸, 베르가못, 레몬, 라벤더, 로즈마리의 향을 섞어 향수를 만들었는데 이 벌집모양의 병에 담긴 고급스런 향에 반한 황후가 겔랑을 왕실업체로 지정한 것이다. 그 후 많은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이 겔랑의 고객이 됐으며 겔랑은 그들만을 위한 향수를 만들기도 했다.

한 사람만을 떠올리며 만드는 향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지니지만 이 특별한 향수는 대를 잇는 겔랑가(家)의 향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에 의한 것이다. ‘향수’를 향한 신념은 1828년 첫 매장을 오픈한 피에르 프랑소와 파스칼 겔랑 뿐 아니라 그의 아들과 손자로까지 피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끼’ 같은 것이었다.

향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감각을 지닌 겔랑가의 자손들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향기로 채우기도 하고 지쳐있던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어 그들의 정서를 감싸기도 했다.

향수를 조제하는 기술을 물려받은 후손들은 뛰어난 후각으로 향수에 대한 가문의 철학을 지켜오고 있다. 3,000여 가지의 향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후각을 지녔던 장 폴 겔랑(Jean-Paul Guerlain)의 능력은 조향사로서 최고의 능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대적인 장비를 이용하지만 100년 전 제조공정 방식을 그대로 유지, 수공에 의한 공정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겔랑의 향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라, 품질에 인색하지 말아라, 이 단순한 생각을 고수하고 타협하지 말라”는 철학을 5대에 걸쳐 지키고 있다.

겔랑이 문화유산으로 평가되는 것은 향수에 담긴 겔랑의 예술적 감성 때문이기도 하다. 향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패션이 역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반면 향수는 흔히 패션을 꾸며주는 액세서리 다음의 엑스트라 정도로만 여겨지는데 겔랑은 이러한 인식을 바로 잡는다.

언어를 매개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면 겔랑의 향수는 ‘향수예술’이다. 시인이 시를 통해 자신의 감성과 생각을 표출하는 것처럼 겔랑은 향수에 사회·문화적 사상과 감성을 담았다.

최초의 근대 향수인 ‘지키(Jicky)’는 아이메 겔랑(Aime Guerlain)이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을 추억하며 만든 것으로 밝고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한 것으로 당시 태동하고 있던 모던주의를 나타낸 용기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4- 1965년 장 폴 겔랑에 의해 만들어진'아비루즈(Habit Rouge)'. 너무나 널리 유행한 탓에 향기만으로는 다가오는 남성이 아버지인지 애인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5-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유제니 황후를 위한 향수'오데코롱 임페리얼'. 벌은 여왕을 상징한다.
6- 최초의 근대 향수'지키'. 열렬히 사랑하던 여인을 추억하며 아이메 겔랑이 만든 향수다.
7- 1919년 오페라 <나비부인>에 영향 받은 파리의 분위기를 반영해 만든'미츠코'
8- 1925년 출시된'샬리마'라는 이름은 인도의 정원 이름을 본 딴 것으로 동방의 약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판매되고 있다.


쟈끄 겔랑(Jacques Guerlain)은 1912년 ‘레르 블뤼(L'heure Bleue)’를 통해 당시 사회에 퍼졌던 젠틀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했고, ‘미츠코(Mitsouko)’는 오페라 <나비부인>에 영향을 받은 파리의 분위기를 반영해 1919년 만들어진 향수다.

겔랑은 전쟁으로 인해 암울해진 사회분위기를 향기를 통해 반전시키기도 했으며 진보적인 사상을 향기에 담아 표현하기도 했다.

1920년대 모순으로 가득 찬 차갑고 냉랭한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샬리마(Shalimar)’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감싸는 부드러움으로 미국을 사로잡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은 『야간비행(Vol de Nuit)』을 쓴 쌩떽쥐베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볼드뉘(Vol de Nuit)’를 만들었으며 격변의 시기 1969년에는 진정한 자유를 지향한다는 의미로 ‘샤마드(Chamade)’를 세상에 선보이기도 했다.

겔랑이 만든 최초의 립스틱 ‘느 무블리에 빠(Ne m'oubliez pas)’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의미로 문학적인 정서를 풍긴다.

전혀 새로운 감정을 환기시키는 향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도 하고 즐겁게 흥분시키기도 하는 향기는 ‘감정의 동물’ 인간에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향을 이용한 아로마테라피 요법은 심신을 돌보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향기요법은 실제로 인체에 유익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유제니 황후가 자신을 위한 향수 ‘오 데 코롱 임페리얼’을 통해 두통을 완화시켰다는 일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때때로 몸을 희생시키는 패션과 달리 지친 마음을 달래고 정신적인 안락을 주는 향수.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닌 향기를 통해 오래도록 전해지는 아름다움은 내면의 미(美)와는 또 다른 것이다. 정서적인 만족과 기쁨을 주는 향수. 향을 통해 세상의 희비를 표현하여 기쁨과 감동을 주고 인간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는 향수를 어찌 예술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좋은 향수는 영원하다”는 겔랑의 말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겔랑의 향기와 예술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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