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연극·무용·영화 등 영향 다양한 예술의 꽃 피워

예술의 모든 표현이 인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다루는 문학은 예술의 원류이자 정점이 돼왔다. 고대와 근세 이전 신(神)이 시대를 군림하고 인간의 사상을 지배할 때도 문학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문화 양태의 한 화두가 되고 있는 ‘원소스멀티유즈(OSMU)’ 현상도 사실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그만큼 예술에서 문학의 역사는 깊고 힘은 강하다. 나아가 문학은 다른 장르의 세계를 열어주고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다양한 예술의 꽃을 피웠다. 가령 미술에서 19세기말의 상징주의, 20세기의 입체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운동에는 문인들의 역할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 문학이 21세기 들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시대를 대변하는 사조인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예술 장르간 경계가 약화되고 융합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문학이 단순히 다른 장르에 자양분을 제공하던 ‘소스(source)’ 에 머물지 않고 장르간 교류,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타 장르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문학과 미술, 문학과 음악, 그리고 연극, 무용, 영화 등이 문학과 융합하는 현상은 일반화한 지 오래다. 또한 종래 문학과 다른 장르의 관계가 하나의 모티프를 제공하는 ‘차용적’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의 관계는 장르의 본질적 속성을 공유하는 ‘융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

문학과 다른 장르 간 교류는 특히 미술과 음악에서 두드러진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시 주목을 받게 된 르 클레지오의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 Diego et Frida> 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와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혁명과 예술, 사랑 이야기를 르 클레지오 특유의 시적인 언어로 담아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숨겨진 암호를 풀어낸다는 줄거리의 <다빈치코드>는 국내에서만 2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티프로 화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 소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도 유명세를 탔다.

그밖에 루이지 구아르니에리의 <유대인 신부>, 폴 크리스토퍼의 <렘브란트의 유령>은 화가 램브란트의 그림을 모티프로 했으며, 반 고흐 최후의 2개월을 고흐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마르게리트의 시선으로 소개하는 <반고흐의 마지막 연인>이 있다.

국내에서는 조선 후기 천재 화가 신윤복을 소재로 한 <바람의 화원>이 소설과 드라마에서 대박을 터트렸고. 가야금의 예인 우륵과 그 시대는 김 훈의 소설 <현의 노래>로 부활했고 현재 영화가 촬영 중이다.,

음악가와 클래식 작품도 문학의 주요한 모티프다. 조셉 젤리버베크의 <10번 교향곡>은 베토벤을 비롯해 슈베르트, 구스타프 말러, 드보르작 등의 쟁쟁한 작곡가들이 교향곡 9번을 작곡한 후 사망하였다고 하여 9번 교향곡에 죽음의 저주가 내려졌다는 이야기를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을 소재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람세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쓴 <모차르트> 또한 대표적인 음악 소설이다.

미술가의 생애를 픽션 형태로 재가공한 ‘아트북스’ 시리즈를 기획한 아트북스의 손희경 편집팀장은 “미술에 대한 대중의 높아진 관심과 미술 지식을 미술사 서적 대신 읽기 쉬운 소설로 만나고 싶어 하는 젊은 독자들의 경향, 상상의 여지가 많고 드라마틱한 화가들의 생애 등이 결합돼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과 다른 장르 간 융합은 ‘현장’에서 그 단층을 넓혀가기도 한다. 지난달 김기택 시인과 염성순 화가가 이상과 서정주의 시를 소재로 개최한 ‘시와 몸과 그림’전은 그러한 예다.

1, 2-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3, 4- 베토벤

김기택 시인은 “문학과 미술은 표현 양식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대상에 대한 ‘느낌(몸)’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고 문학과 미술의 소통을 통해 독자,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일반의 시화전이 문학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는 형태였다면 이들의 작업은 작가의 개성적인 ‘눈’으로 이질적인 장르를 대함으로써 이에서 파생되는 ‘우연성’이 독자, 관객과의 교감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고 풀이했다.

이는 동시에 문학과 미술의 경계를 무의마게 한다는 게 김 시인의 설명이다. 염성순 시인도 “예술통합이 각광받는 시대에 문학과 미술 뿐 아니라 다른 장르간의 경계 허물기도 환영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0월 17일 숙명여대에서는 오세영, 허영자, 이건청 시인 등 중견 작가들이 거장 조각가 문신의 예술을 소재로 한 ‘시인의 밤’ 행사를 가져 문학과 미술의 색다른 만남을 가졌다.

이날 탁계석 음악평론가는 “각 예술 장르가 담을 쌓고 사는 게 오늘의 우리 예술계의 현실”이라며 “21세기 예술의 융합시대에 장르간 소통을 통해 그 장막(경계)을 거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림은 말없는 시, 시는 말하는 그림’이라고 한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은 문학과 미술의 본질을 꿰뚫은 혜안으로 오늘날 예술 장르의 다원화와 융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모든 예술의 출발과 귀결이 근본적으로 ‘인간’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시공을 초월해 원초적인 힘을 갖고 있다. 동시에 예술이 경계를 넘어 융합해 가는 시대에 다른 장르에 대한 ‘배려’의 미덕을 요구받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