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핸디캡 불구 변화·희망 원하는 폭넓은 계층 열망 반영

오바마가 이겼다. 흑인이 미국대통령이 되었다. 전 세계가 환호했다. 모두가 울고 웃었다.

오바마의 승리는 단순히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새 미국대통령이 단지 흑인이며 전쟁을 반대하는 민주당원이기 때문이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과의 당내 경선부터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의 경합 후 당선에 이르기까지 그가 보여준 정치신념은 물질적·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전 세계의 사회적 판도를 바꾸는 동력이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공화당 정부 하에서 미국은 불필요한 전쟁을 이어가며 국가간, 종교간 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왔다. 국내에서는 흑인과 히스패닉, 유태인 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폭력적 억압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만이 상류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미국에서 비(非) WASP로서 대통령이 된 건 아일랜드계인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뿐이다. 오바마가 제2의 케네디라는 별명을 가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오바마'라는 용광로, 국제적 화합 기대


오바마는 단순히 ‘흑인’으로 호명되기에는 복잡한 가족 이력을 지녔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코카서스인(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어머니를 따라 6살까지 하와이에 살던 오바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가게 된다.

이때 인도네시아인 이복동생도 태어난다. 오바마 가족은 이후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고 다시 오바마는 컬럼비아대로 진학을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이만 하면 오바마의 혈통뿐 아니라 성장과정 역시 전 지구적이라고 할 만하다. 아메리카와 태평양, 아시아를 아우르는 그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작은 미국’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돼 있는 미국의 특성을 가리켜 ‘멜팅 팟(Melting Pot, 용광로)’이라고 일컫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점 때문에 그의 가족을 가리켜 ‘미니 UN’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흑인의 피가 한 방울만 섞였어도 흑인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회의 암묵적인 ‘한 방울 규칙 One-Drop Rule’은 설령 그의 외모가 백인에 가까웠더라도 그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했을 것이다. 또 실제로 미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예가 적지 않다.

민주당 후보 시절의 오바마는 자신의 이러한 이력을 말하는데 신중했다. 가운데 이름인 ‘후세인’과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의 성장과정이 그를 곤경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서전 <버락 오바마 담대한 희망> ‘국경 너머의 세계’편에서 인도네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여전히 인도네시아와 아시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피상적인 문화적 상대주의가 아닌 체험에서 우러나온 타 문화에의 관심과 포용은 오바마의 국제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또 이것은 그가 첫 번째 덕목으로 꼽는 인종의 벽 허물기와 화합의 장 마련에 대해 풍부한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을 기대케 한다.

■ 변화와 희망에 대한 갈망의 실현

이번 대선의 오바마의 압도적인 승리는 기존의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관습적으로 양분되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다. 상류층과 보수적 백인 남성은 공화당을, 여성과 노동자 계층, 인종적·성적 소수자들은 민주당을 지지했던 기존의 양상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세계적 경기 침체와 소모적인 분쟁의 반복은 선거인단으로 하여금 부시 정부로 대변되는 공화당 정치의 종말을 원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역으로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단합을 불러일으켰다. 흑인, 유태계, 이태리계, 히스패닉계 인사들 외에도 많은 백인 기득권층마저 ‘흑인’ 오바마의 편에 서게 했다.

히스패닉 스타인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와 존 레귀자모 등은 예비선거에서 히스패닉계 표심을 얻는 데 애를 먹던 오바마를 도왔다. 이태리계인 로버트 드 니로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처음으로 연단에 올라 지원 연설까지 했다. 윌 스미스와 홀 베리 등 흑인스타들의 지지는 당연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 한 명인 윈프리는 대권경쟁 초기인 지난해 5월 같은 여성인 힐러리 대신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초선 상원의원인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윈프리는 자신의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직접 지원 연설에 나서며 ‘흑인대통령’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여기에 톰 행크스, 존 본 조비, 스칼렛 요한슨 등 백인 대중문화 스타들과 함께 에릭 슈미트 구글 CEO,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 등 재계의 인사들까지 공개적으로 오바마를 돕고 나섰다.

이 같은 지지자들의 선택은 불가피했다. ‘흑인’이라는 핸디캡은 변화와 희망을 갈구하는 대다수 미국인의 선택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백인사회가 만들어놓은 현 상황에 대한 냉정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유세 과정에서 누누이 인종의 벽을 허물고 화합의 장을 만들자고 강조해왔다. 그는 유세 과정에서 “진보의 미국도, 보수의 미국도,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의 미국도, 아시아계의 미국도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강조해왔다. ‘분열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Yes, We can.”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이끈 구호다. 너와 나를 구분짓는 모든 경계를 허물고 ‘우리’로서 뭉치고 나아가자는 그의 구호는 전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