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지킬앤하이드' '비사발'의 성공아트- 탄탄한 대본·적재적소 캐스팅·명품 코미디의 삼박자지킬앤하이드- 조승우 연기력·류정환 가창력 시너지 인기폭발비사발- 영국 등 해외서 인정 외국인 겨냥 공연 상품자리 매김

얼마 전 발표된 ‘문화향수 실태조사’에서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문화생활은 역시 영화 관람으로 나타났다. 2위는 의외로 연극·뮤지컬이 차지하며 미술 전시와 콘서트 관람을 제쳤다. 하지만 순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의 61.5%의 점유율에 비해 연극·뮤지컬은 11%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도 10여 년 전의 20.2%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이기 때문이다. 또 11%를 차지하고 있는 공연의 대부분이 국내 창작 작품이 아닌 라이센스 작품인 경우가 많다.

특히 대형 뮤지컬들의 위력은 대단하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이왕 문화생활을 할 바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해외 유명 공연작을 선택하는 것이다. 때문에 대체로 작거나 새로 만들어진 국내 창작 작품은 점점 더 살아남기 어려운 현실이다.

공연시장을 주도한다는 뮤지컬의 상황이 이렇다면 다른 비주류 공연 장르들은 두말할 나위 없다.

힙합이나 뮤지컬 등 대중적 형식과 결합하지 않은 순수 춤 공연의 경우 일부 동호인들의 관람을 제외하면 객석에서 일반관객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춤 공연 역시 세계적인 발레단이나 강수진과 같은 스타 무용수의 공연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이른바 ‘명품’으로 인식된 공연에만 관객들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 공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인기를 끌며 오케스트라 공연에도 이목이 ‘잠깐’ 모아졌지만, 극중 강마에의 말처럼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서민에게는 ‘귀족의 예술’로 다가오기에 실질적인 변화는 적다. 다른 장르보다 고가(高價)라는 점도 관객층을 넓히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호황’이라는 단어와 태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연극계의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연극협회는 사무국장이 협회 공금을 가지고 달아나는 황당한 사건을 겪기도 했다.

제작비 마련이 수월하지 않은 연극의 특성상, 협회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부지원금이 없으면 제작 지원을 받는 작품들이 공연을 못할 수도 있어 큰 난관에 봉착해 있는 실정이다.

■ 실력 겸비한 스타 캐스팅 +α

전문가들은 불황일수록 공연의 기본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무조건 지명도있는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성도 높은 관객층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충실히 지키기라도 하듯, 침체기에도 관객을 꾸준히 모으고 있는 작품들엔 어김없이 실력파 출연진들이 있다.

지난 달 막을 올린 <아트>는 2004년 대학로 일대에 일대 광풍을 일으킨 ‘대박’ 연극이다. 이 작품은 학전블루 소극장 공연 이래 총 9번의 공연팀이 최고 객석점유율 103%와 총 입장관객 12만 명을 모으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아트>의 힘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에서 나온다. 원조 <아트> 팀으로 수 차례 무대에 섰던 베테랑 배우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 정보석, 이남희, 정원중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스타를 내세워 흥행을 노리는 대학로의 트렌드에 일갈하듯 연극 연기의 참맛을 보여주고 있다.

<아트>의 프로듀서를 맡은 악어컴퍼니의 최보규 제작이사는 단순한 스타마케팅이 아니라 탄탄한 대본과 적재적소의 캐스팅, 고급스러운 명품 코미디라는 삼박자가 맞은 데 <아트>의 성공 요인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라이센스 공연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번안한 것이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공연 때마다 대본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명품 배우들이 브라운관에서 비춰지는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줌으로 신선함을 준 것이 관객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년 4개월 만에 돌아온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초연 이후 재공연될 때마다 한국 뮤지컬의 기록들을 경신해온 뮤지컬의 베스트셀러다. 매 공연마다 1일 티켓 판매량 신기록을 수립하며 얻어낸 98%라는 경이적인 객석점유율은 2001년의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또 한 번 뮤지컬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킬앤하이드>의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조승우, 류정한이라는 캐스팅의 절묘함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성과 조승우의 탄탄한 연기력, 류정한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관객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공연 이상으로 유명해진 음악들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공연을 보기 전 이미 음반과 CF 배경 음악 등을 통해 익숙해진 ‘This is the moment’, ‘Once upon a dream’과 같은 곡들은 대중들을 극장으로 이끄는 동력이 된다.

현장에서 배우의 육성으로 다시 듣는 명곡들은 디지털 음악이 구현할 수 없는 울림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의 관계자는 “어느 한 곡 빼놓을 것 없이 작품의 서사와 앙상블을 이룬 연출력 또한 <지킬앤하이드>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임에도 2008 버전이 또 다시 기대를 모으는 건 원조 스타들과 차세대 대형 신인들의 대결 구도를 만든 탓이다. 류정한, 김선영, 소냐, 김소현 등 선배들의 관록과 김우형, 홍광호, 임혜영, 김수정 등 새로 가세한 신예들의 패기가 격돌하는 새로운 <지킬앤하이드>는 여전히 뮤지컬 팬들과 대중을 함께 극장으로 유혹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연극 '아트'
댄스극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nd Story'(아래)

■ 시대 흐름 읽으며 관객층 넓혀야

이미 세계적 한류상품으로 부상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이하 <비사발>)에는 스타가 없다. 대신 공연이 영국,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공연상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최근 한 차례 내홍을 거친 <비사발>은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nd Story>로 다시 공연 중이다. 원래의 멤버였던 고릴라 크루와 제작사측이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이 생겨 제작사측은 저작권 등록을 한 뒤 출연팀을 바꿨다.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은 그만큼 공연의 상업적 가치를 입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비사발>의 홍보마케팅을 하고 있는 SJ비보이즈의 유윤미 대리는 <비사발>의 흥행에는 단순한 ‘비보이 공연’이 아닌 ‘공연으로서의 비보이’에 초점을 맞춘 데 있다고 해석했다.

“<비사발> 이후 ‘비보이’를 소재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10여 편의 유사 공연이 생겨났지만 곧 하나 둘 무대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비사발>처럼 비보이와 다른 장르와의 연관성, 연출구성, 표현형식 등 충분한 준비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공연전문가들은 비보이 공연의 성공 배경으로 장르 특성상 언어의 장벽을 쉽게 뛰어넘은 점을 들며, 문화상품으로서도 서양 관객들에게 익숙한 소재에 동양적인 정서를 덧입힌 시도가 주효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다른 공연들과 달리 공연 중 사진촬영을 허용하여 관객들이 화려한 동작이나 감동적인 장면의 사진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게 유도하면서 자연스레 입소문을 내게 한 홍보 방식도 유효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상기한 점들 외에도 공연계 불황 극복을 위한 과제들은 남아 있다. 고가의 티켓과 특정 계층에 편중된 마케팅, 공연예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 등 구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최근엔 환율 파동까지 겹쳐 클래식 음악 공연의 경우 일정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도 허다해졌다. 때문에 불황기에도 성공하고 있는 작품들의 공통점은 이러한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검증된 ‘명품’이라는 것이다. 관객이 공연상품을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문화적 인식도, 경제적 여유도 갖추어지지 못한 현재의 상황에서는 당분간 ‘명품’들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공연문화를 대하는 제작자와 관객 모두의 ‘명품적 인식’이 공연계 불황의 궁극적인 타개책이 될 것임은 자명해보인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