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된 공연예술, 구조 개선·국가지원 필요"대형 뮤지컬도 목표 미달 예상… 티켓 가격인하 등 추진해야

공연계 불황의 문제는 누구보다 공연기획자와 제작사들이 직면한 문제다.

관객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길 때를 기다리면 되지만, 관객의 취향을 읽어내 공연문화를 선도해야 하는 기획/제작사들은 침체기에도 끊임없이 틈새시장을 찾고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이중의 불황을 겪고 있는 최근 공연계의 상황은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들의 수입을 총괄하고 클래식, 재즈 등 음악 공연도 기획하며 국내 공연문화를 선도해온 김향란 뮤지컬파크 대표에게 현 공연계의 문제와 대안을 들어보았다.

- 최근 공연계의 상황은 기획자들에게 타격이 더 클 것 같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다들 꼼짝말고 엎드려 있으라고 충고하고 있다. 연말을 겨냥한 일부 공연들만 티켓이 팔리고 있고 나머지 공연들은 모두 힘든 상황이다. 특히 환율 상승으로 해외 뮤지션 초청 위주의 클래식 공연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고, 공연취소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대형 뮤지컬 등도 당초 목표달성을 밑돌 예정인데다가 환율 변동으로 인한 로열티(royalty) 송금 부담까지 떠안아 적자폭이 커지는 분위기다.

- 불황이라고 해도 라이센스 공연(서커스 포함)은 인기다

현재 판매순위 상위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은 높은 인지도, 작품성, 관객의 입맛에 맞는 캐스팅, 연말 특수로 티켓판매가 양호한 편이다. 태양의 서커스 <알레그리아>는 명품공연을 선호하는 상류층들의 연말 선물용으로 적격인 공연이고, <캣츠> 또한 세계적인 인지도와 작품성을 내세워 연말 특수를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공연도 비수기 때의 성적을 합해 평균치를 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 한창 주가를 올리던 창작뮤지컬도 근래 빈 자리가 유난히 많아 보인다

R석이 12만 원을 넘는 고가 명품공연의 경우 30~50대 초반 상류층이 소비를 주도하는 반면, 창작뮤지컬들은 젊은 뮤지컬 마니아들이 주도한다. 따라서 경기침체에 따라 이들의 주머니가 얇아지면 이들이 주요 타겟이었던 공연들은 당연히 타격을 입는다.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볼 만한 공연으로 꼽히는 소위 ‘Big Name’ 뮤지컬들이 모두 들어온 상태에서 매년 이들 공연이 리바이벌되는 형국이다. 따라서 누가 ‘핫 시즌’ 대관을 성공적으로 하느냐가 흥행의 관건이 되고 있다.

- 클래식, 재즈, 오페라 등 음악 공연의 현황은 어떤가

클래식과 재즈 시장은 거의가 해외 유명 뮤지션의 내한공연이 기획의 핵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경기침체에 환율상승으로 상당수의 공연들이 취소되거나 아예 기획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내 생각에는 차제에 클래식 및 재즈 공연 등의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뮤지컬도 마찬가지지만 한국 프로듀서들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훨씬 더 높은 로열티와 연주료를 주고 공연을 수입하고 있다.

이건 프로듀서간 경쟁 때문인데 이걸 악용하여 해외 매니지먼트사나 저작권자들, 저작권 대행 에이전트들이 턱없이 높은 로열티와 연주료를 챙기고 있다. 따라서 협상과정에서 한국시장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하도록 설득하고 시장규모에 맞는 적정선의 연주료와 국제관행에 준하는 로열티를 받도록 적극적인 협상을 벌일 필요가 있다.

클래식의 경우 지방공연장들이 늘어남에 따라 서울 외곽에서의 공연이 동시에 기획되는데 서울 기획사들이 지방기획사에 요구하는 개런티도 너무 과중한 게 현실이다. 지방의 시장규모는 서울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데 서울과 맞먹는 연주료를 요구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 공연계 불황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

우선 티켓가격 인하를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대부분의 뮤지컬들의 최고가는 평균 110달러 선으로 달러가 오르기 이전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라이센스 뮤지컬 티켓가격보다 싸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티켓가격을 인하하는 문제는 몇 가지 구조적이고 원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풀리기 어렵다. 우선 제작비 인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제작비를 낮추려면 최우선적으로 로열티 요율을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10만원짜리 티켓을 사면 최소 12,000원 이상이 로열티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원저작권자나 저작권대행 에이전트 또는 해외프로듀서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대관료를 구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봐야 하는데 공연장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요원한 이야기다. 또 일부 인기배우들의 개런티가 지나치게 높은 것, 일부 인기 제작인력들의 인건비가 지나치게 높은 것, 그리고 티켓가격이 비싸야만 좋은 공연일 거라는 관객들의 소비심리 등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는 충성도 높은 다양한 관객층을 길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예술 및 예능교육을 강화하고 전반적인 문화에 대한 소양을 높일 수 있는 원천적이고 조직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높은 교육열과 교육수준에 비하면 문화를 향유하고 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수지타산이 맞는 투자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그 많은 인문계 학생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그 답의 상당부분이 이런 예술, 예능 분야에서 찾아지지 않을까 싶다.

- 뮤지컬파크에서는 이 같은 상황의 대처로 어떻게 일을 추진하고 있는가

우선 해외수입 또는 해외뮤지션 초청 공연의 기획은 아예 없애거나 내년 하반기로 미루고 있다. 클라이언트사에도 수입뮤지컬은 아예 추천을 안 하고 있다.

기 추진해오던 라이센스 뮤지컬 <걸스 나잇 Girl's Night>도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로컬극장에서 트라이아웃 형태의 공연을 먼저 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대신 창작뮤지컬을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투자제안서를 들이밀어봐야 서로 힘만 빠지기 때문이다.

- 공연예술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장기적으로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공연예술은 삶의 질과 관계된 일이자 그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한다. 한 나라의 문화의 저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할 명분이 충분하다.

따라서 대관이나 부가세 등 공연기획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에서 국가가 과감하게 간접지원을 해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주면 좋겠다. 공연기획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가 대관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공연장마저도 대관료가 너무 비싸다.

대관료를 낮추는 것은 공연계를 간접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데 정부가 그걸 등한시하고 있다. 충무아트홀을 보면 낮은 대관료가 공연계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 지를 단번에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티켓판매금에 대한 부가세 면제를 통해 공연업계를 간접지원해주시면 힘이 솟을 것 같다.

■ 김향란 대표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영상사업단 해외공연 총괄과장, 서울 예술기획 기획팀장, 제미로 전속프로듀서를 거쳐 현재 뮤지컬파크 대표를 맡고 있다. 뮤지컬 캣츠(CATS) 총괄 홍보를 비롯해, 애니, 스텀프(STOMP), 탭덕스(Tap Dogs), 피노키오,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의 수입총괄 프로듀서를 맡아왔다. 또 조수미, 신영옥, 홍혜경, 김원정의 공연 및 음반 홍보와 함께 그레이스 켈리, 론 브랜튼 재즈그룹,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한국 매니지먼트를 맡기도 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