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동성애영화·드라마·연예인 커밍아웃… 소재주의 극복은 과제

2002년 한 여름, 강남의 한 건물 앞에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해체를 주장하는 동성애자들의 거리집회에 간 적이 있었다. 역시 동성애를 상징하는 예의 여섯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참석자들은 동성애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인터넷검열에 항의해 하얀 국화꽃을 던졌다.

엷은 목소리, 피할 수 없는 감정의 표현들, 자기애의 발화, 상식에 호소하는 논리적 주장, 그리고 원초적 검열에 대한 분노와 구호, 이날의 장례식은 검열과 자기검열로부터 견디기 위한 성적 소수자들의 이제 막 시작된 저항의 예식이었다.

나는 시민단체 대표 자격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사무실로 들어가 항의 서한을 전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들었다. “밖에 동성애자들이 몰려왔다는데, 요즘 세상 좋아졌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싸늘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성애공포증은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아마도 대중문화는 동성애공포증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텍스트가 아닐까 싶다.

최근 개봉된 한국영화와 안방극장을 찾아가는 TV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한국적 퀴어 영화로 평가받는 <로드무비>, 공길과 연산군의 동성애를 그려 12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의 남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 영화 <후회하지 않아> 동성애 코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규동 감독의 최신작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그리고 올 연말에 개봉될 조인성, 주진모 주연의 <쌍화점>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우리에게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영화에 비해 보수적인 매체라 할 수 있는 TV 드라마도 동성애는 익숙한 소재가 된 지 오래다.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는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다기보다는 동성애를 암시하거나 가벼운 스타일로 동성애를 간접적으로 다룬다.

작년 최고의 트렌디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커피프린스 1호점>은 직접적으로 동성애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적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동성애의 문제를 암시하였다.

또한 최근 방영 중인 <바람의 화원> 역시 신윤복을 여성캐릭터로 설정하여 성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KBS 월화드라마인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 연출가로 나오는 주준영(송혜교 분)이 특별극으로 다루려는 소재가 바로 동성애이다.

영화 TV 드라마만이 아니라 만화, 팬픽, 광고 등 대중문화에서 동성애 문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왜 대중문화는 동성애 코드를 선호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이 일반인들의 동성애공포증의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할까?

1- 영화 '쌍화점'
2-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무엇보다도 대중문화에서 동성애 코드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동성애 인권 문화운동의 결실을 반영한다. 한국사회의 소수자 문화로서 동성애 문화를 지속적으로 사회에 알려온 동성애 인권 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그동안 금기의 감옥에 갇혀있던 동성애 코드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또한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홍석천과 트랜스젠더로서 활발한 연예활동을 한 하리수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일반 시청자들이나 영화 관객들에게 동성애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문화매체에서 다뤄진 동성애에 대한 흥미 위주의 소재주의나 일부 연예인들에 의존하는 식의 해소 방법들은 동성애 문화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을 낳을 수 있다. 일종의 동성애 ‘쇼케이스’로 미디어에 비친 트렌스젠더 하리수는 어떤 점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이해와 현실의 간극을 더 넓혀 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광고와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하리수에 대해서 친밀감을 느끼고 동성애적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려하지만, 그러한 편견의 불식은 오직 ‘하리수적’ 스타일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미화된 동성애는 동성애자들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을 바꿔나가는 동반자로 나서는 과정을 생략해버린다.

동성애 코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순히 고갈된 소재를 메우기 편리한 선택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한다면 실제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성애자들의 반응들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영화관객들은 얼마나 동성애의 문제들을 현실에서 직시할 수 있을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본 시청자들이 게이문화에 대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가지다 보면 대중문화가 동성애공포증을 해소하기 위한 일시적인 해독제에 불과할 것인지 모르겠다.

이성애자들에 의한 동성애공포증은 결국 동성애자의 자기공포증을 낳는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사회 환경은 그들에게 일상의 공포를 가져다준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의 격리, 벗으로부터의 소외, 노동과 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공포는 꿈속에서의 공포가 아니라 생존의 공포이다.

동성애는 사적인 영역, 개인의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사적일 수 없고 개인적일 수 없다. 그래서 공적인 영역에서 동성애는 존재하지만, 동성애자는 존재하지 않거나 실종되는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동성애적 존재는 예명으로, 모자이크 처리로, 얼굴 없는 목소리로 슬픈 흔적으로 표상되거나, 아니면 평생 표상되지 않은 채로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다만 무의식의 언저리에만 ‘외상’으로 발견될지도 모른다.

이른바 한국에서 ‘커밍아웃’은 불편한 자기 삶을 편하게 만들고 싶은 단순한 소망에서 선언되기 보다는 공공연한 동성애자 운동을 위한 한 인간의 거룩한 매뉴페스토 정도로 인지될 뿐이다. ‘커밍아웃’의 정치학은 그래서 아직은 외롭고 슬픈 자화상을 그려내게 만든다.

대중문화가 동성애공포증을 넘어서기 위한 훌륭한 지침서가 되기 위해서는 동성애 코드에 대한 소재주의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퀴어 영화나 동성애 드라마는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는 매체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동성애적 매체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극작가 장 쥬네(Jean Jenet)는 스페인에서 불량배 일시검거에서 걸려 그의 소지품 중 바셀린 튜브를 경찰에 압수당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일기에 그 당시 경찰의 모욕적인 시선의 폭력을 적어놓았다.

동성애자임을 알려주는 바셀린튜브가 소지품에서 발견된 뒤 주네는 스페인 경찰조사계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경찰들은 심문과정에서 항상 그를 빈정거리는 말투로 조롱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일기장에 더럽고 가엾은 바셀린 튜브를 ‘자신을 모욕으로부터 건져줄 비밀스런 은총의 지표’로 적었다. 동성애자들의 솔직한 성애, 그들의 진지한 삶의 애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퀴어 오디세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동시대 문화매체가 담아내기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angyeun6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