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물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 범주' 토론의 장 마련 아쉬워

당초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가 신윤복의 성 정체성을 비튼 것에서 비롯한‘팩션(faction)’의 역사 왜곡 논란이 ‘색깔론’의 개입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아쉬움을 사고 있다. 특히, 문단에서 언젠가는 논의해야 할 역사물의 ‘상상력의 허용’의 범주에 대한 토론의 호기를 놓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엉뚱한 '색깔론' 비화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를 비롯한 ‘팩션(faction)’에서 신윤복과 김홍도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에 왜곡 문제에 대해 안휘준 문화재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미술사가들의 문제제기와 작가의 토론이 시작된 시점에 군사평론가이자 보수논객인 지만원 씨의 발언이 논의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놨다.

지 씨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인터넷에 ‘북한의 공작과 문근영 케이스’ 등의 글을 올려 ‘신윤복 띄우기는 좌익세력의 국가전복 수단’이라고 하는 등 ‘색깔론’을 펼쳐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진중권 씨 등 진보논객이 가세하면서 역사왜곡과 문학적 상상력 허용의 범주에 관한 논의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언론에서의 논의는 지 씨가 파티잔(빨치산)의 손녀라고 주장한 배우 문근영(SBS드라마 <바람의 화원> 신윤복 분)과 <바람의 화원>, <미인도> 등을 만든 제작진에 대한 색깔 논쟁으로 흘렀다.

이를 두고 홍선표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언론에 이름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가 묻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 '작가 정신'과 '치밀한 상상' 아쉬움 남아

역사소설이나‘팩션(faction)’작가의 ‘상상력의 범주’와 ‘작가적 양심’에 대한 문단, 학계의 사회적 토론의 장을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장 크다.

프랑스 문학에 정통한 이세욱 번역가에 따르면 움베르토 에코와 댄 브라운은 이런 문제의 극단적인 대조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를 만들며 루브르 박물관 앞 피라미드의 유리창 숫자가 666개라고 쓰는 등 사실(fact)을 대담하게 무시하며 악마를 숭배하는 성전기사단과 연관시키려 했다 루브르 박물관 등의 반박에 부딪혔다.

반면, 움베르토 에코는 <푸코의 진자>를 쓰며 고대부터 내려오는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에서부터 현대에 이르는 모든 성전기사단 관련 저서를 연구한 바탕 위에서 허구의 세계를 구축했다.

이 번역가는 “둘 다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독자 입장에서 댄 브라운의 허술한 거짓말을 알았을 때 배신감을 느끼기가 쉽다”며 “움베르토 에코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 웅대함과 정교한 설계에 압도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세욱 번역가는 “엄청난 고증과정을 거친 뒤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 연구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력으로만 작품을 채우는 것은 안일한 태도”라며 “특별한 문헌연구나 고증 위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번역가는 이어 “이는 재능보다는 태도의 문제”라며 “역사소설을 만들 때도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하는 위대한 작가들의 정신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번역가는 “같은 거짓말이라도 정교하고 치밀한 거짓말이라야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윤복의 성 정체성을 비틀었을 뿐 아니라 김홍도의 성폭행, 살인까지 설정한 한수련 원작 <미인도>는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