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매개공간 차별화·국제화가 살길"신진작가 발굴 주력서 국제 네트워크 구축으로 대안성 변화

“대안공간이 따르는 대안성은 곧 미래 지향적인 비주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분이 꼭 양적인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주류 안에서도 미래지향적인 주류와 과거지향적인 주류가 있을 수 있고, 비주류 안에서도 순기능을 하는 비주류와 역기능의 비주류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문화의 다양성 안에서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며 앞날을 예측할 수 있는 즉, 지금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모순점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대안공간이 추구하는 대안성인 셈이죠.”

비영리 전시공간으로서 우리나라 미술계 대안공간의 초석을 일구었다고 할 수 있는 ‘대안공간 루프(Loop)’의 대표이자 ‘대안공간 네트워크’의 사무국장 서진석 대표는 대안공간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하며 대안공간이 추구하는 대안성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인 트렌드이자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루프가 문을 연 1999년부터 10년 정도가 흐른 지금까지 표방해 온 대안성의 성격은 현저히 차이가 난다고 강조하는 서진석 대표는 “초반에는 문화 예술계의 향유층이 거의 부재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취약했고, 시장 자체도 비활성화 돼있었다”며 “90년대는 지협적인 문화 흐름 속에서 현대 미술의 대중화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신진 작가들의 생존과 지원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제 더 이상 젊은 작가 발굴이라는 모토가 대안공간에서 주력해야 할 메인 대안성은 아니다”면서 “대안공간 ‘풀’이 시도하는 미술 공간의 확장이나 ‘사루비아’나 ‘루프’처럼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활동 등이 21세기를 이끄는 대안 공간들이 추구하는 대안성이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서진석 대표는 대안공간이 갖추어야 할 조건에 대해서는 ‘실험성’과 ‘비영리성’, ‘독립성’ 3가지 요소를 꼽았다.

“대안공간은 정치권력, 자본권력, 미술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려움이 많아요. 실험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대중과 원활한 소통을 이어 나가느냐가 대안공간의 새로운 과제이기도 하죠. 물론 보통의 대중을 아우르기 보다는 일부 마니아층을 타깃으로 미래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새로운 문화 향유층을 개발하는 것이 곧 대안공간의 실험성이자 독립성인 셈입니다.”

현재 문화의 다양성 안에서 대중과 교류하며 대중성을 지향하는 공간들은 대안공간이 아니더라도 충분하기 때문에 대안공간의 경우는 미래의 대중을 고려한 향유층의 확산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대안공간의 이 같은 실험적이고 독립적이며 비영리적인 특징은 한편으론 재정적인 한계를 가져오기도 한다.

“독립성, 실험성, 비영리성이 전제가 되는 대안공간은 타 매개공간에 비해 운영 시스템을 갖추기가 힘들어요. 실험성 자체는 일반 대중과의 거리감을 형성하고 또 독립성이나 비영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기업의 후원을 끌어내기도 만만찮은 거죠. 결국 대안공간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국내 대안공간은 2000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지원금액은 1년에 4,000만원 가량으로 루프는 전체 지원금액의 20~30%를 받고있다. 20개가 넘는 대안 공간들 가운데 50% 이상 정부지원이 이뤄지는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아직까지도 대안공간의 적절한 재정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아 ‘일반 대중을 상대로 멤버십 제도를 도입하자’거나 ‘대안공간 후원회를 결성해 지원을 도모하자’ 등의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이처럼 대안공간의 운영에 있어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심각한 가운데 서진석 대표는 대안공간뿐만 아니라 모든 미술 매개공간이 ‘차별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문화 향유에 대한 욕구가 극대화되면서 수용층이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작가들은 물론 미술관, 화랑, 박물관, 이 외의 공간들까지 넘쳐 나며 버블현상을 일으키기 시작했죠. 최근에는 대안공간도 20곳이 넘을 정도니까요. 이 같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기만의 차별성을 무기로 생존게임을 해나가야 하는 셈이죠. 차별성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국내 미술계의 비대화를 우려하며 서진석 대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루프만의 전략에 대해 가장 먼저 ‘국제교류 강화’를 언급했다. 작가들뿐만 아니라 매개자(큐레이터)와 매개 공간들도 활발한 국제교류를 통해 미술계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프는 한국 미술계 내부의 대안성보다도 세계 미술계 안에서 특히 아시아 미술계 안에서의 대안성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젊은 작가 발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해외 작가들이 한국 미술계로 진출하고자 할 때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세계 무대로 뻗어나가는 국내 작가들에게도 발판이 돼주는 것이 루프가 추구하는 생존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한해를 마무리하며 루프는 현재 작가 지원전의 일환으로 19세기 서정적인 회화의 흐름을 연상케 하는 작가 샌정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계속해서 내년에는 터키 미술전을 시작으로 일본 미술전과 영국 미술전 등 전세계 미술 소통의 창구로서 국제교류 프로젝트 전시를 준비 중이다.

대안공간만이 추구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대중과의 진정한 소통을 이끌어 나가는 루프, 그리고 그런 루프를 이끌어 나가는 서진석 대표에게서 국내 미술계가 전세계의 문화 허브로 거듭하기를 기대해본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