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불황극복 마인드 컨트롤]꾸준한 운동·자기긍정의 대화로 심신 안정 찾고 '역발상 대응'도 도움

# 식품사업을 하는 오정숙(51) 씨는 하루하루 물가 오르는 게 두렵다. 원재료 가격과 전기료, 가스비 등 비용은 꾸준히 느는 데 반해 상품가격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는 값싼 중국산 식품과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팍팍한 경제현실도 견디기 힘들지만, ‘앞으로 불황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겪었던 고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IMF때 공장이 부도날 뻔했거든요. 그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캄캄한데, 다들 지금이 그때보다 더 심하다는 말을 하죠. 자금 순환이 안 되니까.”

# 초등학교 교사인 구봉주(27) 씨는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안정된 직장에 고정 수입이 있지만, 물가가 올라 생활비가 10~20% 늘었기 때문이다. 구 씨는 “선생님들끼리 커피 값 대신 내주는 것도 부담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엔화 폭등으로 이번 겨울방학에 계획한 일본 여행도 포기했다.

“5~6만 원짜리 화장품을 더 저렴한 걸로 바꾼다든지, 헬스클럽을 잠깐 쉰다든지 자기계발에 투자하던 걸 줄이고 있어요. 요즘엔 출퇴근할 때도 웬만해서는 버스나 지하철 타고 다녀요.”

오정숙 씨와 구봉주 씨의 사례처럼 최근 심각한 불황에 심리적 불안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환위기를 몸소 겪은 세대는 당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강한 충격으로 발생한 정신적 장애)로 인해서, 가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오늘의 젊은 세대는 생소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 불안의 1순위는 경제

외환위기 이후 10년. 한국인이 불안을 느끼는 첫째 원인은 ‘경제’다. 2006년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홍영오 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불안에 관한 연구>에서 보면, 한국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42.8%가 ‘경제적 불안’을 꼽았다. 정치 불안 11.2%, 전쟁 위협에 대한 불안 1.9%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원하는 한국의 모습’도 38.1%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를 꼽아 사회정의가 확립된 사회(10.4%), 교육환경이 좋은 사회(3.6%)를 훨씬 앞질렀다.

올 하반기에는 세계적인 경제침체와 더불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경제적 불안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다.

세계경영연구원이 지난달 26일 국내 최고경영자 11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45%는 ‘불황으로 수면시간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경기불황으로 직원에게 화를 내거나 신경질을 내는 빈도도 29% 늘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는 예전에 비해 83% 늘어났다고 답했다.

기업을 경영하는 CEO뿐만이 아니다. 최근 취업포털사이트 알바몬이 대학생 1,1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34.8%도 ‘불황 때문에 졸업 전 미리 취업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대답했다.

■ 미국과는 달라

불황기에는 왜 불안과 우울증이 많아질까? 장근영 심리학 박사는 “불황을 뜻하는 디프레션(depression)은 우울증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불황은 전반적인 환경의 변화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것. 이 경우 무기력증이 나타나게 되는데 무기력이 만성화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장 박사는 “특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실직하거나 경제적인 곤란에 빠지거나 지출을 줄이는 것을 보면 자기 자신도 위축된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자신의 감정이나 동기가 강화되는 것을 ‘사회적 촉진현상’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불황에 대한 대중의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상호 신뢰의 붕괴’”라고 덧붙였다.

수 년간 호황 끝에 불황을 맞은 미국 국민의 심리 상태와 지속적인 불황 속에 더 심각한 불황이 야기된 우리나라 국민들의 심리 상태는 다르다. 미국은 버블 호황을 누리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생긴 ‘대비효과’ 때문에 심리적 충격이 큰 데 반해 우리나라는 십여 년간 지속적으로 불황이란 소리를 들어 왔기 때문에 이런 심리적 대비효과는 없다고.

문제는 우리는 늘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소리를 들어왔기 때문에 더 나빠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심각한 좌절감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외환위기인 98년 무렵에는 뒷목이 뻐근한 증세, 신경성 소화장애, 가슴 두근거림, 불면증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예년에 비해 30% 늘었고, 이를 두고 ‘IMF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나친 불안감이 적절한 판단이나 반응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불황기에 자주 나타나는 ‘터널 비전 현상’은 평소에는 차분하게 판단하던 것을 불안감과 스트레스의 영향 때문에 단 한두 가지만 살펴보고 성급하게 판단할 때를 일컫는 말이다.

마치 터널에 들어선 것처럼 시야가 좁아진다고 해서 터널 비전 현상이라고 부른다. 장 박사는 “지금 불황은 앞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기적인 상황이다. 벌써 터널 비전에 빠지면 성급한 판단으로 더 불리한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극심한 내수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10일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의류 코너가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불황의 시대 마인드 컨트롤 방법

불안의 시대이지만, 해법은 있다. 불황에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 방법을 알아보자.

장근영 박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열쇠는 마음보다 몸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불안해지면 몸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지고 소화기관이 위축되는 등 긴장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판단을 내릴 때는 심호흡을 해 맥박수를 낮춰 냉정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몸은 재미있게도 한번 심하게 운동하고 나면 그 다음에 긴장이 풀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20~30분 운동을 하고 나면 운동 전보다 더 차분한 상태가 됩니다. 따라서 불안과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운동을 더 꾸준히 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장현갑 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긍정적으로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 해왔다”와 같은 말을 마음 속으로 말해보는 ‘긍정적 자기 대화’는 감정 통제에 도움을 주고 공포를 떨쳐낼 자신감을 준다. 얼굴에 미소를 지어 내면의 감정을 바꾸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절친한 친구, 전문 카운슬러와 같은 사회적 지지자를 찾아 대화하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역발상적 대응’도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불안은 막연한 심리상태이기 때문에 더 무섭다. 따라서 지금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안정적인 정서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불황은 자신을 다시 냉철하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는 자신의 단점이 남들 앞에 금방 드러나면서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는 취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황기에는 자신의 단점을 객관적으로 주시하고 취약점을 보완하거나 경쟁력 있는 다른 장점을 키울 수도 있다. 과거 ‘남들처럼’ 일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방향을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 긍정은 경제도 춤추게 한다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먹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룩스 컨설팅’ 허일강 대표에게 긍정적인 자세를 갖는 방법을 들어보았다. 허 대표는 2002년부터 국내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와 핵심인재를 상담, 코치하고 있는 경영 심리학 전문가다.

“보통 경영자들은 기업 위기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떠오르지 않을 때 불안해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특히 조직 구성원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전문성이 부족한 CEO는 이 점에서 결단력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도 어렵지요. 이때 제가 했던 조언은 ‘현상을 보지 말고 목표를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현재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성공할 것인지 확고한 목표를 세우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긍정에너지를 만드는 것이 불황을 탈출하는 첫 번째 단계다. 긍정적으로 보면 불황이야말로 새로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두 번째는 질문의 단계다.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불안을 더 키울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바꿔 생각해 본다. 생활비와 자기계발비를 줄이고 현실을 끌어안고 고민하다 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시가 파산했을 때 센트럴 빌딩을 인수해 코모도 호텔을 만듭니다. 이때 부동산 재벌의 반열에 올라섰죠. ‘불경기에 어떻게 생존할까?’라고 질문하면 현실의 소방수 역할만 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말이다. 원하는 결과를 설정한 후 ‘할 수 있다’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반복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긍정에너지가 생기면 마지막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자신의 방향을 설정해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조직관리 교육 중에 ‘터닝포인트 프로그램’이란 게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는 뜨거운 숯불을 깔아놓은 10m거리를 맨발로 걸어가는 과정이 있는데, 대개 사람들이 숯불을 앞에 두고 굉장히 위축됩니다. 다들 숯불에 초점을 맞추지요.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숯불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갑니다. 이게 꿈과 비전이죠.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발에 화상도 안 입습니다. 숯불을 보고 가는 사람은 어김없이 화상을 입습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건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에 달려있는 셈이죠.”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