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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잠재력 '일류', 인식은 아직 '이류'
국가 디자인 역량 세계 8위 수준, 인적 역량만은 세계 최고 평가
일부 제품 디자인 '원더풀' 평가에도 산업 디자인은 갈 길 멀어
공공 분야 디자인 가장 취약… 국민 디자인 관심도 비해 심미안은 저평가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1- 2008 굿디자인 국무총리상(삼성 햅틱폰)
2- 2005 굿디자인 (LG전자-플래툰 LCD모니터)
3- 2008 굿디자인 대통령상(삼성물산 건설부문 한국형 욕실)
4- 2008 굿디자인 수상작(월드장식 주방액세서리)
5- 2008 굿디자인 수상작(자이글 적외선가열조리기)




디자인은 이제 어떤 제품의 미적인 형태를 떠나 기업, 도시,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잘 디자인된 제품은 고객의 선택을 받고, 그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다른 기업을 앞지르며, 또한 그런 기업을 보유한 도시와 국가는 다른 도시, 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세상이 온 것이다. 심지어는 삶의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했느냐가 도시와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기도 한다.

디자인의 시대, 그렇다면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어디쯤 와 있을까. 글로벌 디자인 대전(大戰)에서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무기는 과연 무엇이고, 아킬레스건은 무엇일까. 또 디자인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는 어떤 것일까.

최근 한국디자인진흥원(이하 디자인진흥원)이 실시한 ‘국가 디자인 경쟁력 조사’ 결과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세계 8위 수준으로 나타났다.

세계 8위라는 성적표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다. 한국의 앞줄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스웨덴 등 누구나 인정하는 디자인 선진국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뒷줄에 처져 있는 핀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등 여타 선진국을 감안하면 한국의 디자인 좌표는 꽤 돋보이기까지 한다.

실제 국내의 선구적 기업들이 디자인 역량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눈에 띄게 발전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 디자인연구소(일명 디자이니엄ㆍDesignium)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2002년 세계 25위에서 2005년 14위로, 다시 2007년에는 9위로 껑충껑충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순위는 최근 디자인진흥원의 조사 결과와 거의 유사하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높은 경쟁력을 보이는 제품 분야는 휴대폰과 전자제품으로 나타났다. 휴대폰과 전자제품 디자인은 각각 세계 2위 수준으로 평가됐다.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를 보유한 핀란드와 전통의 전자제품 강국 일본이 각 분야 1위로 한국에 앞섰다.

한국은 주방용품 분야에서도 미국에 이어 이탈리아, 일본과 함께 나란히 공동 2위 그룹을 이뤘고, 가구 분야 역시 세계 4위의 경쟁력을 과시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조사 대상인 세계 17개 주요 산업국가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아시아 국가 소비자들이 세계적 트렌드에 매우 민감한 것으로 밝혀져 이채롭다. 반면 프랑스, 인도, 스웨덴 등 3개국 소비자들은 자국의 문화와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더 선호해 뚜렷한 대비를 이뤘다.

가장 고무적인 조사 결과는 디자인 경쟁력의 인적 역량 분야다. 한국은 이 평가 항목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먼저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시상제(독일의 Red-dot과 미국의 IDEA)에서의 수상작 숫자를 토대로 평가한 ‘질적 수준’에서 한국은 가장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독일과 미국 출신 디자이너에 대해서는 ‘개최국 프리미엄’을 제외한 결과).

이는 한국이 연간 4만 명(국내외 대학 합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신진 디자이너를 배출하는 국가답게 그만큼 우수한 디자이너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유명한 국제 디자인 행사에 자주 참가하는 디자인 강국의 관계자들도 최근 들어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이 보여주는 잠재력과 역량에 적잖이 놀란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국은 일반 기업과 디자인 전문기업이 보유한 디자이너 숫자, 즉 ‘양적 수준’에서도 세계 최고 반열이다. 각 기업의 전체 종업원 중 디자이너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일반 기업 분야에서 스웨덴에 이어 세계 2위, 디자인 전문기업 분야에서는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이 상승곡선을 긋고는 있지만, 마냥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만은 아니다. 이번 디자인진흥원의 조사 결과는 그런 점에서 몇 가지 문제점과 시사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6- 2008 독일 IF및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레인콤 M플레이어-유영규디자이너)
7- 2006 굿디자인(한국졸링겐-나뭇잎불고기판)
8- 프랑스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
9- 일본 요코하마 랜드마크(스카이라인)


먼저 산업 분야 디자인의 경우 일부 대기업만이 높은 경쟁력을 갖췄을 뿐,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경쟁력이 낮다는 점이다. 실제 일반 기업의 ‘디자인 관련 매출액’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인도, 중국 등과 함께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독일,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디자인 선진국은 디자인 관련 매출액 규모가 최상위권이었다.

한 나라의 디자인 관련 매출액은 디자인 산업의 규모와 함께 디자인이 기업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국가 디자인 경쟁력을 추론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이기도 하다.

디자인진흥원 이주아 과장은 “국내 산업 디자인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몇몇 대기업의 주도로 크게 성장했지만 중소기업의 디자인 투자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라며 “진정한 디자인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산업계 전체의 디자인 투자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공공 분야 디자인에서도 크게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공공 분야 순위는 17개국 중 15위에 그쳤다. 특히 공공 분야 디자인 경쟁력을 육안으로 쉽사리 확인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아름다운 도시’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로는 이탈리아가 첫손가락에 꼽혔다. 다음으로는 프랑스, 일본, 미국, 독일, 스웨덴 등이 뒤를 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지목된 곳은 프랑스 파리다. 파리는 도시 자체가 미(美)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탈리아 로마, 미국 뉴욕 등도 아름다운 도시의 앞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근래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디자인 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갈 길이 아주 먼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진 디자인 도시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물론 고유 문화와 전통을 살릴 수 있는 도시 디자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소비자 분야 디자인 조사 결과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어느 나라 국민들의 미적 감각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서 한국은 중국, 대만, 핀란드, 덴마크 등과 함께 하위권으로 묶였다. 이들 나라는 전체 국민의 디자인에 대한 투자(시간 및 비용)도 적은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은 다른 나라를 현격한 차이로 따돌리며 상위권에 포진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세 나라 국민들이 생각보다 디자인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도 심미안을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브라질, 싱가폴, 캐나다, 호주 국민들은 디자인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축에 속했지만 정작 미적 수준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투자 대비 산출’이라는 경제 공식에 비춰 보면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국민들이 가장 효율적인 ‘디자인 피플’인 셈이다.

1인당 국민소득(GDP) 대비 디자인 지출 규모를 살펴 보면 이른바 ‘신흥시장 국가’로 분류되는 한국, 대만, 브라질, 중국, 인도 등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인도는 조사 대상 국가 중 1인당 GDP가 가장 낮은 반면 디자인 지출 비중은 가장 컸다. 이런 결과는 경제성장을 통해 얻은 생활의 여유가 디자인 분야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품을 구매할 때 디자인을 첫 번째 고려사항으로 꼽는 소비자 비율을 나타내는 ‘디자인 우선 고려 비율’에서 한국, 중국, 대만 등이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의 디자인 우선 고려 비율이 17개국 평균의 2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유독 눈길을 끈다. 이런 점으로 미뤄 한국인의 심미안은 머지 않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아 과장은 “디자인은 어떤 제품에 대한 조형의 기능에서 이제는 국가와 도시의 총체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효과를 낳는 데까지 발전했다”며 “앞으로는 국가 전체의 디자인 역량을 강화해 ‘디자인 프리미엄’을 얻을 수 있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가 디자인 경쟁력, 어떻게 조사했나

한국디자인진흥원의 국가 디자인 경쟁력 조사는 국가 차원의 디자인 경쟁력을 측정할 수 있는 대표 모형을 개발하는 한편 우리나라 디자인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해 디자인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실시됐다.

디자인에 관련된 모든 주체들의 경쟁력을 평가하기 위해 공공 분야, 산업 분야, 국민/소비자 분야 등으로 나눠 다차원의 측정 기법을 동원했다. 또한 디자인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로 국가별 표본조사 방식을 시도했다.

이번 조사는 디자인의 정책적 측면, 산업적 측면, 문화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일부 국가에서 시행해 온 기업 디자인 역량 위주의 측정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2008년 10월20일부터 11월29일에 걸쳐 주요 17개국(서유럽 4, 북유럽 3, 아메리카 3, 호주ㆍ아시아 7)의 디자이너(각 20명), 디자인부서 관리자(각 30명), 일반인(각 80명) 등 총 2,210명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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