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재질따라 사진·X-레이 등 분석 후 클리닝·접합·수정

미술작품도 인간의 삶처럼 일정한 주기를 지닌다. 작가의 창작물로 처음 세상에 나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노화로 인해 병이 들기도 하고 외부의 충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상처 나고 병든 미술품을 치료하는 작업’이야말로 미술품 보존과 수복의 개념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미술 작품은 수명이 연장되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 나간다.

이처럼 미술품 보존은 의학과 곧잘 비교 되는데 미술계 예방의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보존관리는 미술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적합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이라 할 수 있고, 노화되고 손상된 미술품을 수복 처리하는 작업은 일상의학에 비유할 수 있다.

미술품 보존·수복 활동도 시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미술품에 대한 의식이 미성숙했던 과거에는 미술품 보관이나 운송의 중요성은 경시되는 경우가 많아 찢김이나 부패, 변질 등 원작의 손상·훼손 정도가 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심하게 손상된 미술 작품을 깨끗하게 수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왔다. 클리닝, 접합, 수정 등의 작업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술품 보관과 운송에 대한 의식 수준이 향상되면서 심하게 훼손된 작품은 줄어들었고, 오히려 미술품 손상을 미리 피하는 예방 보존 차원에서 작품 수복이 강조되고 있다.

예방 보존은 훼손의 원인을 제거해 물질의 변화와 노화를 줄이는 것으로 간접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품을 구성하는 물질을 안정화하고, 약화된 부분을 강화 처리하는 것 등이 예방 보존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현대미술은 작품의 재료나 표현 양식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전통 미술품의 보존·수복 방식만을 가지고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에 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대체로 미술품 장르에 따라 수복 방식에 차이를 두는데 금속, 목재, 석재, 종이 등 작품 재질에 따라서도 수복 방법이 세분화된다. 특히 재질을 분석할 때는 사진을 이용한 간단한 분석에서부터 X-레이나 주사전자현미경, 적외선분광기 등을 활용해 재질의 미세조직을 관찰하는 고도의 과학기술까지 다양한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미술품 보존·수복을 담당하는 전문 기관은 크게 사립 시설과 국립 시설로 구분된다. ‘리움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미술품보존과학실’과 ‘김광섭미술품보존연구소’ 등이 대표적인 사립 시설에 해당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보존수복실’이 국립으로는 유일한 기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보존수복실에는 유화에서 한국화, 조각에 이르기까지 각 장르별 복원 전문가 8명이 함께 모여 미술품을 치료하고 있다. 미술관 소장품뿐만 아니라 전시에 선보인 국내외 작품, 사설 갤러리 소장작품 등 국내 내로라 하는 미술품들이 모두 그들의 손을 거쳐 보존되고 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림계의 변덕쟁이 '유화'

유화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사용해 작업을 하기때문에 작품 손상이 가장 많고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실의 황채금 복원사는 유화 복원 21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그는 유화 손상 유형과 관련해 “유화 작품은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그림 표면이 변형되는 손상이 잦다”며 “물감 색 변질과 갈라짐, 물감 층 떨어짐은 기본이고 곰팡이와 백화 현상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유화 복원의 일인자답게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품들이 그의 수복실에서 새 생명을 얻어 대중에게 선보여졌다.

2004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개최한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소장품 : 아카데미즘과 그 너머 전>에 소개 됐던 근대작가 송혜수의 1942년 작품 <설화>가 대표적인 그의 수복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수복 과정에서 작품 속 숨겨진 진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설화>가 미술관에 들어왔을 때 훼손이 굉장히 심각했었어요. 상태조사를 위해 X-선 촬영을 했습니다. 놀랄만한 사실을 알아냈죠. 현상된 작품 필름을 보니 <설화> 속에 또 다른 형체의 그림이 보이는 거예요. 수많은 작품을 복원했는데 그림 속에 또 다른 그림을 발견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수학자가 최초로 문제를 해결했을 때 기분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요. 1년 여에 걸친 <설화> 수복 작업이 아직도 생생한 울림으로 남아있습니다.”

애초에 송혜수 작가가 캔버스를 세워서 그림을 그렸지만 다시 그 그림 위에 물감을 칠해 지운 뒤 지금의 작품 <설화>를 그렸다는 사실이 복원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권옥연 작가의 1958년 작 <인형이 있는 정물>역시 황채금 복원사의 손을 거쳐 말끔해진 작품이다. 이미 수 차례의 색맞춤 작업이 이루어졌던 작품인데도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왔을 때 균열은 물론 이물질과 먼지에 의한 오염이 심각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다파장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내부를 확인했죠. 작품의 뜨고 갈라진 부분에 한지를 대고 아교와 인두로 맞춘 다음 증류수와 솜으로 클리닝 작업을 했습니다. 변색 부분은 다시 아교와 호분을 바른 뒤 복원용 물감(Maimeri)으로 색맞춤을 해줬고요.”

이 뿐만 아니라 2000년에 복원한 이정수 작가의 1940년대 작품 <자화상>의 경우는 작품 전체를 뒤덮은 곰팡이와 접힌 자국까지 있는 심각한 훼손작이었지만 황 복원사의 4개월 여에 걸친 고군분투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2008년 한 해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유화작품 21점을 비롯해 외부에서 의뢰한 작품 16점까지 총 38점의 유화 작품이 작품보존수복실에서 복원 과정을 거쳤다.

1- 국립현대미술관 황채금 복원사가 이정수 작가의 1940년대 작품 <자화상>이 훼손됐을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며 유화복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팀 황채금 복원사가 유화작품을 복원하고 있다.
3-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팀 차병갑 복원사가 심하게 훼손된 병풍 작품을 복원처리하고 있다.

■ 그림 속 역사를 복원하는 '한국화'

“구한말 때 제작된 병풍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는데 적어도 40년은 된 작품입니다. 비단을 재료로 사용한 걸로 봐서 부잣집에서 사용했을 테고, 굉장히 험하게 다뤘네요. 병풍을 잇는 연결 마디마디가 떨어져 나간걸 보면 알 수 있죠. 또 병풍 테두리가 이 정도로 훼손됐다는 건 상당히 부주의하게 취급했다는 얘기고요.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한 작품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수복실의 터줏대감 차병갑 복원사는 한국화 복원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장인 중의 장인이다. 그는 척 보기에도 무척 낡은 병풍 작품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화 복원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아간다고 말했다.

한지, 비단, 신문지 등과 같은 작품 재료를 통해 작품의 제작 연도를 추정할 수 있고, 문양이나 장식을 보면 그 시대의 미술 경향까지도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화는 재질의 특성상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만큼 작품 손상도 클 수밖에 없다. 차 복원사는 “시간 경과에서 비롯된 노화부터 고습으로 인한 생물피해, 산성지 사용에 따른 산화 및 황색반점, 물리적인 힘에 의한 꺾임과 찢김, 접힘 까지 여러 가지 손상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며 “최근에는 한국화 전시 및 대여가 늘어나 운송이나 관람객에 의한 손상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한국화 복원의 독보적인 존재인 만큼 그의 수복 역사에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함께한다.

“1997년에 충남 아산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 영정 수복을 담당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현충사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가 들어와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실수로 영정 아래 부분이 찢겨나간 거죠. 그 이후로 계속 방치되다가 97년에야 비로소 복원 작업이 이루어진 거예요. 처음엔 손상 부위가 굉장히 작았었는데 종이가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훼손이 심해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복원이 어려울 뻔했습니다.”

특히 이순신 영정은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당시 방침에 따라 차 복원사는 현충사에서 3개월 이상을 숙식하며 수복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미인화로 유명한 장운상 화백의 작품전시회가 열렸던 1992년에는 짓궂은 관람객의 장난으로 가슴이 노출된 작품의 왼쪽 유두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급하게 수복 작업에 들어간 차 복원사는 밤샘작업으로 패인 부위를 살려 유두를 복원해 냈다. 그러나 며칠 뒤 이번에는 오른쪽 유두가 없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며칠 사이에 한 작품을 두 번 수복하는 일은 장운상 화백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다”고 전했다.

원래의 상태를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작품을 비롯해 크고 작은 손상을 입은 작품 1,600여 점이 그의 손을 거쳐 치료 됐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