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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 빛나는 '웃음의 미학'
이통사들 유머광고 각축… 문학·연극·음악으로 빠르게 확산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1, 2- KTF SHOW 광고
3- LG 텔레콤 오주상사 광고
4- 소설가 이외수




‘빠르네 빠르네 빠르네~’.

어느 대출 광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다. 남자는 아내가 부르는 이 노래에 왠지 기를 못펴고(?) 몸을 움추린다. 상황의 의미를 아는 시청자들은 지긋이 미소를 짓거나 킥킥 웃음을 터뜨린다.

사실 이 노래는 프랑스 샹송 가수인 달리다(Dalida)가 영화배우 알랭 들롱과 듀엣으로 불렀던 유명한 샹송 ‘빠로레, 빠로레(Paroles, paroles)’의 음가를 차용한 것. 연인간의 사랑을 그린 원곡의 낭만적인 정서를 순식간에 변질시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유머가 지닌 힘이자 매력이다.

힘들고 지친 세상,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분명히 유머의 힘이다. 하지만 웃음에도 여유가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웃을 여유가 없다면 웃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점점 더 여유가 부족해지는 요즘엔, 그래서 ‘무조건 웃어라’ 하는 강요형 유머보다 잔잔한 웃음이나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는 공감형 유머들이 다방면에서 출현하고 있다.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순간이나마 가벼워지라고 권유하는 유머의 다양한 모습을 들여다본다.

■ 서민형 유머와 긍정의 힘, 광고 유머 양대 축

유머의 힘이 가장 빠르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곳은 역시 광고다. 15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하는 만큼, 광고에서 유머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최근 유머광고의 선두는 이동통신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KTF의 ‘SHOW’ 광고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속으로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SHOW는 유머광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 노래는 시장을 선점하긴 했지만, SHOW가 보여주는 다양하고 친숙한 서민친화적 유머들은 곧 SHOW를 유머광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SHOW의 시청자 공략 포인트는 ‘반전’이다. <스무 살의 쇼>부터 시작해 ‘일곱 살’, ‘한 살’ 등 고른 연령대를 시리즈의 소재로 다룬 SHOW는 여러 에피소드에서 반전의 묘미를 살리며 시청자의 웃음과 공감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최근 <백 살의 쇼>에서는 백 살 생일을 맞은 할머니에게 “백 살까지 사세요”라고 ‘망언’을 한 어린 손자의 실수를 여유있게 맞받아치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와는 다른 컨셉트로 진행되는 <서태지의 쇼>는 해외의 펩시콜라 광고에서 등장했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망신 에피소드를 패러디한 것. 거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 할 만한 ‘서태지’라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 어린 여학생 앞에서 ‘그냥 아저씨’로 추락하는 순간, 그와 함께 했던 세대들은 격세지감의 너털웃음을 짓게 된다.

한편 LG 텔레콤의 OZ(오즈) 상사 시리즈는 광고 속에서 아예 시트콤을 보여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캐릭터 구성부터가 벌써 웃음을 자아낸다. 허영기 있는 캐릭터의 대명사 장미희,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배우 오달수, 경박한 이미지의 유해진,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문식이 주 멤버들이다.

이 광고가 보여주는 웃음의 방식은 직장인의 일상적인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휴머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처음에는 이문식의 캐릭터를 활용해 웃기는 데에만 주력했지만, 최근의 광고에서는 밤에도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문식 대리의 모습을 비추며 “내년에는 꼭 대리 인생에서 탈출하세요”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힘든 현실을 인정하되 포기하지 말고 기운을 내자는 독려의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5- 연극 '웃음의 대학'
6- 연극 '마리화나'
7- '장기하와 얼굴들'
8-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9- 김진배


■ 공감과 가벼움의 유머로 문학 독자 유혹

‘불황’이라는 단어를 천형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출판인들에게도 지난해는 유독 힘든 한 해였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을 삼을 만한 부분이 있다면 이른바 ‘빅3’라 불리는 황석영, 이외수, 공지영의 책들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한동안 침체됐던 문학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처입고 힘든 자들을 어루만지는 치유와 소통의 의지에 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우리 내면의 슬픔과 역경을 위로하며 지난해 ‘올해의 책’에 등극했다.

이외수의 <하악하악>이나 공지영의 <네가 어떻게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등은 환경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식대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삶의 무게와 시대의 고통을 떠안은 채 심각하게 살아갈 것만 같던 문학인들의 모습이 TV나 인터넷에 자주 비춰지며 친숙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변화된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이외수 작가가 있다. 외모로 보면 문인 중 가장 심각한(?) 정신세계를 소유한 사람 같지만 그가 보여주는 활약은 연예인의 그것에 가까울 지경이다.

그의 베스트셀러 <하악하악>은 잘 알려졌다시피 숨가쁜 정도로 흥분된 상황을 나타내는 인터넷 조어. 평소 인터넷을 폐인의 수준까지 하는 작가인 만큼 그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어휘들도 문인들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스스로를 ‘꽃노털(꽃미남 노인이라는 뜻)’이라 일컫는 작가가 네티즌과 교감하면서 완성한 이 작품은,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휘만 놓고 보면 거의 10~20대 초반의 네티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세대를 뛰어넘어 통하는 그의 유머감각은 우선 그 세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이 같은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문학이 힘을 내는 사이 몇 해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던 일본소설들은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오쿠다 히데오다.

가장 유명한 <공중그네> 외에도 <스무살 도쿄>, <걸>,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등이 소설 판매 순위 20위 권(교보문고 집계)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 특히 국내에서 이미 60만부가 넘게 판매된 코믹소설 <공중그네>의 경우,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빈도가 높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히데오가 독자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한국인들에게 사랑받았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레종 데트르(존재의 이유)’ 같은 철학성이나 최근 몇 년 사이 섬세한 문체로 신드롬을 일으킨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와는 다른 유머와 해학에 있다. 한 출판 관계자는 “사회가 살기 힘들어지면서 진지하고 심각한 책보다는 가볍고 위트있는 대중문학이 호응을 얻고 있고, 히데오는 그 기호에 잘 부합하는 작가”라고 그의 인기비결을 분석한다.

■ 문화계 전방위로 퍼지는 웃음 바이러스

얼마 전 폐막식을 가진 ‘연극열전2’는 작년 한 해 연극계 최고의 화제를 이끌었던 히트 기획공연. 13개월간 총 10편의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웃기고 감동시켰다. 10편의 작품들이 모두 높은 관객점유율을 자랑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작품은 <웃음의 대학>이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이 연극은 일본에서 ‘코미디의 황제’로 불리는 미타니 코우키가 쓴 작품. 연극 연출과 방송 작가, 영화 감독 등 다방면에서 타고난 코미디 센스를 발휘하는 그는 이 작품을 영화로 옮겨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적도 있다. 당시 하재봉 문화평론가는 이 작품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피로가 싹 가신 느낌이다. 역시 웃음은 위대하다”라고 극찬을 보낸 바 있다.

최근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소문난 연극은 <마리화나>다. 고선웅 극작가가 쓰고 연출한 <마리화나>는 조선 세종 시절 궁 안에 갇혀 살던 세자빈과 궁녀들의 억제된 본능을 발칙하고 코믹하게 그려냈다.

언어유희에 일가견이 있는 고선웅의 연극인 만큼 조선 궁중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데도 현대어와 영어를 섞은 기발한 말장난들이 관객의 웃음을 터뜨린다. 가령 제목 ‘마리화나’는 흔히 알려진 ‘대마초’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화날 정도의 흥분제’를 뜻하는 ‘말이화나’의 다른 표현이다. 또 ‘메모’는 ‘매’일 ‘뭐’했나 적는 것을 줄여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마리화나>에는 구석구석 고 작가의 재기가 묻어 있다.

스스로도 “진지한 상태를 5분 이상 견디지 못한다”고 털어놓을 만큼 장난기가 가득한 고 작가는 시종일관 관객을 웃긴 끝에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낸다. 관객 최문경 씨는 “스캔들도 이런 스캔들이 없다. 정말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고 평하며 작품에 대해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편 지난해 일약 ‘인디밴드계의 서태지’로 떠오른 장기하와 얼굴들은 무표정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로 ‘한방에’ 떴다. 모범생 같은 외모의 장기하가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부르며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하면 그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양 옆의 키치적 댄서들이 무표정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이것은 결코 ‘춤’의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진지하고 뻣뻣한 동작으로 ‘가자’고 외치는 그들의 노래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거창한 메시지도, 폭발적인 가창력도, 뛰어난 춤솜씨도 없는 이들이 대중에 어필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바로 단순하고 쉬운 노랫말과 안무가 중독성을 유발하기 때문. 그래서 이들이 주는 웃음은 황당하고 어이없으면서도 피식피식 미소가 번지게 했던 그 옛날의 허무개그와도 맥이 닿아 있다.

문화현상으로서의 유머를 정확히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유머 감각을 잘 활용한 이들이 보여주는 것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매력이야말로 이 시대의 유머가 가진 진정한 힘일 것이다.

■ 김진배 유머경영연구원 원장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골방 백수 출신?
"긍정적 마음가짐으로 위기 탈출하자"


웃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웃을 일이 없는 요즘, 이왕이면 가볍게 공감하며 웃을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것은 심리학자나 광고대행사의 치밀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바라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유머경영연구원의 김진배 원장은 ‘불황기에는 유머가 뜬다’라는 전형적인 도식을 다양한 원인으로 설명한다. 그는 실제로 18년동안 유머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유머의 달인. 그는 유머가 삽입된 문화가 유독 인기를 끄는 배경에 대해 현대인의 생활의 변화를 원인으로 든다.

“우리가 진짜 먹고 살기 어려웠을 때는 편한 것만 원했어요. 몸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금, 몸이 편해진 현대인은 심심한 게 싫은 거에요.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걸 자꾸 찾게 되는 겁니다.”

1930~70년대에는 ‘웃음’이 아니라 ‘울음’이 사회의 주요한 문화 코드였다. 너무 삶이 힘드니까 무언가를 통해 울면 그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이다.

“불황도 불황이지만 현대사회의 특성상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한 사회에서 불안감과 좌절과 열등감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유머 문화가 사랑받는 것은 바로 웃음이 그런 사람들에게 테라피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죠.”

김 원장은 유머를 사용하고 받아들이는 이상적인 자세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꼽는다. 그는 요즈음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인 청년실업을 예로 들면서 “<삼국지>의 제갈공명도 ‘백수’였다”고 주장한다. “유비의 ‘삼고초려’는 제갈공명 입장에서 보면 취업 제안 거절로 해석할 수 있어요. 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인 거죠.” 농담 반 진담 반처럼 들리는 그의 해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머 같다.

그는 우리나라가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웃는 문화’를 제대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 개그맨들을 만나면 관객들을 어떻게 웃길까 너무 부담스러워 하더라구요. 아직도 이를 악물고 ‘어디 한 번 웃겨봐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가 말하는 긍정적 마음가짐의 처방이란 ‘화끈하게 웃자’라는 것. 우리 문화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엄숙주의 때문에 아직도 마음껏 웃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는 안타깝다고 말한다. “유머의 목적은 어쨌거나 ‘웃자는 것’이거든요. 좀 안 웃겨도, 썰렁해도, 웬만하면 여유를 가지고 받아들이면 좋아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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