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제혁법 염색기술 통해 패셔너블한 제품 '모피의 문화 혁명'

오랜 전통과 뛰어난 기술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명품 브랜드는 고유한 철학과 깊은 정신을 담고 있다.

<명품의 정신> 코너는 오늘날 ‘고가의 상품’을 대체하는 말이 되어버린 ‘명품’의 참뜻을 되새기고, ‘자본’이 아닌 ‘사람을 향한 존중’을 우선하는 명품 기업의 정신을 높이 평가, 명품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폭넓게 전하고자 한다. 소개되는 명품은 단순히 이름이 많이 알려지거나 고가 위주의 브랜드가 아닌,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 물건에 대하여 특정한 의미를 갖고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겨울의 패션 아이콘 퍼(fur).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피는 겨울 패션을 장식하는 최고의 아이템으로 꼽힌다.

고가의 모피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손발이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에만 선택하는 옷’으로 인식돼 덜 추운 날 모피를 입은 사람들은 ‘춥지도 않은데 돈 자랑하기 위해 모피를 입었나’하는 식의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는 요즘 오히려 모피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추운 날에만 입는다’는 모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모피에 관한 인식의 변화, 그 출발선상에는 ‘펜디(FENDI)’가 있었다.

최근 세련된 ‘스타일’을 위해 선택되는 모피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따뜻하다’는 것이지만 과거 모피코트는 부를 상징하는 코드로 작용했다. 신분을 상징했던 모피는 ‘크고 무거우며 눈에 띄어야 한다’는 공식을 가졌었지만 펜디가 모피에 대한 혁신을 일으키며 이러한 개념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5년 펜디는 부드럽고 가벼우며 패셔너블한 모피 디자인을 선보였다. 새로운 제혁법과 염색 기술 등을 통해 펜디가 선보였던 모피에 대한 ‘재해석’은 ‘문화혁명’이라 불릴 만큼 인식을 새롭게 전환시킨 것으로 현재의 모피 개념에 대한 시초가 되기도 한다.

1925년 에두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 부부에 의해 로마에 첫 번째 부티크를 마련한 펜디는 설립당시부터 핸드백 샵과 모피 워크샵을 함께 운영했다. 1930~40년대 크게 확장됐던 모피사업은 1965년 디자이너 라거펠트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펜디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모피 디자인을 발표하게 된다.

‘스타일을 가미한 모피코트의 효시’라 불리우는 펜디의 모피 케이프는 와일드한 밍크로 제작되어 기하학적인 라인과 날카로운 각도를 특징으로 하는 긴 망토형 모피로 1970년대를 대표한다.

1980년대의 르네상스 스타일 밍크코트를 거쳐 1990년대에는 가공 기술을 통해 링컨양털(Lincoln lamb)을 개발, 양모 재킷과 스커트를 선보였다.

5- 펜디 마크.
6- 셀러리아 털 펠트.
7- 셀러리아 제품을 완성시키는 툴.
8- 셀러리아 스티칭. 셀러리아 라인은 전통적인 로마식 기법 타질리오 비보를 통해 제작된다.
9- 2008 FW 펜디 시크릿코드백.
10- 1997년 펜디의 바게트백.
11- 셀러리아 바게트백.

2000년대에 들어서는 토끼털, 족제비털, 여우털 등 기존의 모피에서 탈피한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모피가 한층 가벼워진 느낌으로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러한 모피 디자인의 원조 펜디는 여러 종류의 털을 함께 사용해 발랄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디자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모피에 대한 혁신을 가져온 비결 중 하나는 바로 디자인을 완성시키는 독창적인 기술이다. 펜디는 상감박기(inlaying), 광택내기(vanishing), 꿰매기(stitching), 재단(shearing) 등의 기술을 통해 무거웠던 모피의 무게를 덜어냈다. 그중 러시안 검은 담비 모피(Russian sable)는 일반 모피 무게의 1/5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모피’다.

펜디 모피의 역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맞춤서비스다. 60년대 펜디 고객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피 펠트를 직접 고르고 거기에 사인을 해 자신의 사인이 담긴 모피를 입을 수 있었다.

이는 펜디의 셀러리아 메이드 투 오더(Selleria Made to Order)를 탄생시킨 배경이 되기도 했으며 단 한 사람만을 위한 개인 서비스(Personalization)는 백에 고객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인그레이빙 서비스와 카시트, 헬멧, 골프 장갑 등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맞춤 제작하는 셀러리아 제작 등의 형태를 통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

‘셀러리아’는 원래 이탈리아의 말안장을 제작하는 작업장을 의미하는데 펜디의 셀러리아 라인은 이 말의 본뜻에 장인정신과 패션요소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로마의 풍요로운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에두아르도와 아델 펜디의 정신은 최고급 로마 가죽에 더해지는 커팅과 디자인을 통해 전해졌으며 손가방, 여행가방, 헌팅 백 등의 주문 제작을 통해 귀족과 왕실의 사랑을 받았다. 그 비법은 로만 레더에서 비롯된 펜디만의 가죽 가공법이다.

내구성과 유연성 등을 지닌 높은 퀄리티의 로만 가죽 중에서 40%의 최고급 부분만이 선택되고 여기에 가죽 본래의 자연스러움 등 미적 측면뿐 아니라 실제 사용에 있어 중요한 내수성과 내구성을 위한 손질과정이 더해진다.

가장 좋은 가죽을 선택하는 일차적인 과정에 가죽을 최고 상태로 만들기 위한 이차적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제작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로마식 기법인 타질리오 비보(taglio vivo)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방식으로 가죽이 접히지 않게 하기 위해 두 조각의 가죽을 겹쳐놓고 커팅 하는 것. 여기에 기름을 먹인 실을 사용한 박음질이 더해져 펜디의 셀러리아가 완성된다.

84년 전 펜디 부부가 담아낸 정교함은 펜디 패밀리에 의해 3대째에 걸쳐 전해져오고 있다. 펜디의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실비아 벤츄리니 펜디는 어린 시절부터 펜디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젊은 층을 위한 펜디시메(FENDISSIME) 라인 런칭을 시작으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게트백을 통해 2000년 패션 그룹 인터네셔널 어워드에서 액세서리 부문 수상을 이끌기도 했으며 스파이백, 비. 펜디백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국제양모협회(International Wool Association)가 주관하는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한 이력을 지닌 칼 라거펠트가 펜디의 디자이너가 된 것은 모피 역사에 중요한 획을 긋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의 무겁고 사치스러운 모피를 현대의 실용적이며 가벼운 모피로 만든 펜디는 과거와 현재 모두에 존재하며 그 둘을 연결하는 동시에 참신한 사고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 푹한 겨울날씨에도 다양한 디자인의 모피가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글│최유진 미술세계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