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거리 예술] 공연·음악 등 열린공간서 다양한 관객과 호흡 문화관광상품 자리매김

1-영국 런던을 대표하는 거리 예술제인 노팅힐 페스티벌은 해마다 여름이면 온 유럽을 뜨겁게 달군다.
2-서울 거리 아티스트 공연 모습
3-과천 한마당 축제 참가작 '마르셀의 강'
4-지난해 안산 국제거리극축제 참가작 '슬램 팸퍼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몽파르나스 거리’,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 이들 지역을 연상하면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다름아닌 ‘예술의 거리’ ‘거리예술의 성지’다. 거리예술이 태동한 유럽 지역 중에서도 이 세 곳은 지금의 거리예술문화를 꽃피우는데 토대가 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거리예술을 주도하는 본거지답게 유럽에서는 거리예술, 거리공연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 자작시를 낭송하는 시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가들이 ‘무대’라는 한정된 장소가 아닌 ‘거리’라는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삭막하고 분주하던 길거리는 어느새 자유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예술의 거리’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특화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을 이끄는 문화관광상품 역할까지도 해내고 있다.

물론 유럽에서도 거리예술이 처음부터 각광 받았던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이 너도나도 거리로 나오면서 도시 질서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강력한 규제를 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거리예술의 장점은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고, 1852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거리예술을 ‘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구경하는 관객들로부터 돈을 모금하는 행위’라는 의미의 ‘버스킹(Busking)’이라고 부르며 인정하게 되었다. 합법적 버스킹 제도가 도입된 후 비로소 거리예술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기존의 음악과 그림에 마임이나 춤, 마술 등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국내로 전해진 거리예술은 사물놀이나 탈춤, 마당극과 같은 전통적인 거리연희가 주를 이루던 야외 공연계 일대 변화를 이끌었다.

대표적으로 1997년부터 과천시 야외공간에서 연극을 비롯한 탈춤, 마당극, 굿 등의 공연예술을 선보여 오던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는 야외공연의 본질적인 의미를 논의하면서 99년, ‘과천세계공연예술제’로 명칭을 바꿔 다양한 시도를 감행했다.

실내극 구조를 띠거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작품의 공연 역시 참가를 제한했다. 이 후 축제는 2000년 ‘과천마당극제’, 2003년 ‘과천한마당축제’로 이름을 바꾸며 거리예술제로 가다듬어졌다.

거리극연구창작단체 ‘경계 없는 예술센터(ASF)’의 대표 이화원 상명대 공연학부 교수는 이러한 시도와 변화에 대해 “축제에서 시도한 전통의 현대화는 우리나라만의 거리예술문화를 정립하는 시발점이 됐다”며 과천한마당축제의 의의를 설명했다.

과천한마당축제는 2006년부터 춘천마임축제와 함께 야외극 공동공모사업과 해외 주요 거리극단과의 거리극 공동제작, 거리극 경연대회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하며 국내 거리예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 후 거리예술을 중심으로 한 축제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 축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국내외 작품을 발굴하고 거리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무대로 거듭나고 있다.

2005년에 시작한 이래 매년 5월경에 열리는 ‘안산국제거리극축제’는 세계의 다양한 거리예술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국내 거리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프로그램들로 눈길을 끈다.

국내외 신진거리예술 아티스트들의 경합과 도전 장을 마련하기 위해 ‘ASA프린지’를 개최하고 기획프로그램으로 아마추어 거리예술가들을 위한 ‘거리진출 NOW’와 전국의 대학생 거리예술가들이 실력을 뽐내게 될 ‘스트리트 캠퍼스’ 등도 진행해 사전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밖에 거리극 제작의 새로운 모델을 소개하고 경향을 선도하기 위한 ‘거리극제작소’, 미래의 거리예술가를 양성하는 ‘거리극학교’ 등의 부대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지난해 열린 축제에는 3일간 92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같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안간국제거리극축제는 갈 길이 멀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의 전망과 발전방향에 대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심재민 이사는 “프랑스의 샬롱거리축제와 영국의 노팅힐축제 등도 세계?Ю?거리축제로서의 명성을 얻기까지 50~60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안산국제거리극축제가 진정한 거리예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성급한 접근보다는 우선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일차적으로는 관람객 수용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광덕로 등 현행 축제장소의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거리극 인재를 양성하고자 진행되는 거리극학교는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상설화할 것을 주문했다.

그밖에도 부산, 대구, 광주 등 도심의 거리로 나온 예술문화가 활기를 띠는 가운데 최근에는 서울 청계천 거리예술가들의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전략적인 거리아티스트 육성을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청계천일대에서 ‘서울거리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국내 최초 거리예술가 지원프로그램으로 극, 마임, 노래, 연주, 미술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에 걸쳐 오디션을 통과한 정식 거리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공모전 당선자들에게는 청계천뿐만 아니라 대학로와 선유도, 종로의 피아노거리, 한강공원 등 서울시 곳곳의 열린 공간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더불어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해외진출에도 도움을 받고있다.

2005년 9월 서울시가 주최하는 오디션에 통과한 ‘거리예술가 1기’ 김부용 아티스트는 벌써 5년째 거리 공연을 해오고 있다. 흘러간 가요에서 팝송까지 감미로운 목소리와 통기타 연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춰 세운다.

김 씨는 “2005년 당시만해도 물건을 팔거나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자연스러워졌다”며 “꾸준한 거리공연 덕분에 이제는 고정팬들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예전에 비해 거리예술가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졌다며 그는 서울시의 지원프로그램이 거리예술가들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거리예술문화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국내 거리예술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기대하며 거리극연구창작단체 ‘경계 없는 예술센터(ASF)’의 대표 이화원 상명대 공연학부 교수는 “거리예술은 인접 예술 장르까지 포괄하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고, 콘크리트와 먼지, 스트레스가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삶의 본원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고 밝혔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예술의 교감을 이루는 데 거리예술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사람들 있는 곳이 나의 무대"



거리 예술가 김찬수씨의 삐에로 익살쇼

“평상시에 번뜩하고 작품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바로 메모를 하죠. 불현듯 스치는 영감이 곧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셈이죠. 특별하고 독특한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소재들로도 퍼포먼스를 구성할 수 있어요.”

삐에로 분장을 하고 코믹한 마임과 저글링, 악기 연주를 선보이는 김찬수 씨는 광대 마임이라고도 불리는 클라운 마임 아티스트다. 사람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의 무대가 된다. 특히 거리는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열정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실내에서도 공연을 하는데 실내 공연 관객들은 준비된 관객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을 볼 준비가 된 관객인 만큼 사소한 움직임에 민감할 뿐더러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배우로서 다가가기가 편하다고 할까요. 반면 거리의 관객들은 목적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원치 않으면 바로 외면해버리죠.”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겠지만 거리 공연을 하는데 관객이 없으면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며 김 씨는 3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08년에 전국 거리공연 투어를 했어요.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거리공연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장르도 다양하죠. 우리나라의 거리공연 문화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청계천에서 하는 거리공연은 외국 관광객들이 보고 감탄할 정도니까요.”

그는 청계천에서 클라운 마임을 선보일 때 겪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를 털어놓으며 “한 시간 공연을 마친 후 모금함을 봤는데 달랑 300원만 있었던 적도 있었고, 공연 중간에 한 관객이 유유히 앞을 지나가는 바람에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거리예술의 매력이라고 전했다.

오는 7월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거리공연 축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림자 마술쇼, 가자 세계로"

거리 예술가 그룹 매직 플레이의 여성구 대표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무대가 있다. 손이 새가 되어 날아가고, 여우처럼 뛰어다닌다. 꽃이 되기도 하고 사람도 된다. 그림자 마술 쇼 아티스트 6명이 모인 매직플레이는 저녁이면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모은다.

“그림자 쇼는 스토리가 있는 공연이에요. 단순히 손으로 형태를 만들어서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형식의 구성으로 재미와 감동을 더하죠. 또 카드, 동전, 스펀지 등을 활용하는 클로즈업 마술은 관객들이 직접 참여가 가능해 무대 소통에 도움이 돼요.”

매직플레이의 여성구 대표는 그림자 마술쇼는 해외에서도 생소한 거리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남녀노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거리에서 공연할 때는 마치 시험대 위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실내 공연과는 달리 거리의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분들이 대다수거든요. 굉장히 적나라하게 공연을 보고 또 정확한 반응을 보이세요. 볼거리가 마땅치 않다 싶으면 바로 지나쳐버리시죠. 그만큼 냉철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평가 받는다는 기분이 들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어요.”

여 대표는 관객들 바로 앞에서 그들의 적극적인 반응과 함께 공연을 할 수 있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것이 거리예술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한편 경계 없이 관객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거리예술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도가 지나치면 황당한 상황이 연출될 때도 있다고 한다.

“공연을 하다 보면 경쾌한 배경음악에 맞춰 춤을 추시는 분들이 계세요. 흥에 겨운 어르신들이 종종 무대 앞에 나와서 춤을 출 때가 있는데 그러면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분산돼 버리죠. 이럴 땐 저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답니다.”

지난해 매직플레이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그림자로 현지인들에게 국어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올해는 쉐도우 아트의 범위를 넓혀 그림자 쇼와 마술, 춤, 마임 등 다양한 장르를 크로스오버 해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앞으로는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어요. 대한민국 문화 컨텐츠를 가지고 전세계 거리예술 무대로 진출해 거리예술가로서 한국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저희의 꿈이랍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